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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Jan 09. 2024

당신의 미시적 동기는 무엇입니까

토드 로즈, 『다크호스』

‘다크호스’
표준적 개념에 따른 승자와는 거리가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뜻밖의 승자


토드 로즈의 『다크호스』에서는 다크호스가 되는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미시적 동기micro-motive 찾기’를 강조한다. 미시적 동기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보편적 동기와는 거리가 먼 개개인의 고유한 흥미다. ‘물건을 내 손으로 가지런히 정렬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새의 지저귐을 듣고 어떤 새인지 구분하는 방식이 너무나 흥미롭다’처럼, 특정하고 구체적인 분야에 국한된 관심사가 바로 이 미시적 동기에 해당한다.

 

표준화 계약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미시적 동기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다. ‘이렇게 사소한 것도 동기라고 할 수 있나?’라는 자기검열이 계속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마음에 든다면 그 일의 어떤 부분이 왜 좋은 것인지, 나에게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의 미시적 동기는 주로 ‘체계화’라는 테마와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콘텐츠 기획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콘텐츠를 분류하고 쪼개면서 위계의 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대Saas 시대에 태어난 온갖 생산성 툴에 환장하고 특히 asana나 Jira 같은 프로젝트 관리 도구들이 어떤 식으로 관리와 협업을 지원하는지 관찰하고 일을 조직하고 체크리스트를 지워 나가는 게 좋다. (매니저가 되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프로젝트 관리 도구의 더 높은 관리 권한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산성 tool 컨설턴트’ 같은 직무가 있다면 그게 되기 위해 내 소중한 개인 시간도 얼마든지 투자했을 것이다. 


당연히 notion도 좋아해서 거의 모든 것을 거기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짱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틈만 나면 notion을 가르쳐 주려고 할 정도다. 이렇게 좋은데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쓰지 않는 거야. (최근엔 notion ambassador가 되는 법도 알아봤는데, 시험을 보기에 앞서 나 같은 내향형 인간에게 다소 무리인 커뮤니티 활동을 해야 된대서 잠깐 그 생각을 접어 두었다.) 


또다른 나의 미시적 동기는 ‘크리에이티브’이며, 이것은 나의 개인적 삶의 영역에서 이미 제몫을 열심히 해 내고 있다. 


 『다크호스』에 나오는 다크호스들은 표준화 계약, 즉 대학을 졸업해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하고 괜찮은 회사에서 일관된 경력을 쌓아 가는 방식의 커리어와는 다소 다른 커리어 맵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직장인이어서, ‘그래, 멋지긴 한데 결국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아직도 전공이나 일관된 커리어를 따지는 회사가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경제 불황의 시대에 ‘훌륭한 커리어’라는 개념은 얼마나 공허한가. 작년부터 수십 억, 수백 억씩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고통스러운 피봇팅을 하고 폐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니는 회사의 네임 밸류를 바탕으로 강연도 하고 책도 쓰던 ‘guru’들이 회사의 경영상 문제로 퇴사하고 슬그머니 콘텐츠를 내리는 것도 나는 몇 번 목격했다. 아무리 좋고 유명한 회사도 이렇듯 하루 아침에 훅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더 이상 이직할 회사가 없다면 커리어가 삐딱선을 타는 것이다. 회사 명함이 나의 시장 가치를 유지시켜 주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내 미시적 동기에 부합하는 일을, 괜찮은 회사에서 적당한 강도로 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으므로 내가 여전히 날백수인 것이겠지만 날백수의 눈으로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내 미시적 동기가 충족된 기간은 전체 회사 생활의 10%가 될까 말까 했다. 그렇게 적성에도 안 맞는 회사 생활을 곧잘 일 좀 한다 소리도 들으며 용케 10년 넘게 해서 지금껏 잘도 먹고 살아왔네, 생각해 보니. 


‘지난번 그 회사가 내 마지막 회사라면’이라는 가정하에 내가 하고 싶은, 잘하는 일들을 이것저것 구상해 보았는데, 나는 여전히 표준화 계약의 접근법을 버리지 못하는지라 12월에는 일단 자격증부터 하나 땄다. 


또 나는 주변 사람들의 미시적 동기가 뭔지도 정말 궁금한데, ‘당신의 일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이며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면 의외로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대답이 많이 나온다. (그러면 난 좀 화가 난다.) 개인의 미시적 동기만큼 수천만 개의 직무가 있고, 그 직무들이 전부 즐겁게 먹고살 만한 연봉을 보장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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