건축을 좋아했지만, 건축을 계속하지 않았던 이유

좋아하는 일을 만나고, 몰입하고, 그만두기까지

by Unspo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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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stère Sainte-Claire (롱샹 세인트 클레어 수도원, 렌조 피아노 설계)



여러분은 아주 좋아했던 일을 그만둬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건축 설계를 전공했습니다. 건축을 배우는 동안 저는 전공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그 정도로 순수한 애정을 품는 일은 다시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남들이 보기에도 그 마음이 많이 티가 났기 때문에 "넌 당연히 졸업하고 설계할 거지?"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학부 졸업 후,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는 건축을 생업으로 삼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합리적 결론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세계를 떠나야 할 것 같다"는 직감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이따금 거꾸로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때 난 왜 그랬을까, 하고요. 이번 글에서는 현재의 제 시선에서, 그때의 선택을 돌이켜보려고 합니다.



건축과에는 세 종류의 학생이 있습니다.
건축을 마냥 좋아하는 학생, 건축을 노력해서 좋아하는 학생. 건축을 끝내 좋아하지 않는 학생.

건축을 좋아하는지의 여부가 큰 분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소양이 '건축을 좋아하는 마음'을 기초로 삼기 때문입니다. 건축이라는 세계를 아이 같은 마음으로 좋아해야만 비로소 설계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자신만의 감각을 갈고닦을 수 있으며, 어렵고 힘든 건축가의 일을 평생 지속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달까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저학년 때부터 '난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이 세계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에 대한 답에 따라 이후의 대학 생활이 많이 달라지고요.

건축이 마냥 좋을 경우, 건축가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에 거침없이 빠져듭니다. 늘 건축에 대해 생각하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작업에 쏟아붓는 열정적인 생활을 5년 동안 몸에 익히는 것이죠. 이들은 건축 커리큘럼이 요구하는 고난도·고강도의 과제들을 '즐기면서'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주변의 눈길을 끌기도 합니다.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 행보는 다시 둘로 나뉩니다. 5년 동안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후천적으로 건축을 좋아하게 되거나(=건축계에 있을 자격을 얻어내거나), 일찌감치 좋아하기를 관두고 설계 수업을 대충대충 들으면서 부지런히 다른 진로를 탐색합니다.

당시 저는 누가 봐도 첫 번째 유형, '건축을 마냥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왜 건축이 좋았냐 하면,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애초에 어떤 분야인지 제대로 알고 좋아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요.

고등학생 땐 도면과 모형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 세계에 그저 마음이 끌렸습니다. 졸업 후 진로가 불안정해질 수 있는 전공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제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전혀 확실치 않았는데도 일단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실제로 설계를 배우게 된 이후에도 배우면 배울수록, 잘하게 되면 잘하게 될수록,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커졌습니다. 한동안은 진로 고민이라는 걸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랑 꼭 맞는 세계를 찾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건축을 배우면서도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먼 미래를 잘 생각하지 않는 성향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에게 건축가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현업에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자, 가이드와 피드백을 통해 건축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건축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들의 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느끼면서도 저 자신이 건축가가 된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건축가가 된 (혹은 되지 않은) 미래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건축과에서 배우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컨셉을 잡는 법을 배웁니다. 둘째, 추상적인 컨셉을 구체적인 형태의 공간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배웁니다. 셋째, 구상한 공간을 도면이나 모형, 각종 이미지를 활용하여 표현하고 이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생각보다 건물을 짓기 위한 전문적 지식은 많이 배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저는 건축과를 나왔는데도 건물의 구조나 재료, 공법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이는 일종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언어가 몸에 익으려면 적어도 두세 번의 설계 수업을 들으며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 언어를 통해서, 어떤 느낌·생각·감각을 전달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생깁니다. 제 경우에도 학부에서 들은 7번의 설계 수업 중 앞선 세 번의 수업은 몰랐던 언어를 익히는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네 번째 수업에 들어섰을 때부터 제가 담고 싶은 이야기를 찾고,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실험을 펼쳐볼 수 있었죠.

그 실험의 시기를 돌이켜보면, 막막함, 간절함, 열정 같은 것이 뒤섞여서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다가오는 삶의 문제에 깊이 생각하고, 이와 관련해 본능적으로 끌리는 공간 언어를 탐색하며, 공간이라는 언어를 나라는 사람과 연결 짓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었습니다. 내적으로 꽤 치열하고 간절하게 여러 시도를 해본 끝에 딱 한 번, 마지막 설계 수업에서 '나를 표현하는 일'에 성공했다고 느꼈습니다. 그제야 '나는 내 생각과 마음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은 지금도 가끔씩 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몇 안 되는 핵심적인 기억입니다. 이 순간에 다다르기까지 건축 수업은 저를 이끌어주다시피 했던 주요한 외부 자극이었죠. 아마 20대 때 그런 자극을 받지 못했더라면(건축과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이 경험을 온 힘을 다해 느끼고 소화하면서 내 인생에 이게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야, 현실을 마주하며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건축 수업을 통해 성장하는 것과 건축가가 되는 것이 많이 다른 일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취직을 하기 전까지, 수차례 인턴 경험을 통해 건축가의 삶을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직장인의 생활 루틴이나 회사원으로서 해야 하는 자잘한 업무 등 낯선 것들도 없지 않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미 건축이라는 세계에 꽤 깊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사회 자체에 섞여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학교 출신이어도 건축과를 나왔다는 것만으로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막연한 연대감을 공유할 수 있었고, 이 세계에 계속 있으면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존중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건축과에 입학하고 싶었을 때와 같은 강한 끌림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현실 속 건물이라는 존재를 막상 마주하니, 저에겐 너무 컸습니다.

뭐랄까, 제가 정말 '건물'이라는 거대한 물질을 만들고 싶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건축과를 다니며 내가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고,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이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랑했지만, 그 결과물이 거대한 건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웠습니다. 나라는 개인에서 출발한 생각과 감각이, 꼭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 존재'로 남아야 할까 싶은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 것입니다. 건물은 물리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맥락적으로도 당장의 사용자뿐 아니라 사회·도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학교에서 배운 개인 중심의 창작 프로세스를 건물에 적용하는 것이 왜인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또한 건물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과 변수를 조율해 가며 완성도를 확보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혼자 힘으로 완성도를 낼 수 있는 범위로 일의 규모를 작게 설정하는 스타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완성도에 대한 기준은 높지만, 타인에게 그 기준을 요구하는 건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그냥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마음껏 저 자신을 소진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편한 업무 방식입니다. 그런데 건축은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을 고집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건축가가 된다면 매일같이 사람들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할 것 같았죠.



또 건축계 안에만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 느낌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현업의 세계로 들어오니, 건축가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학생 시절에도 이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던 반면, 직업이 되는 순간 그것이 삶 전체로 온전히 스며들 것 같았죠. 건축가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은 분명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생활 전반에 클래식하고 깊은 감성이 배어 있고,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과 예술, 디자인, 사회 문제까지 폭넓은 관심사를 나누는 삶…. 한 편으로는 오래도록 꿈꿨던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세계가 눈앞에 가까워지자, 왠지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로 그 짙은 색깔과 강한 매력 때문에 오히려 망설임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 계속 머물다 보면 ‘이러한 삶만이 멋진 삶이고, 평범한 삶은 그렇지 않아’라는 식의 편협함에 빠져들 것 같았습니다. 건축계에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과는 조금 다른, 고유한 엘리트 의식이 있습니다. 계급적으로는 엘리트에 속하지만, 물질적인 부나 지위 대신 아름다움과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이죠. 그 자부심의 이면에는, 건축계 바깥의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의미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하다는 은근한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건축을 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저는 스스로가 그런 의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여길 벗어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때는 이 느낌을 정확히 언어로 정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독립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라는 책을 읽으며, 제가 거리를 두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가를 꿈꿨던 사회학자인 저자 마츠무라 준은, 건축가라는 직업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건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행하는 가치 판단이나 관찰 방식, 즉 ‘건축가의 아비투스’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모든 건축가에게는 ‘건축가다운 행동’이라는 것이 깊이 배어 있다. 그것은 사고방식, 심미적 태도, 패션, 그리고 장비와 문구용품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건축가의 실천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들은 “나는 건축가이니까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건축가이니까 이 건물은 가치 있는 건축이라고 간주하지 말자”처럼 의식 가능한 레벨에서 인지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와 같은 사물의 관찰 방식이나 사고방식은 거의 자동화된 상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물의 관찰 방식이나 사고방식은 오직 대상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일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많은 것을 구별하고 구분 짓는 기능을 가진다. 건축과 그 외의 평범한 건물, 보존해야 할 건축과 부수어도 되는 낡은 건물, 보수가 싸더라도 해야 할 일과 고액의 보수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 일, 게다가 건축가와 비건축가를 구별한다. 건축가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실시하는 이러한 구별의 기준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대체로 일치한다.

이처럼 건축가란, 건축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향과 의식 집합체로 구축된다. 그 집합체에 속하는 건축가는 개인의 건축가에게도 영향을 준다. 이렇게 만들고 만들어지는 순환 운동의 움직임 속에서 건축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 마츠무라 준, 인벨로프, p.38


건축가의 아비투스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교육을 통해 은연중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주입된다는 점에서 조금 무서운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당시 건축 학교의 커리큘럼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그동안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속에 스며들어 온 가치 체계가 있음을 느끼고, 이에 대해 경계심을 느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고민 끝에 취직의 일차적 목표를 '탈건축'으로 설정했습니다.

학부 내내 건축만 배웠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운 좋게 공간 기획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직무를 찾아서 지금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건축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마주했던 고민과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 Yes.
내가 만든 결과물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컸으면 좋겠는가? → No.
(존재감과 영향력이 큰 것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이에 수반되는 노동과 조율의 과정을 감당하고 싶을 정도로 원하지는 않는다)
남과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은가? → No.
(특별한 인생이 싫은 건 아니지만, 특별해지기 위해 ‘남다름’을 기반으로 세워진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은 지금에 와서야 ‘그때 내가 No 쪽으로 기울어 있었구나’ 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된 거지, 당시에는 정말 많이 헷갈렸습니다. 건축을 배우며 발견한 재능을 바탕으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욕심,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욕심이 아예 없었다면 역설적으로 계속 건축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건축가의 아비투스가 뭐든 간에 평범한 직장인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전공을 살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며 건축 회사에 다녔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저의 경우 건축에 대한 애정과 여러 욕망이 한 덩어리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질문에 No라는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건축을 통째로 내려놓는 수준의 큰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지금 건축을 하지 않습니다. 공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제가 느끼는 공적 자아의 정체성은 평범한 직장인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건축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 생겨서 그만둔 게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건축을 좋아합니다. 공간만이 줄 수 있는 감각적 자극을 좋아하고,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정말 좋은 공간은 사람들의 마음을 새로운 세계로 열어준다는 믿음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합니다. 사회•도시적 맥락을 고려한 건축도 좋고, 개인적인 천재성을 가감 없이 발휘한 건축도 좋아합니다. 가끔씩 건축 관련 책이나 전시를 보면서, 건축은 역시 독보적인 매력을 품고 있는 분야라고 다시금 생각하기도 합니다. 건축가가 직업으로 삼기에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 또한 마음속으로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그만둔 후 2-3년 동안은 ‘그 세계에 계속 있었으면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더 크고 멋진 것을 만들어볼 수 있었을까’ 하고 종종 되묻기도 했습니다. 한때 너무 좋아했던 세상이기에 끝까지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도 했고요. 하지만 확실히,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건축을 배울 때는 항상 나만의 것을 찾아서 끌어내고 표현해서 증명해야 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지금의 이 삶 속에서, 제가 만들 수 있는 좋은 것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만드는 것들은 그 결과물이 눈에 잘 보이지 않거나, 충분히 크지 않거나,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아서 단 몇 사람에게 밖에 영향을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저 자신에게 ‘자유롭고 편안하다면’ 그것만으로 행복을 쌓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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