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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우 Nov 11. 2023

서류에서 바로 떨어졌습니다.

투잡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10년간 회사생활 / 7년간 자영업자

코로나 이후 폐업 / 신용회복 3년 차

40대 아저씨 /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아빠

아파트 야간경비 / 방제회사 영업직 투자러

슬기로운 신용회복기 / 함경북도마오카이입니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에 쓴 글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생각나는 나의 영업구역



오늘은 제가 일하는 보안요원의 월급날입니다. 세전 284만 원 세후 실수령 250만 원. 벌써 여기서도 11번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이제 한 달만 더 버티면 퇴직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 영업직으로 이직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서류에서 바로 떨어졌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니 폐업 고민 하시는 사장님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2년 전이었죠. 카드론이며 캐피탈 돈을 돌려가며 매장을 지키려 했으나 몇 달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가 뭐 하고 있나... 냉정하게 생각하게 됐고 최소한의 건질 수 있는 금액으로 집기를 정리하고 폐업을 했습니다. 그때 부가세. 국민연금 연체금을 아직도 분할로 갚고 있습니다. 저와 와이프 둘 다 신용회복에 들어갔고요.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집은 월세로 옮기고도 신용회복 들어갔습니다. 1억 넘는 부채를 10년 분할 상환 중입니다. 그중 2년 넘게 갚았습니다.



매장을 정리하고 보험사. 컴퓨터수리기사. 과일노점상을 전전하다가 아파트경비+영업직 투잡을 뛰게 되었고 와이프까지 영업에 뛰어들면서 맞벌이+투잡으로 생활고에서 벗어났습니다. 2년간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보니 제가 내면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것을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생활고를 한창 겪던 시절 정말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채권팀에서 하도 집에 찾아와서 숨죽이고 없는 척하고. 친인척 집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과일을 노점에 깔아 두고 장사하고 있는데 채권단이 문 따고 들어가서 차압딱지를 붙이겠다는 최종통보를 받았습니다. 과일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달려가 애들 저금통까지 털어서 겨우 100만 원을 만들어 딱지 붙는 건 일단 일시적으로 막았습니다. 애들에게 최악의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죽지도 못하겠더군요. 남은 가족들에게 죽어서도 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하루도 안 싸운 날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라도 생활고가 계속되면 예민해지기 마련이더군요. 누가 잘했나 잘못했나 잘잘못을 떠나 희망이 없었던 그 순간순간 자체가 저나 와이프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습니다.



아내를 달래고 달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금방 일어설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둘 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교회에 가서 맨 구석 뒷자리에서 둘 다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취업을 하고 시간을 쪼개서 투잡을 뛰고 아내는 애들을 케어하면서도 영업일에 진심을 쏟아냈습니다.



23년 1월에 400만 원에서 시작한 맞벌이+투잡 가계 수입이 10월에 800만 원을 넘겼습니다. 장사할 때는 참 인건비가 무서웠는데 인건비를 받는 입장으로 오니 몸뚱이가 가장 큰 재산이더군요. 영업도 부지런히 발품 팔다 보니 어느 정도 수익이 나고 있었고 생각했던 기간보다 훨씬 빨리 목표에 도달한 듯합니다. 아내의 역할이 엄청 컸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영업을 갈지 전반적인 기획을 합니다.



얼마 전 투잡을 그만두려고 대기업 영업직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기본급은 200만 원 수준이지만 인센티브 비중이 커서 상위 10% 정도는 실수령 7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보는 직종이었습니다. 제발 면접까지만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했으나 서류에서 바로 떨어졌습니다. 나이도 많고 관련 경력도 없을뿐더러 자격증. 영어점수 하나 없었죠.(대기업 다니는 제 친구들이 차장, 부장 급이던데... 저라도 마흔 넘은 신입사원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계속 이렇게 살인적인 스케줄의 투잡을 이어나갈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잠을 이틀에 한번 잡니다.ㅎㅎ)

다시 장사를 하던 투잡을 뛰던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스쿼트를 꾸준히 하기 시작했고(하루에 10회씩 10번 이상) 집이 20층이라 하루에 한 번은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단 하체를 키워야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중요한 건 의지와 꾸준함인 듯합니다. 단단해지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보니 힘들어서 못할 것 같던 택배일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는 아파트에 오시는 택배기사 : 40대 여자분 키가 150cm 정도로 작은 체구인데도 자기 키만 한 카트를 밀며 하루 300개 이상 물량을 한다고 하십니다. 그분 보고 있으면 저분도 하는데 내가 못할까 싶습니다.  무료하게 시간만 죽이는 아파트 보안경비를 대체할만한 것으로 야간식품배송택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택배를 하면서도 낮에는 영업일을 할 생각입니다.



결국 최종 목표는 다시 장사를 하는 것이지만... 

빚 없는 온전한 제 매장을 갖기를 원하기에 단계적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쓸만한 중고 탑차를 사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파트경비를 열심히 하고 벌레 잡는 영업도. 정수기 공기청정기도 열심히 팔아가며 하체 근육도 키워가고 있습니다. 목표가 생기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최근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어 씁니다. (다음 30분은 뭘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커맨더센터는 불타고 있고 남아있는 scv 한 마리로 열심히 미네랄을 캐야만 하는 게 제 상황인데 문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와 체력이 관건이더군요. 




작은 것이라도 목표를 세우고 시간을 쪼개서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20층을 3분 만에 오르는 것과 (지금은 4분 정도 걸립니다 : 처음에는 10분 넘게 걸렸습니다.)

*내년 3월까지는 탑차를 사는 것에 보태기 위해 하루 1만 원 정도 지출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미 짠내 나게 생활하고 있지만... 거기서 만원 더)

*보안일을 할 때 휴게시간 1시간은 가까운 공원에 가서 3km 정도를 빠르게 걷고 옵니다.(결국 하체단련)

*언젠가 대기업 영업직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영어공부도 시작했는데 이 부분은 시간이 꾀나 걸릴 것 같습니다. (영어 라디오방송을 그냥 청취만 하는 수준입니다. 한 달 정도 하니 그래도 조금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작은 목표들이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희망은 없고 무기력했던 예전과는 달리 그래도 준비를 잘하면 계획처럼 이룰 수 있다는 목표가 주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막연한 목표가 아닌 소소하지만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목표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본진은 털려도 업그레이드는 남더라...

scv 부지런히 움직여서 배틀크루즈 2부대로 다시 나타날 그날까지...



저보다 더 힘든 일 겪은 분도 많으시겠지만 

현재 어려움 겪고 있는 사장님들께 저의 이런 소소한 제 이야기라도 힘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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