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시각화

'단 하나, 혹은 소수일 것'에서 전개한 생각의 다음 편

by 은이은



Y는 요즘 부쩍 두려움을 느낀다. '몽상가'라는 스스로의 설정처럼 Y는 'SF 소설가의 한가한 공상일까?' 여러 번 반문했지만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날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막연하게 두려운 것도 아니다. 이유가 분명하다. 하나는 도통 '방향'을 짐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두 번째, 그 어느 때 보다도 변화를 인지하고 수용하는 '지체' 현상이 사람들 가운데 심하다고 느낀다.


Y는 사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노력할 뿐 소설가는 아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및 운영, 유튜브 운영, 영화 및 드라마 유통 등을 하는 회사에 다닌다. 매일 아침 스크랩을 하는 것도 관련 업계 동향을 공부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요즘은 업계 동향 기사 스크랩 외에 하는 게 하나 더 늘었다. 스레드라는 소셜 플랫폼을 통해 OpenAI나 엔트로픽, 구글 등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동향을 살피고 있다. 그런데 Y가 매일아침 느끼는 감정이 같다. 복잡하게 말할 것도 없다. '빠르다', '무섭다'는 딱 두 단어다.


Y는 1995년 방송사 기자로 입사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2010년대부터 '보도국 기자'로 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기회이기도 했다. 스마트폰 탄생,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졌던 일들을 '플랫폼의 측면'에서, 그리고 '콘텐츠의 측면'에서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다.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 아이폰을 들고 나온 이후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그리고 전반적인 우리 삶의 방식도 변했다. 혹자는 '극적인 변화'라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일들과 비교해 보면 서서히 진행되었다.


첫 번째, 플랫폼(통신)의 변화는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전화선에서 ADSL, 초고속 망으로. 집에 한 대 있던 유선전화에서 삐삐, 시티폰, 휴대폰으로 발전했다. 두 번째, 콘텐츠 저작도구 측면의 변화도 비슷한 시점에 변모하기 시작했다. 흑백 XT 컴퓨터에서 컬러로. 운영체제는 도스에서 마우스를 사용하는 윈도스로 바뀌었다. 세 번째, 이런 인프라(플랫폼, 저작도구)의 변화에 따라, PC통신 시절 주류를 차지하던 텍스트 콘텐츠는 급속히 사진으로 옮아갔다. 플랫폼의 변화가 완숙기에 접어들자, UCC(user created content)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그게 2000년대 중반이었다.


결국 아이폰(스마트폰)은 이러한 플랫폼의 변화, 콘텐츠 저작도구의 변화, 그리고 콘텐츠 생산자의 변화, 콘텐츠 자체의 변화가 ‘이미 무르익던 정점’에 던져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면, 아이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변화'들이 더 광범위하게 촉발되고 진행되긴 했지만 그 변화들은 예상 가능한 범위-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의 범주 안에 들어있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이 그 변화를 충분히 인지했고, 그 변화에 따른 규범적 측면 - 법과 제도가 마련되고 작동할 시간도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은 과거의 것과 비교할 때 양태가 다르다.


너무 빡빡하니까, 잠깐 쉬어가는 셈 치고 짧은 동영상 하나를 보자. 2011년에 제작된 공중파 다큐멘터리의 한 부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WK9nRW595o&t=92s


“전화,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전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고 있는데 아래 링크는 그 다큐 안에 삽입된 미니드라마이다. 2011년에 ’ 10년 뒤 미래‘를 그린 미니드라마에서 보여주려 했던 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1)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인 비서를 스마트폰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고 (2) 그 의존성 때문에 정작 사람들과의 대면이나 음성통화에 소홀해지게 될 것이다. ’(2)‘는 어떤지 몰라도 ’(1)‘은 확실히 현실이 되었다. 드라마에 나온 2021년은 아니지만, 3년 뒤인 2024년에 말이다. 그리고 2024년 이후 변화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특히 몸을 가진 로봇이 인공지능과 연결되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변화의 속도와 폭이 빠르고 광범위하다.


소설가 Y가, 그의 필명을 '은이은'이라 지었던 이유는 SF소설을 쓰고자 했던 이유와 같았다. 앞서 얘기했던 '지체'현상이 나타날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고, '곧 다가올 세계와 현재의 삶의 터에서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Y조차도 요즘 현기증을 느낀다. 과연 따라잡을 수 있는 흐름인지 의심이 든다.


소설을 쓰는 일도 훨씬 더 어려워졌다. 현재 연재하고 있는 '붉은 별의 조난자'는 또 다른 장편소설 '푸른 그림자'와 함께 2010년 전후에 구상되고 2017년 정도에 시작되었던 소설이었다. 그런데 당시 쓸 때만 해도 20~30년 뒤에 이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변화들이 지금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하나하나 달성되고 있다. 따라서 원래의 의도 - 지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 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변화를 민감히 읽고, 그 흐름의 함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데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애초에 Y는 '스타워즈' 류의 판타지를 쓰고 싶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일종의 경고문 같은 거다. 다가올 급격한 변화에 대한. 원래는 SF 소설로 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습작을 몇 개 쓴 게 전부인 Y로서는 그 정도의 실력이 안 된다는 걸, 무엇보다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앞서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변화에 대해 썼던 문단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해서 써보겠다.


첫 번째, 과거 플랫폼 변화는 PC에서 모바일로 변했어도 '검색한다'는 행위의 정의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플랫폼의 유사성도 유지되었다. 그런데 AI로 인한 변화는 "검색한다"는 행위를 "묻는다"는 행위로 통째로 바꾸게 될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데?'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례 두 가지만 대보면, 구글이라는 거대기업을 돌아가게 하는 가장 최대의 수익원이 검색광고다. 네이버라는 작은 기업이 오늘날의 네이버가 된 것은 '지식인 검색'이라는 엉뚱한 서비스를 창안해 냈기 때문이다. 검색은 PC-모바일 시대의 핵심 동력이었다. 검색은 또한 인간에 의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지식의 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검색한다'는 행위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 또한 무너지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정보(텍스트, 이미지, 동영상)가 옳고 그른지는 차치하고 그게 과연 사람이 작성한 것인지 로봇이 작성한 것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은 점진적이지도 단계적이지도 않다. 예를 들어 챗GPT 사용자는 지구 역사상 어떤 플랫폼 보다도 가장 빠르게 많은 사용자를 모았다. 언어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어 로컬과 글로벌의 구분도 없다.


두 번째, 콘텐츠 저작도구 측면의 변화 또한 점진적이지 않다. 흑백사진에서 컬러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화질 높은 동영상으로 단계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 최근 1년 사이에 그림(미드저니), 동영상(소라, Veo, 클링, 런웨이), 음악(Suno) 등의 도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데생을 못 하고 한 번도 카메라를 잡아보지 않고,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아도 이젠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의 수준도 매우 높아서 우리나라의 무명 창작자가 만든 영상이 글로벌 브랜드의 광고로 채택되는 일이 벌어진다.


세 번째, 결과물인 콘텐츠의 유형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벌어지게 될지 Y는 알지 못한다. 다만 콘텐츠를 둘러싼 권력관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언뜻 보면 더 개방적인 방향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독점적인 방향일 가능성이 높다. 생산수단의 독점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빅테크들의 시장 장악을 위한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이라 이미지도, 동영상도, 작곡도 싸게 혹은 무료로 만들지만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결국 매우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그런 저작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구글은 사진을 저장하는 '구글포토'도 '구글드라이브'도 전부 공짜로 쓰게 했는데 결국 사용자들의 의존도를 높인 뒤에는 거의 모든 서비스를 유료화하고 있다. 중국이 국가적인 역량을 투입해 AI 개발에 열을 올리고 미국은 중국 유학생을 안 받겠다고 하고 칩 수출도 통제하는 등의 전략을 펴는 것도 다 이런 구도에서 나온다.


너무 비관적인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Y가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 구도는 이러하다.


다만 Y는 궁금해하고 있다. 사회, 국가는 고도로 복잡한 '계', '시스템'이다. 즉, 오랜 세월 동안 모양을 갖춰가며 진화해 온 존재이므로 균형점들이 있고, 사람으로 보자면 갑자기 머리가 커진다던지 한쪽 다리만 길어진다고 하면 그 균형, 항상성이 깨어질 수밖에 없다. 빅테크 공룡들은 '피지컬 AI'를 외치며 이제 로봇이 모든 것을 대체할 거라고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_bar.jpeg



매거진의 이전글단 하나, 혹은 소수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