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뒷골목 콤플렉스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망원동

by 레톤

기말고사를 앞둔 고등학교 1학년 시험기간. 친구와 저녁 간식을 먹고 운동장도 한 바퀴 걸은 뒤 다시 공부를 하러 교실로 돌아왔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저녁을 먹은 뒤 두 차례로 나뉘어진 면학시간이 있었고, 공부 장소는 세 군데 중 한 곳을 고를 수 있었다. 면학실, 도서관, 그리고 교과교실. 그날은 운 좋게도 교실을 신청한 사람이 나와 친구 둘 뿐이라 넓은 공간을 우리끼리 차지할 수 있었다. 교실 맨 뒤로 책상을 바짝 붙여놓은 채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천천히 책을 펼쳤다.


1학년 1학기부터 이미 학교 수업은 버거웠다. 심화과목들을 수강하기도 전이고, 일반고랑 다른 건 영미문학 수업을 듣는 것과 통합과학을 일주일에 여섯 시간씩 몰아서 듣는 것 정도인데도. 수업 시간에 딴짓한 적도 없고 존 적도 없고 하라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기본만 따라가는 게 왜 이렇게 벅찬지. 그날 내 옆자리에 하품을 하며 앉아있던 친구는 나보다 성적이 월등히 높았는데, 수업 시간에는 늘 휴대폰 녹음 기능을 켜두고 내내 잠을 잤다. 그리고 수업이 다 끝나면 그 녹음을 돌려 들으며 엄청난 집중력으로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수업 태도와 성적이 직결되는 건 딱히 아니라는 걸 그 친구를 보며 느꼈다. 각자에게 잘 맞는 공부 방식은 따로 있었고 친구는 자신에게 최적인 방법을 써먹을 줄 알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더 솔직해지자면 박탈감이 들기도 하고.


교과서를 들여다본 지 30분은 지났을까. 같이 하는 공부가 대개 그렇듯 결국 우리는 한 마디씩 앓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외워지지 않던 일본어 문장들을 놓아버리고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일본어 기말고사는 진짜 포기할래. 가타카나부터 하나도 못 외우겠어.

나는 일본어는 중학생 때 학원 다녔어서 할만한데, 통합과학 양이 진짜 살인적이다.

일본어도 학원을 갔어?

응, 되게 이것저것 다니긴 했어. 수학 영어는 당연히 다녔고, 2학기 때 정보 수업 들어야 하니까 코딩도 배웠고...

진짜 대단하다. 가끔 너랑 얘기하다 보면 난 놀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산 것 같아.

뭐 대단할 것도 없어. 그냥 엄마가 다니라고 하는 거 다닌 거야. 나는 네 얘기 들으면 재밌게 산 것 같아서 그게 더 부러운데.


친구는 늘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 애에게 당연한 환경이 나에게는 조금도 당연하지 않았다. 친구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곳은 대치동. 학원이 없어서,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아서 다니지 못하는 기분을 너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겠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조금만 끄적여도 대단하게 추켜세워지던 환경을 살아본 적 없을 테니까. 고등학생 시절 맨 밑바닥에 감춰둔 나의 콤플렉스는 다름 아닌 우리 동네였다.


내가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곳은 망원동이다. 지금이야 망리단길이나 망원시장 때문에 꽤 유명해졌다지만,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 학교는 전국 단위 자사고처럼 운영되면서도 서울 지역 학생들만 모이는 곳이었고, 친구들과 서로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다 보면 서울 내의 온갖 지명이 튀어나왔다. 망원동을 입에 올리면 대부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기에, 나는 꼭 한 마디씩 덧붙이곤 했다. 홍대는 알지? 홍대하고 가까워.


코로나 시기 이후로 상권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중학생 때까지 말 그대로 밥먹듯이 드나든 곳이 홍대였다. 집 앞 마을버스를 타면 홍대 정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0분. 친구들과 교복 와이셔츠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로, 떡볶이 먹고 노래방 가고 인형 뽑기하고 쇼핑하고. 비슷비슷한 코스여도 늘 즐거웠고, 주말에 만나면 조조영화 보는 것을 시작으로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열두 시간을 내리 홍대에서만 돌아다닐 정도였다. 어두운 청색 밤하늘 위로 촌스럽고 시끄러운 조명들이 하나 둘 내려앉는 특유의 길거리 감성을 꽤 좋아했다. 그냥 선천적인 취향인 건지, 살면서 익숙해진 환경에 자연스레 끌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값비싼 파인 다이닝보다 친구랑 노점상에서 먹는 와플을 더 좋아한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우리 동네 유일의 사립 여자중학교였다. 전 과목 시험이 서술형으로 나오고, 기싸움이 살벌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곳. 대신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라며 학부모님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았는데, 막상 입학해 보니 그중에 맞는 소문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학구열에 기싸움은 무슨. 아이돌 콘서트를 보기 위해 아픈 척 조퇴하는 친구를 도와줄 때마다 여자들의 의리를 그 무엇보다 끈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를 다니며 내내 배운 건 공부보다는 노는 법이었다. 내 친구들은 시험기간에 학교도 일찍 끝나고 사람도 적다며 책을 덮고 롯데월드에 가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고작 중학생이 이렇게 재밌게 놀 수 있구나를 3년 내내 우리 학교에서 느꼈다. 좀비 흉내를 내며 서로 팔뚝을 물어뜯고 노는 건 기본이고, 수업시간에는 유리 재질이던 책상에 글라스 데코로 온갖 예술작품을 그려냈다. 급식이 맛없는 날이면 뒷산을 타고 몰래 학교 밖으로 나가 짜장면을 먹고 돌아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흔치 않게 치마 길이는 1cm도 줄이지 않고, 모두가 몰래 사용하는 휴대폰을 성실하게 꺼 두던 학생이었지만 모범생이 되고 싶은 건 딱히 아니었다. 그냥 규칙 어기는 걸 잘 못 하는 소심한 성격이었을 뿐.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 친구들이 훨씬 더 부러웠고, 그들은 고맙게도 나를 곧잘 끼워주었기에 나 역시도 적당히 놀면서 살았다. 학교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친구가 목마를 태워주면 같이 복도 끝에서 끝까지 뛰어다니고. 단축수업을 하는 날이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래방 서비스를 즐기며 저녁까지 홍대 길거리를 몰려다녔다. 상권이 아무리 빨리 바뀐다 한들 무엇이 없어지고 무엇이 새로 생겼는지 척척 알아맞힐 정도로.


그런 삶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재미가 없을 리가 없잖아. 함께 어울릴 때는 물론이고 친구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부모님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운 나와 달리, 친구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전단지 알바라도 해서 스스로 이루어내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잘하는 건 공부였고, 그 재능을 뒷받침해 주기에는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욕심이 생길수록 나는 끝없이 우리 동네를 미워하게 되었다.


우선 학원 자체가 거의 없었다. 소수의 학원마저도 당장의 시험에 매달리느라 급급해서 선행학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의 공부 속도는 내 나이를 점점 빠르게 뛰어넘는데, 다음 진도를 나가고 싶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 늘 혼자인 것에 익숙했다. 출판사별로 문제집을 아홉 권 정도 사다둔 채 영어 문법을 고등학교 수준까지 독학하는 식으로. 엄마가 고르고 골라낸 학원에 한 번씩 등록해도, 나에게 맞는 반이 없다며 오래 이어지지 못한 채 그만두게 되었다.


점점 갈증을 내는 나를 보며 엄마는 최후의 수단으로 목동에 있는 학원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학원가에 발을 디디면 늘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나에게 확실히 특별해지는 느낌을 주었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목동을 지나는 차창 밖으로는 공휴일까지 독서실을 다니는 또래들이 너무나 많았고, 숨이 막히는 동시에 부러웠다. 우리 학교에서 다들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하니까 내가 과대평가되는 거 아닌가. 그러다 보면 조금씩 억울해지기도 했다. 나는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자랐을까. 우리 동네가 내 가능성을 무의미하게 죽여버린 건 아닐까. 오만해지지 않으려던 노력은 결국 내가 살아온 곳을 점점 낮잡아 보게 되었다.


이따금씩 학원에 가기 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도서관은 늘 나 빼고 텅텅 비어있었고, 투명창으로 되어있던 탓에 복도를 지나는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감탄과 기겁을 내뱉었다. 공부 진짜 열심히 한다. 이 정도는 해야 성적이 그렇게 잘 나오는구나. 나는 제발 도서관 창이 불투명하게 바뀌길 바랄 정도로 그런 시선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나 혼자 유난 떠는 것 같아서. 나의 노력은 대체로 나를 배신하지 않았으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시험이 아주 쉽게 나올 때. 그래서 나의 공부량이 아무런 변별력 없이 묻혀 버릴 때. 수업 시간 내내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썹 그리는데 열중하던 친구가 높은 성적을 받아오면, 정말 못나게도 짙은 자격지심이 들었다. 내가 포기한 삶의 가치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나도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란 말이야.


고등학교에 오면서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비주류에 속하게 되었는데, 새로 사귄 친구들 중에서는 학군지 출신이 많았다. 나는 인간관계가 아주 좁은 사람이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하긴 했지만, 내 친구들 중 절반은 강남 8학군 출신이었다. 그 외에도 목동이나 노원구처럼 학원이 빼곡한 곳에서 자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내 과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재밌게 산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눈이 오면 역사 선생님께서 끌어오신 쌀포대로 다 같이 눈썰매를 타고 놀던 나의 생활을,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반대로 나는 그들이 중학생 때부터 새벽 세 시까지 학원 숙제를 하고,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공부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춤추는 게 당연한 일과였는데. 그런 순간마다 역사 시간에 배운 신라의 귀족 제도가 떠올랐다. 친구들은 뼛속까지 귀족의 피가 흐르는 성골, 나는 그 피가 절반밖에 섞이지 않은 진골이 된 것 마냥. 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홍대 뒷골목의 피를 고등학교에 온 이후로 유독 진하게 느꼈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자랐든 그걸로 구분 지을 만큼 내 친구들이 편협하지 않다는 걸. 오히려 디저트를 아주 좋아하던 친구 한 명은, 유명한 빵집이 많은 우리 동네를 시도 때도 없이 부러워했다. 친구는 아무런 자격지심 없이 편하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열등감으로 돌돌 뭉쳐져 있던 나는 단 한 번도 가볍게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네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부럽다고. 도서관에서 공부 좀 한다고 별종 취급받지 않는, 다 같이 노력하고 경쟁했을 그 뜨거운 환경이 미치도록 부럽다고. 나도 그런 곳에서 자랐다면 뭐가 달라도 좀 달랐을지 끝없이 상상해 본다고. 급소 지도 위로 화살을 던지듯이 매일 나에게서 고칠 점을 뜯어보던 와중에 제일 쉽게 탓할 수 있는 건 내 출신지였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큼 다가온 여름방학에 우리에게는 한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방학에도 학교에 남아 있는, 일명 '잔류'를 택할지, 집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방학을 누릴지. 물론 집에 간다 한들 편하게 쉬는 학생은 아무도 없을 터였고, 모두가 다음 학기를 위해 공부할 것이 당연했다.


내가 고른 건 학교에 남는 쪽이었다. 우리 동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학원 하나 가자고 왕복 두 시간씩 차를 타고 다니느니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듣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그러한 내 선택에 몇몇 친구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 2학기 때 물리 I 수업 안 들어? 이과 애들은 물리 때문에 학원 다닌다고 대부분 잔류 안 하던데.


이런 것마저 다 학원이 있다 이거지. 정보력에서 영원히 소외받는 건 아무리 겪어도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 학원이 있어도 뭐, 일단 우리 동네는 아닐 거잖아. 나는 또 엄마를 고생시키고 차에서 밥을 먹으며 저 멀리 학원을 찾아다녀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냥 인강 들으려고. 학교에 남아 있을래.


내가 학교에게서 느낀 첫 번째 배신감은 이 지점이었다. 사교육 없는 학교라고 그렇게도 홍보하더니, 자기주도학습은 무슨. 당장 내 친구만 해도 학교 밖을 못 나가니 실시간 송출로 학원 수업을 듣던데. 쌓아온 시간의 질이 다른데 대체 어떻게 따라잡으라는 거야.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열심히 노는 동안 피 터지게 공부했을 그들의 과거를 존경했다. 결국 한탄은 방향을 잃고 나에게 가라앉아 답답한 기분만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언젠가 들었던 소문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 학교 내에서도 상위권으로 뽑히는 한 친구는 정말로 사교육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았다고. 그 모든 성적이 스스로 이룩한 결과라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내 탓을 하면 되려나? 분수에 맞지도 않는 것을 탐내면서 무슨 불평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축축한 감정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장맛비의 얼굴을 한 채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하이톤의 목소리가 아주 예쁘던 나의 잔류 룸메이트와 함께.


중학생 때 친구가 책상 위에 그려준 크리스마스 트리. 내 얼굴 위로 화장도 곧잘 해주던 이 친구는 결국 미대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