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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Y의 미술관 산책

국현대미술관 | 올해의 작가상 2024, 양정욱

by 은이은




기존 질서에 철저히 속박되어 있고 순응하면서도 Y는 언제나 삐딱한 시선으로 사람과 세상을 본다. 일종의 '젠체'라고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왔으면서도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작품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어?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바코드를 읽히고 들어가서, 사진을 여러 장 찍긴 했다. 특별하게 조작된 공간, 그리고 각별하게 연출된 조명을 받으면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물은 없는 거잖아? 이러면서. Y에게 현대미술이란 그저 '낯설게 하기'란 깃발을 따라, 현학적 언어들을 불필요한 노력에 버무리는 그런 가식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럼 Y는 왜 미술관에 왔냐고? 심심했으니까. 회사와 집, 그 무한히 반복될 것 같은 숨 막히는 루틴에서 한 걸음이라도 비켜서고 싶었으니까.


1층에서 시작된 '올해의 작가상 2024'전시는 지하로 이어졌다. 지하로 내려가는 이 계단에 어떤 비극적인 대화가 있었을까. 오싹한 이야기들이 많았겠지? 뜬금없이, Y는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헌법재판소와 광화문에서 멀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민간인의 수첩에서 나온 단어들이 그렇게 무시무시한데.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데. 이 건물은 군 병원 아니었나? 지하로 이어지는 길이라면 반드시 시체 안치실이 있었을 텐데. 흰 페인트로 정갈하게 정리된 각지고 높은 천장과 거기에 달린 차가운 빛 조명이 어쩐지 어떤 끔찍한 이야기를 곧바로 시작할 것 같아서 조금은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20250216_132016.jpg ⓒ unyiun


아마도 유명한 작가일 것이다. Y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일 뿐. 소리였다. 그건. 그의 감각 중 가장 먼저 반응했던 건 귀였다. 종소리, 혹은 풍경소리. 일정하지만 완전히 같은 간격으로 울리지는 않는. 바람소리나, 시냇물이 조약돌을 쓰다듬으며 흐르는 돌돌 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뭔가 인간이 만든 물건이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분명했지만 그 소리 자체가 인공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묘했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것은 일종의 모빌이었다. 나무와 도르래 레일, 실, 천조각, 플라스틱 전구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복합적으로 써서 만든 작품이었다. 조형적으로 어떤 사물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형태는 아니었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이동식 빨래걸이같이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그러나 사진으로 붙잡기 어려운 것이었다. 작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어떤 벡터값을 만들어내는데, 그 움직임과 궤적이 시각으로 전달되는 어떤 파장을 만들어 Y에게 보내고 있었다. 왜, 아름다울까.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Y는 질문했다.


ⓒ unyiun


작품을 둘러싸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분필로 벽에 그은 선만큼이나 그 작품의 일부였다. 검은색 의자 위에는 A5 크기의 얇고 작은 책이 있었다. 책을 먼저 썼는지, 작품을 먼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차분하게 담겨있었다. 일단 Y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작품을 지켜보기로 했다.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전기 모터였다. 그런데 그 모터가 만든 회전력은 밀고 당김으로 전환되었고, 그 매개가 된 물건들 - 막대, 줄, 도르래가 연결되고 관계 맺어지는 특수한 조합에 따라서 서로 다른 호흡으로 반응했다. 한 개의 모터인지, 여러 개의 모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은 하나의 맥박(모터)에 지배되면서도 만신처럼 수 만 개의 호흡을 하는 존재로 자신을 열어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낯설던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게 느꼈던 것이다.


우리가 관찰하는 대개의 자연은 그 어느 것도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뭇잎을 떨어뜨린, 혹은 녹음이 우거진 나무를 생각해 보자. 바람의 속도와 방향은 매번 다르고 나무는 수백, 수천 개의 손들을 그에 맞추어 흔든다. 생각해 보라. 그 가지들이, 그 많은 나뭇잎들이 모두 동시에 똑같은 방향, 똑같은 모습으로 떨고 뒤척인다면. 어느 나른한 오후 이불 위에 앉은 고양이가 햇살을 맞으며 하품을 하는데, 서로 다른 자리에 솟아있는 고양이의 수염이 동시에 같은 각도로 움직인다면.


소리는 녹음되어 재생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들었던 풍경소리는 줄에 매달린 나무 막대기가 사기그릇을 툭 쳐서 나는 소리였다.


ⓒ unyiun


나무 막대기를 연결한 것이 딱딱한 부품이었다면, 그건 오르골이 그렇듯 매번 정확한 박자에 정확힌 길이의 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 막대기는 줄에 연결되어 있어서 더 크게 우연성이 작용하도록 설계됐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통에 든 구슬을 굴리는 듯한 소리가 났는데 그 역시 비슷한 방식이었다. 구슬이 담긴 조그만 통은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면서 끌린다. 이 동작이 진행되는 동안 도르르 하며 구슬은 통의 벽을 타고 흐른다.


작가가 소리를 다루듯, 빛을 다루는 솜씨도 남달랐다. 작품 안에 동그란 빛의 반사체가 움직이는 걸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품에는 여러 개의 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 등의 빛을 동전만 한 거울이 반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울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나무 막대의 끝에 달려 피아노의 해머가 움직이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물론 덜 규칙적으로 말이다.


Y는 문득 궁금했다.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작품을 둘러싼 의자. 그 의자에 놓인 얇은 책에 들어있는 작가의 글은 이랬다.


"우리의 마음은 뜻하지 않게 변화하지만, 칸막이가 없는 한 개의 그릇으로 된 탓에 골고루 마음을 나누어 담지 못한다. 그 마음들을 우연히 구분 지어 담는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많이 담긴 마음으로 물든다." (양정욱, '서로 아껴 주는 마음')


"그는 아버지가 보내왔던 수확물들의 모양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손으로 몇 개를 거두었는데, 그것들을 담을 그릇들을 찾다가 아버지가 남긴 몇 개의 도구를 발견했다. 나무와 쇠붙이로 이루어진 것들은 원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각자의 선명한 기능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 도구들을 한참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손과 흘렸을 땀의 모양들을 떠올리며 추수를 시작했다.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 (양정욱,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


"그는 언제나 좁은 어항에서 벗어나면 방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방을 벗어나면 그다음에는 건물을, 그다음에는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사실은 그가 벗어나야 할 것은 점점 커져가는 그의 등딱지이다."(양정욱, '우리들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뭐야?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거야. Y는 질투심이 폭발했다. 그래서였을까? Y는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그 공간 자체가 작품인 것처럼 꾸며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공간을 나누는 가벽에도 분필로된 긴 선이 있다. 그 선 아래에 조명이 켜진 작은 전시실이 있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장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다. 각각의 장엔 30개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오브제들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서있다. 나사못, 베어링, 빨간색 플라스틱 조각, 먼지, 전선 피복, 천 쪼가리 같은 것들이다. 작품 설치를 위한 공사를 하다가 쓰레기로 나온 것일 지도 모른다. 어디서 일부러 그런 물건들을 가져왔을까? 그런데 그 작은 것들, 세상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으나 없느냐 어떤 의미를 발생시킬 것 같지 않은 그 오브제들의 배열이 어떤 의미로 읽혔다.


20250216_133238.jpg ⓒ unyiun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지금 당신의 주머니에는 작은 먼지가 있고, 무심하게 받은 영수증 종이가 있고, 신발 밑창 어딘가 작은 돌멩이들이 준비되어 있다. 당신의 손가락으로 하얀 벽을 계속 문지르면 흐린 연필이 되고, 비가 오면 당신의 발은 수채를 하고, 당신이 웃으면 어느 작은 램프가 된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양정욱, '일시적인 약도')


Y는 거부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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