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간식생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끊겼다. 아, 어제 충전하는 걸 깜빡했네. 고요한 에어팟을 그대로 귀에 걸치고 있었지만 옆 사람의 통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 지금 집 가는 중인데, 야식으로 뭐 사갈까. 닭강정? 그래, 이따 역 앞에서 포장해 갈게.
그러고 보니 나는 야식을 고등학생 때 처음 먹어봤다. 여섯 시에 저녁을 먹고 아홉 시에 간식을 주던 기숙사에서,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룸메이트들과 방에서 이것저것 나눠먹곤 했다. 사실 배고파서라기보다는 그저 선생님 몰래 숨어 먹는 재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다들 식욕이 없어 식사를 마치면 무언가 더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런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 야식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집이 아닌 기숙사에서 처음으로 맛볼 때가 한 번씩 있었다.
기숙사에는 반입이 금지되는 음식이 많았다. 과일류나 견과류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몰래 먹다 걸리면 벌점을 받았다.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내가 택배로 초콜릿을 주문하고 싶어 머뭇거릴 때 한 친구가 말해주었다. 배송 요청 사항으로 상품명을 학용품으로 기재해 달라고 해. 그러면 기숙사에서 택배 수령할 때 안 걸려. 나는 요청 사항 란에 수많은 ‘ㅠㅠ’를 섞어가며 장황하게 상황 설명을 늘어놓았고, 판매자분은 친절하고 정직하게도 ‘학용품’이라고 적힌 상자에 초콜릿을 가득 보내주셨다. 대충 연필이나 공책으로 적어주실 줄 알았는데, 이게 더 수상하지 않나.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의심 없이 택배를 건네주셨고, 나는 소소한 일탈을 만끽하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박스 테이프를 북북 뜯었다.
이따금씩 기숙사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이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제발 미리 말하고 먹으라는 누군가의 카톡이 학년 단체방을 울렸을 때, 내일 홍시 세 개만 꺼내먹겠다는 답장이 달렸다. 아니, 미리 말하기만 하면 먹어도 괜찮은 거냐고. 그 밑에 언제 화냈냐는 듯이 ‘네’라고 짧고 간결하게 온 메시지 때문에 나와 룸메이트들은 침대 위에 엎드려 깔깔거리곤 했다.
나도 요즘 귤이 자꾸 없어지던데. 그러면 귤껍질에 번호를 적어놔. 기숙사 6층 냉장고 3번 귤 드신 분 돌려주세요, 이런 말 듣기 싫으면 몰래 안 먹겠지. 나는 그 말에 베개를 끌어안으며 웃었고 우리는 그저 셋이라는 이유로 우스운 일이 많았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새벽까지 영화를 보며 룸메이트들과 함께 감자칩을 먹기도 했다. 점호 시간이 지나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사감 선생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감자칩부터 숨겼고, 선생님께서는 두어 번 킁킁거리시더니 우리를 날카롭게 바라보셨다.
너희, 컵라면 먹고 있었지. 잔뜩 긴장했던 우리는 아니라고, 먹은 적 없다고, 순식간에 당당해져서 종알종알 대답했다. 뭐 감자칩이 컵라면은 아니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화장실 쓰레기통까지 확인하신 선생님은 컵라면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의심을 지우고 방 밖으로 나가셨고, 우리는 한숨 돌리며 다시 즐겁게 와작와작 과자를 집어먹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간식들을 먹으며 새벽의 시간을 함께 건너갔다. 밤 열한 시 반이 되어서야 몸을 누일 수 있던 좁은 기숙사에서, 건강에 안 좋을까 하는 걱정도, 살이 붙을까 하는 걱정도 없이. 학기가 끝나면 우유 빙수를 만들어 먹고, 누구 한 명이 외출하는 주말에는 조각케이크 하나를 사 와 오밀조밀 나눠먹으면서. 학기마다 바뀌던 룸메이트들과 친해지던 과정도 매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작은 간식을 나눠주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소화기능이 약한 나는 졸업하자마자 또다시 야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 생활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자주 그리워진다. 자그마한 음식도 어떻게든 한 입씩 나눠먹던 우리의 모습과,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느껴졌던 간식의 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