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에게 배운 것
3주 남짓의 짧은 방학이 시작되던 한여름. 그 기간 동안 학교에 남는 학생들은 2인 1실로 기숙사가 새롭게 배정되었다. 같은 반에서 출석번호 순서대로 두 명씩.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아는 얼굴이면 그나마 낫겠다고 안심하던 차였다. 배정 결과를 확인하기 전인 이른 아침에 교실문을 열자, 하얀 피부에 단발머리를 가진 A가 활짝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자신과 내가 같은 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A는 반에서 가장 먼저 안면을 텄던 친구이다. 우리는 생일이 딱 하루 차이 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듣던 중 A는 전혀 친분이 없는 나에게 생일 축하 연락을 보내왔다. 이미 아는 사이더라도 생일 연락을 할 만큼 충분히 가까운지 수없이 고민하는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동시에 고마웠다. 뒤늦게 듣기로는, 우리 반 단톡방에 프로필 사진을 설정해 둔 사람이 자신과 나밖에 없어 잘 맞을 것 같아 연락을 보내보았다고 했다.
실제로도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성향이 비슷했다. 놀러 다니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점도, 예쁜 어휘로 꾸며진 글을 즐겨 읽는 점도, 생각이 많아 늘 머릿속이 시끄러운 점도. 생체리듬 역시 유사했던 우리는 한 방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로를 마주 보며 자주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상송이 울리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 번갈아 세안을 마치고, 외모를 정돈한 뒤 분리수거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 완벽한 루틴. 나는 기숙사에 반입이 금지되어 꽁꽁 숨겨둔 고데기를 기꺼이 A에게 빌려주었고, 우리는 직모 머리카락에 대해 한탄하며 아침마다 같이 앞머리를 말았다. 외모 역시도 공통점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밍숭맹숭한 인상과 쭉 뻗은 머리카락, 근육 없이 휘청거리는 체형 등. 그로 인한 장점과 단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하루 종일 함께 다녀도 할 말이 끊이지 않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과 너무 닮아서 아무 노력 없이도 죽이 척척 맞는 편안함. 다른 하나는 서로 너무나도 달라서 색다르게 느껴지는 흥미로움. 나의 경우 전자의 사람을 좋아해 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지? 왜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지?
왜 나는 늘 나를 좋아하지 못했더라.
그 생각은 저편에 묻어둔 오래된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중학생 때 과학 선생님은 늘 피곤한 표정으로 의욕 없이 수업을 진행하시던 분이었다. 그럼에도 뛰어난 학벌만큼이나 말씀 곳곳에서 지성이 묻어 나왔고, 툭툭 던지는 농담들이 꽤나 재미있었기에 인기가 많으셨다. 학생들에게는 무심하셨고, 나에게도 특별히 다정하시지는 않았지만 시험기간을 앞두고 질문을 하러 가면 교무실에서 나와 꼼꼼하게 대답해 주셨다.
그때 나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한 명은 나를 기다리며 내 뒤에 서서 기웃거리곤 했다. 명랑하고 뒤끝 없는 성격의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늘 열심히 노력했다. 나에게도 조금의 시기나 질투 없이 늘 맑은 부러움과 응원을 보내주었는데 그 점이 항상 신기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갈망하는 것을 이미 갖춘 사람에게 아무런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 친구는 과학 선생님과 나의 질의응답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함께 듣고 싶어 할 때가 종종 있었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 하루는 선생님께서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이건 얘 정도 되어야지 이해하는 거지, 너는 들어봤자 모른다고 잘라 말하시던 그날의 기억.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나는 속으로 경악했고, 재빨리 친구의 얼굴을 살폈다. 친구는 무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나는 교과서를 정리한 채 친구를 뒤따라갔다. 계단에 앉아 다른 친구들의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친구는 약간 울먹이면서도 나를 보며 애써 웃어주었다. 자신은 괜찮다고. 원래 말씀을 툭툭 던지시는 분이기도 하고, 내 잘못이 아니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위선처럼 느껴질까 봐 사과조차 할 수 없어,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서 있을 뿐이었다. 친구가 정말 괜찮으니 오늘은 먼저 집에 가라고 손짓했을 때 겨우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중학교 생활 내내 무해하게 착해질 수 있도록 정말 노력했는데. 조금만 실수해도 재수 없어질 수 있는 위치에서, 누구와도 척지지 않으려고 숨죽이고 살았는데. 그게 이렇게도 무너질 수 있다고?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했던 원래의 성격 이곳저곳에 붙여두었던 반창고를, 누군가 잡아 뜯은 것 같이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그날의 에피소드는 학교 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 또다시 내 이름을 드높였다.
온갖 걱정을 끌어안고 다음날 교실에 발을 디뎠다. 친구는 어제의 속상함을 모두 지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후로도 우리의 사이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친구는 내가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내가 지망하는 고등학교가 궁금했다며 소개 영상들까지 찾아보며 입시를 응원해 주었다. 면접날 아침에 이른 시간부터 메시지를 보내준 것은 물론 합격했을 때에는 나를 끌어안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 품에 안겨서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찾았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
친구가 가진 너른 따뜻함은 내가 절대로 닿지 못할 영역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겁한 나의 내면이 그 무엇보다 싫었어.
네가 나였다면 너는 분명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 소리쳤을 거야. 내 친구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그럴 용기조차 갖추지 못한 내가 중학교 내내 많은 지지와 선망을 받아온 건, 오로지 친구들의 넉넉한 마음가짐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예민하고, 생각의 겹이 많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 살아온 이들은 다들 나처럼 가식적이고 계산적인 면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A는 그러한 편협한 생각을 산산이 부숴준 첫 번째 반례였다. 나만큼이나 민감한 성격이었지만, 그걸 세심함으로 바꾸어 남에게 베풀 줄 알았다.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타인에게 비춰보며 절망하지 않았고, 친구에게 도움이 될만한 선의를 적재적소에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편하게 말할 수 있었고, 어떠한 이야기든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2학기 때 내가 A와 근소한 차이로 학급 회장이 되었을 때에도 그 누구보다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낌없이 격려를 보내주었다.
A 주변에 사람이 넘쳐나도록 많은 이유도 아마 이 점 덕분이었을 것이다. 방학 내내 하루 세끼를 같이 먹고 잠들기 직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자연스럽게 말과 생각을 단정하게 가지치기하는 법을 배웠다. 열일곱 살 때까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분리수거를 A에게 배웠고, 우리의 방은 늘 사감 선생님께 따로 칭찬받을 정도로 깔끔하게 유지됐다. 나를 늘 3인칭으로 부르며 아껴주던 A의 말습관을 조금씩 따라 하게 되었고, 과격한 장난을 치며 털털하게 대하는 것만이 친하다는 증표가 아니라는, 새로운 형태의 우정을 배웠다. A와 있을 때 나는 나를 잃지 않으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됐다.
그래서 A가 토론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에도 마음에서 진하게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넬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노력하던 일에서 결실을 맺은 것은 정말로 기뻤다. 타인의 일을 내 일처럼 신경 쓰고 감정을 공유하는, 말로만 듣던 감각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잔류 기간 동안 하루 여섯 시간씩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과목을 익혔다. 비문학 지문을 읽는 법부터 수학과 화학, 양자역학 수업까지. 다만 그때 배운 것들이 내게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았다. 화학시간마다 뇌에서 튕겨져 나가는 지식들을 주워 담지 못해 멍을 때렸고, 비문학 시간에는 식곤증을 쫓느라 바빴다. 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반나절씩 교과서를 붙들고 있기는 했지만, 시험도 압박도 없는 상태에서 그다지 성실히 복습하지 않았다. 저녁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도서관으로 나를 데리러 오던 A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산책하던 나날이 이어졌을 뿐.
그럼에도 그 계절의 초록빛을 모처럼의 평화로움으로 기억한다. 정규수업이 아니니 당장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촉박함이 내게 엉겨 붙지 않았고, 똑똑한 다른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정답을 맞히면 선생님들께서 일찍 끝내주시거나 음료를 사 주시는 일도 종종 있었다. 사람수가 절반 가량 줄어든 학교는 얕게 일렁이는 고요함을 지녔고, 어딜 가든 조급할 필요 없이 쾌적했다. 다른 친구들을 우리 방으로 초대해 함께 대야 빙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잔류 기간 동안 나의 학습량은 남들에 비해 뒤로 처졌을지 모르지만, 정말 ‘잔류’해버렸을지 모르지만, 절반의 학교를 누리는 건 다시없을 휴식이었다.
시간이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나의 학교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에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는 그 시간을 종종 아까워하셨다. 방학 동안 다른 과목을 배웠더라면, 학교 방과 후가 아닌 학원 수업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 여름에 배운 공식과 개념들은 대부분 흘러가 버렸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만큼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건 지식보다 값진 성장이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늘 가면 뒤에 억눌러오던 내 성격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킨, 나의 소중하고 고마웠던 잔류 룸메이트. 고등학교의 첫 번째 여름방학은 나에게 그런 의미를 가졌다.
졸업 이후 나는 재수를 한 뒤 끊임없이 방황했고 전과도 했다. 모범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여전히 불확실하고 흐릿한 선을 그어내며 사는 중이다. 반대로 A는 자신의 학교와 학과에 만족하며, 탄탄한 성적을 쌓아 올렸고 졸업을 향해 곧게 달려가고 있다. 그러한 차이에 조금도 까슬함을 느끼지 않는다.
A는 종종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선물해 주며, 예쁜 꽃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사주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애인에게도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나에게만 전하게 된다면서. 머지않아 다가올 졸업식은 내가 A를 닮은 밝은 노란색 꽃을 한 아름 안고 달려갈 차례이다. 그러한 설렘으로 올해의 여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