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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Feb 06. 2022

食. 나만 집밥 판타지 없어

집밥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다니다 보면 가끔 “아, 여기 (밥이) 집밥 같네요” 같은 평가와 맞닥뜨린다. 그것이 긍정적인 뉘앙스란 걸 깨닫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른바 외식, 즉 해 먹는 게 아니라 사 먹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 지 오래라 ‘집(에서 해 먹는)밥’이란 개념이 친숙하지 않은 까닭이다. 같은 밥집인데 어디는 집밥 같고 어디는 식당밥 같다는 평가의 기준도 모호하기 짝이 없다. 반찬이 소박하고 간이 약하면 집밥인가? 요리하는 이의 손맛에 따라 간이 센 집밥도 있지 않겠는가? 아마도 나를 제외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긴밀히 형성된, ‘집밥’에 대한 개념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추측컨대 그것은 ‘엄마가 해준 밥’이나 ‘향수’ 같은 개념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어릴 때 내가 먹은 게 ‘집밥’에 가장 가까운 형태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때에도 집에는 상차림 담당이 없었고 아무도 요리를 즐겨 하지 않았다. 내가 받는 밥상에는 애정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것이 담겨 있었다. 나의 불만은 그 밥의 구성 성분이 아니라 맛에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만의 정도가 심각한 것은 아니었고, ‘아, 밥 대신 빵이나 과자 먹고 싶다’라는 게 전부였다. “밥 대신 과자 한 봉지 더 먹으면 안 돼?”라고 물어보면 내 양친은 도리어 기뻐했다. 만약 내가 손수 만든 음식만 입에 대던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료 쪽으로 식성이 바뀐다면 아마 나도 기쁠 것이다. 물론 나는 내 양친과는 달라서, 섣불리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결정하지 않는 신중함이 있다.


그렇게 먹은 ‘집밥’은 내가 직접 씻어 전기밥솥에 안친 쌀로 지은 그냥저냥한 밥과, 다른 때에도 딱히 생각나지는 않는 그냥저냥한 밑반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급식에 나오는 조잡한 스파게티나 기름진 계란후라이가 내 입맛에는 더 맞았다. 입맛에 맞는 걸 일주일에 두세 번 먹을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거지,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누구나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맛없는 밥을 먹는 사람, 더 심하면 끼니를 거르는 사람도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너네 밥 해주는 사람이야?” 같은 말을 듣고 자라 ‘엄마는 밥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다소 급진적인 가치관도 체화했다. 덕분에 지금은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면서 여성 인권에 대해 논한다고?” 하고 코웃음치는 훌륭한 어른이 됐다. 모름지기 어른이라면 자기 끼니는 스스로 해결해야지.


끼니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요리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혼자 산다고 하면 종종 받는 피곤한 질문  하나인데, 십중팔구는 ‘여자니까 요리를 하겠지라는 기대가  질문에 담겨 있다. “ 먹는데요.” 하고 솔직하게 답했다가 진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마디 넘게 나눠야 하는 곤욕을 치른  한두 번이 아니다. 초면에 저걸 물어보는 사람과의 대화는 백이면  “ 먹으면 너무 비싸지 않아요?” “건강에 해로워요.” “밀키트 같은  주말에 만들어 두면 한데. 이어진다. 내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생판 남에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나는 “젓가락으로요. 대답한다. 그럼 상대방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 높은 확률로 나와 대화하기를 포기한다. 애초에 질문에 배려가 없던  잘못이다. 저는 바쁘니까 궁금한  있으면 예스  퀘스천을 던져 주십쇼. “식사는 해 드시나요?” “아니요.” “그럼 사 드시나요?” “네.” 간결하고 아름다운 대화 아닌가.


인스타그램에서 #집밥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무려 게시물 992만 개가 뜨는데, 역병의 시대에 외식이 줄면서 ‘집밥’의 외연도 확장된 모양새다. 밥-국-밑반찬을 정갈하게 담아 낸 밥상도 배달 음식 패키지를 그대로 올린 밥상도 다 #집밥이라고 한다. #집밥은 회사 동료가 백반집에서 아련하게 “집밥 같네요”라고 할 때의 그것과 의미가 사뭇 다르다. ‘해 먹어도 사 먹어도 집에서 먹으니까 집밥’인 셈인데, 그렇다면 굳이 ‘집밥’이란 용어를 쓸 필요가 있나. 아무래도 그 말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나한테 밥은 어디서 먹든 밥이며, 심지어 나는 쌀밥도 자주 안 먹다 보니 식사를 ‘밥’이라 부르는 것도 어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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