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발렌어스 브랜드 다이어리 01

by 장재현입니다
20대를 전부 소비한 직업을 담백하게 말하기가 참 쉽지 않다.
썼다 지웠던 내용 전부 찬란한 시절에 대한 감정이 묻어있어 구질구질하다.
요리사였다. 다섯 글자면 설명될 것이 참 많은 말을 하게 한다.


내가 요리사로 커리어를 쌓아 나가던 모든 경험은 결국 독자적인 생존력과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었다.

호텔이 아니라 레스토랑을 선택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 또한 경쟁력을 위해서였다.

다양한 요리사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했다.


요리사는 요리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새로운 트렌드의 요리를 공부하고 적용시켜보지 않으면 내 요리를 하기 전에 도태된다.
영어공부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트렌드를 확인할 수 없다.
어느 업계든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어느 정도의 경험을 쌓아놓고 그 크기에 만족하고 있는다면
잔뜩 나타난 신선한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잃는 거다.


3-5년 차 까지만 해도 나만 잘하면 사실문제없었다. 작은 결정이라도 해야 할 입장이 되고 보니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능력을 지닌 동료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을 진행하면 혼자 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게 된단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팀을 움직여 일을 해내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다수의 인원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경험하면서 협업의 효과와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 집중했다.

출처 스와니예 티비 (레스토랑에서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도 나에겐 특별한 일이었다. 이게 5년 전이다.)
주방은 대체로 영웅주의다. 1명의 능력과 인지도로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문화재 전수자처럼 근무하고, 불합리에 항명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다음 직장 셰프도 우리 셰프의 지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셰프가 써 준 레퍼런스의 힘은 위대하다.
("업계 좁다"는 말은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 중 한 가지였다. 참 많은 뜻을 내포한다.)
그런 환경에서 근무를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을 한다는 개념은 "셰프 입장의 생각"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날수록 LATTE IS HORSE는 지천에 깔리게 된다. 심지어 나도 쓴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나는 집단 지성을 사용할 줄 아는 리더를 만난 덕에 사고의 틀을 넓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들은 사실 주방 안에서나 두드러지는 경쟁력이고, 소위 자영업자가 된다면 진짜 생존을 논해야 한다.

음식을 너무나도 잘하는 선배들이 백전백패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보다 잘나지 않은 나로선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나보다 잘난 선배가 나가서 무참히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다.


음식을 잘 하지만 망하는 요리사가 정말 많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에 음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셰프뿐 아니라 공간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점을 장점화 시키는 방법도 있다.

선택받는다는 것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

요리사는 자신의 생각을 음식으로 표현하고, 소비자는 이에 공감한다.

해시태그와 리뷰에 맛과 분위기는 정말 자주 등장한다.


포괄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엔 뭐라고 설명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이 고든 램지를 이미지화하는 무엇인가, 혹은 맥도널드 로고송을 듣고 상기하는 어떤 이미지,

명품이 가진 고급스러움, 내가 좋아하던 공간들과 안정적이라 느끼던 감정들.




브랜드였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브랜드 그 자체였다. 이름/로고/스타트업 분위기/ 스토리텔링/ 코어 벨류/자체 프로그램 및 브랜드 마케팅/기타 꼽을 내용이 너무나도 많지만, 시스템이 형성된 레스토랑이라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고, 신박했다.

하루 종일 팀 단위로 움직이는 주방에서 동료는 항상 중요하다. 그땐 우리가 시스템이었다.

레스토랑에 적용된 시스템은 다양했지만, 기존의 주방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브레인스토밍과 다양한 시도가 납득이 될 만한 스토리 텔링 작업, 프로토 타입 돌려보고 고객 취향 확인하기(정기적인 팝업 레스토랑), 수평적 구조의 팀원 설정으로 뻣뻣하지 않은 조직을 유지하면서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방법 등 수직적인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일들이 주방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주방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도 후에 마케팅이나 브랜딩 수업을 들으면서 이해한 거지,
당시엔 정말 혁명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여전히 그렇게 기억한다.
머리가 굳지 않은 리더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뭐든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엄청나게 머릿속에 쏟아진다.
최초로 겪었던 내부 브랜딩이 아닐까 생각한다.


심지어 손님들의 반응도 확연했다.

손님들은 식사 경험을 즐기기 시작했고, 공간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으며,

음식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맛에 주목했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눈앞에서 활동한단 사실에 신뢰를 표현했다.

사용자 경험에 집중했던 것이다.

끝없이 콘텐츠를 만들어서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릿하게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부루마블 팝업 때 직접 개발한 음식을 서비스 할 준비하고 있다. 부루마블 팝업이라니, 말만 들어도 흥미롭지 않은가?

그저 배를 채우고 나간 사람의 소비 경험과, 경험을 가지고 나간 그 무엇의 차이

당시 우리의 에피소드 진행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과 같았고,

프로젝트의 마무리가 보일 때쯤이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설레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직관적인 손님의 피드백이다.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한 숟갈 떠 올린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표정이 환해지는 모습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남자든 여자든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짓는 표정은 다 똑같다. 그렇게 솔직할 수가 없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 앞에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직원인 내게도 이 공간은 그저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 아니었다.

또 새로운 에피소드마다 재방문하는 고객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것은 사람에겐 각자의 비용 대비 가치에 대한 납득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뛰어넘어 만족이 있으며, 고객의 만족이란 경험을 위해서 셰프는 다양한 경험을 보여줄 설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런 것들이 브랜딩과 마케팅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까지 내게 브랜드는 보세가 아닌 것 정도의 개념이었다.
그런 내가 브랜드의 개념을 인지하려 노력했던 이유는
운에만 기대지 않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질 무언가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내가 잘 안되더라도 망하고 나서 불운했다는 표현, 경기가 나빴다는 표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잘 되는 것에 갖다 붙일 이유는 수도 없이 많고, 안된 것에 안된 이유를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쉽지만 그런 선무당 같은 생각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선 최선을 다할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래야 실패해도 다음엔 다른 결과를 꿈꿀 터전을 마련하며, 그러고 나서야 운이 좋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겐 변수를 통제해주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줄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렇게 접근하게 된 브랜딩은 잘 된 것과 잘 되지 않았던 것들에 기준을 만들어준다.



음식만 잘하던 요리사에게 요리 외적인 것들은 부가가치였을 가능성이 높고, 메시지가 일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감을 신경 써서 만들고, 차 후에 그 공간의 기억을 상기했을 때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이 레스토랑 브랜딩이다.

셰프는 레스토랑 브랜딩의 키포인트이지만, 레스토랑 브랜딩의 일부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은 단점을 매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감하며, 교감하려고 노력한다.

소비 가치의 설득력은 소비자 경험의 질에서 확인된다.

셰프는 음식을 잘한다는 가정 하에 창업 전 개인 브랜딩이 얼마나 잘되어있는가, 커리어 내에 브랜드가 얼마나 소비들에게 인식되어 있는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셰프의 사고방식은 레스토랑의 성향과 흡사하며, 이는 내부 브랜딩 및 외부 브랜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창업을 했을 때 단점을 보완할 시스템은 무엇인가?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스템은 오롯이 내가 구축해낼 수 있는 시스템인가?
이 시스템은 리더의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리더와 사고하는 방식이 다른 나는 어떤 형태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


이런 고민의 결론은 무엇인가?

그 후로 나는 어떤 고민과 경험을 겪었는가?



기록을 해 두기로 했다.

앞으로의 내가 소비할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좀 더 제대로 사용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