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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멍 Dec 17. 2022

한날한시에 같이 죽어야지

지키지 못할 많은 약속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한낱한시에 같이 죽어야지. 여기서 죽는다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퇴원을 앞두고 있다 열이나서 퇴원을 못했다.

82세의 폐암에 뼈전이까지 되어 오른쪽 팔에 팔걸이까지 하신 분은 "다음날에는 나 꼭 퇴원하게 해주소~" 당부를 하면 옆에 계시는 배우자 분이 "그걸 교수님한테 말해야지. 간호사 선생님한테 말을 계속하면 우야노" 하셨었다.


뼈전이까지 되어 통증이 심했다. 진통제를 먹고 붙이고 하셔도 팔까지 불편한 분은 밤에는 앉아서 꾸벅꾸벅 졸곤 하였다. 옆에 있는 보호자 분이 주무시고 계시면 혼자 왔다갔다하셔서 종종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 하곤 했다.


그렇게 퇴원을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이번에는 객혈을 한차례 하셨다. 입원중에는 없었던 객혈에 CT도 찍었으며 상태는 갑작스럽게 나빠져 빠르게 숨차하셨다.


결국 Airvo라는 일단 기도삽관하기 전에 쓸 수 있는 최대치의 산소를 쓰게 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산소는 뚝뚝 떨어져 쓰고있던 산소수치는 점차 올렸고 숨차하면 오르는 맥박수에 보호자분은 걱정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환자분이랑 보호자랑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계셨다. 식사를 잘 하지는 못하시지만 앉아서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보호자 분께서 뭐라하셨는지는 못 들었지만 환자분이 더럭 조용히 "나는 여기서 죽을거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니 그 씩씩하던 배우자 분이 "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한낱한시에 같이 죽어야지. 여기서 죽는다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다.


그옆의 환자분은 상태가 좋지않아 옆에 다른 보호자분이 오셨다. 친척즈음인 것 같았다.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잠깐 본 것 같은데 "우리 이제 가볼게요. 오래 있어도 안되고. 다음에 또 만나요" 하였다.


또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였다


몇십년을 같이 사시면서 한낱한시에 같이 죽자는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자며 말하였다.

사이가 아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별다를 것 없이 지냈고 같이 아이도 키우고 슬픈 일도 기쁜 일도 함께했었다.

우리 같이 가자던 여행지도 아직 못 가봤는데 그 약속 꼭 지키라며.

죽음을 앞둔 이 앞에 이 많은 약속은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정말 사람은 본인이 죽을 때가 언제인지 느낌이 올 때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그 분은 퇴원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몸의 컨디션이 많이 나빠지신 것을 본인 스스로 느끼셨을 것이며 보호자 분께서 밥을 좀 더 먹으라는 말에 아니라고 하셨을 거다

면회를 온 분들에게 "그래 얼른 가고."라는 마침말에 다시 보자라는 말이 없었다.


친척들은 "또 봐요" 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그런 이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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