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애

by 정선주

아침부터 창가에 내리쬐는 따가운 해 살과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잠을 깨운다. 별님 이는 출근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서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별님이의 직업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한지 이제 3년 얼마 전 제 2의 인생을 시작해 깨소금 냄새가 솔솔 나는 삶을 시작하고 있다.

“ 자기야 벌써 7시야 안 일어나? 빨리 일어나야지.

“ 응 근데 오늘은 정말 출근하기 싫다. 지겨워 원수 같은 사람하고 있으려고 하니까 더 그래

“ 그러면 출근하지 말던가.

“ 아냐 그래도 악착같이 해서 확 그냥 꼬투리 잡으면 붙어버려야지

“ 그래 울 별님이 화끈하다. 아자 힘내라

“ 아 정말 원수만 아니면 집에서 이렇게 행복한 것처럼 사무실에서도 행복 할 텐데 모르겠다. 나도 이제 이판사판이다. 아자. 정말 빨리 서둘러 야겠네 늦겠다.

허겁지겁 준비를 한 후 집을 나서는 두 사람 사무실 앞에서 내린다.

“ 자기야 잘 갔다 와. 오늘 하루도 수고하고 운전 조심해?

“ 응 자기도 수고해

“ 안녕하세요?

“ 미영언니 안녕?

전산 조회하던 미영이 방긋이 웃으며 별님이 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별님이가 제일 좋아하며 믿고 따르는 미영 몸은 약하지만 인정 많고 속이 깊어 별님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런 미영이도 자기 잘못은 인정 않고 빠져나갈 곳은 다 마련해 놓으며 별님이를 코너에 모는 한마디로 미꾸라지에 남들 앞에서 착한 척 하고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이중성격을 가진 정화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지만 표현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버팀목이 되어준 미영이가 이번에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인가. 별님 눈앞이 캄캄하다.

설상가상 인원이 하나가 줄어서 결국은 정화와 단 둘이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심난하게 만든다.

심난해 있는 별님이가 가여워 보였는지 미영이가 말을 건넨다.

“ 그동안 우리 별님이가 잘해줬는데 나도 좀 서운하다. 그래도 멀리 가는 것 아니니까 자주 만나자? 그나저나 별님이가 앞으로 더 힘들 텐데 어떻게 하냐?

“ 아냐 그래도 언니 생각하며 끝까지 버틸 거야 나도 이제 그냥 안 넘어가

“ 그래 꼭 그렇게 해 울 별님이 파이팅!! 간다. 잘 있어.

“ 벌써 가는 거야 너무 서운하다

“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밥이나 같이 먹자

“ 그래 그럼 잘 가

얌체 같은 정화 혼자 뭘 골똘히 생각하더니 금세 얼굴이 환하게 바뀌어 별님이 자리로 다가간다.

“ 야 미영언니도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다해 나두 네 업무하기도 벅차니까 그래도 나보다는 많이 알 것 아냐? 알았지

“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무리 내가 한다고 해도 책임도 없잖아. 담당은 언니니까 알아서 해야지.

“ 얘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뭔 말이 많아.

별님이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그래도 담당자가 따로 있는데 나보고 다 하라고 하니 정말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때 한 민원인 주민등록 등. 초본을 요구한다. 부글부글 끌어오는 속을 달래고 민원인에게 말을 건넨다.

“ 등본 몇 통 떼실 꺼에요?

“ 한 통 주세요.

“ 여기 나왔습니다. 수수료는 350원이시구요.

“ 수고 하세요.

“ 안녕히 가세요.

“ 어서 오세요? 뭐 하실 꺼에요?

“ 뭐 하나 여쭤 보겠는데요. 외국에서 잠시 거주하고 있는 사람 인감을 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담당하시는 분한테 여쭤 볼 게요.

“ 정화언니 외국에 잠시 거주하는 사람 인감을 위임해서 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보시는데.

“ 아 정말 짜증나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내가 뭘 안다고. 다른데 전화해서 물어봐서 해결해 나한테 그러지 말고.

별님 정말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다른 곳으로 전화를 한다.

“ 여보세요? 죄송하지만 은주 언니부탁 드릴게요.

“ 네 전화 바꿨습니다.

“ 언니 별님인데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인감발급 하려면 어떻게 해 야해.

“ 그거 일단은 위임장 쓰고 그 양식에 보면 재외공관확인 받는 란 있거든 거기다 확인 받아와야해.

“ 알았어 고마워 이따가 끝나고 볼 수 있어?

“ 그래 알았어 이따 보자.

민원인에게 자세히 설명해주고 돌려 보낸다.


통화를 끝낸 은주 잠시 바람도 휴식도 취할 겸 밖으로 나온다. 이때 청장님이 오시자 눈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오랜만에 보네.

“어디 다녀오세요?

“응 잠깐 시간 괜찮으면 차 한 잔 할까?

“예

청장 실에 도착한 두 사람 자리에 앉는다.

“그래 일하기 힘들지 않나?

“힘들긴요 맨 날 하는 일 인 데요 .

“그래도 어려운 일 있음 말해봐.

“그럼 오늘 청장님께 하소연이나 한번 해볼까요?

“그러던지 오늘 내가 얼마든지 들어줄게

“청장님하고 같이 근무한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아요.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은데 퇴임을 맞이하시게 된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아요. 청장님께서 택하신 길에 대해서 후회 하신 적 없으세요?

“누구나 한번쯤은 슬럼프가 있지 않을까. 글쎄 힘들고 어려울 땐 한 번씩 회의를 느꼈다고 할까? 은주 씨는 어떤데.
저희야 원래 속마음 털어놓을 기회도 없지만 생각해보면 또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어요. 근무 연수가 오래되면 될수록 가슴속엔 한(恨)이 쌓여만 간다는 것 아세요? 다른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좋은 곳에 다닌다고 부러워 할지 몰라도 겉만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고 속은 텅 비었잖아요. 그게 저희들의 지금 현실이에요. 과연 진정으로 저희 생각해줘서 똑같은 직원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잘해주고 해도 아마 무슨 일 생기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직원 편들지 저희 편 들어주지 않을 걸요? 저희는 공익보다도 못해요. 그래도 공익들은 1년에 한 번씩 이라도 체육대회 열어주고 하지만 언제 한번 저희들 사기진작 차원에서 야유회라도 한번 보내주신 적 있으세요? 저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저희까리 어디 가본 거라고는 선거 때문에 수고했다고 여수 한 번 가 본 것 밖에 없어요. 그게 처음 이었어요.

98년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구조 조정한다고 왜 힘없는 저희만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지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서글퍼져요. 우리들 입장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셨다면 그렇게 공문으로 보내진 못하셨을 거에요. 한 번이라도 모아놓고 이야기 하셨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무슨 밀실 야합도 아니고 과장님들 모아놓고 비밀리에 회의 불러서 이야기하고 우리도 다 귀 있고 눈이 있어서 다 알고 있었다고요. 정말 좋은 시절 다 받쳐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는 해고였어요. 일반 직원들은 퇴임 앞두고 선진지 견학이네 표창이네 하면서 공적요약서 만들기 바쁠 때 저희한테는 그 것 조차도 꿈같은 이야기였어요. 아니 사치였어요. 저희 그만두기 몇 달 전에 연세가 많이 드신 분이 있었는데 말이라도 그동안 고생하셨으니까 며칠 휴가라도 다녀오시라고 말을 건네기는커녕 나 몰라라 하고 회식도 못해 드리는 것을 봤을 때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싶어서 씁쓸했어요. 쓸쓸히 가시는 그 뒷모습 상상이 되시나요? 종이 한 장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 싶었어요. 저희 업무라는 것이 직원이 하기 싫은 일 떠 맡아서 하는 것이 주 업무에요. 창구에 앉아 있기 싫으니까 전부 저희들 데려다 놓은 것 아닌가요? 저희는 의견이 있어도 표현을 못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많냐는 식으로 생각해 버리니까 저희 역시도 그냥 꿀먹은 벙어리로 사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희도 생활하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원래 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그렇게 생활해왔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슴속에 묻어두고 다니는 거에요. 직원들 만나는 것도 창피해요. 만나면 언젯적 누군데 라는 소리 정말 듣기 싫거든요. 이런 생활이 저의 인생관까지 바꿔 놓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너무 티낸다고 하겠지만 이렇게 억매이고 자유도 없는 생활이 지겨워서 제 인생만큼은 멋대로 살고 싶어요. 솔직히 내세울 것도 없고요. 생각을 안한다고는 하지만 어디서 자리 있다고 보라고 하면 위축되고 그런 것은 사실 이예요. 물론 제가 노력 안한 탓도 있지만요. 지금 현실이 그렇게 만들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지금 이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것 자업자득이라 생각해요. 필요해서 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니까 가차 없이 잘라 버리고 힘없는 저희들이 구조 조정하기는 쉬웠겠죠. 이 사회가 이렇게 냉정한 사회인가 싶었어요. 웬만하면 생각 안하려고 해도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때 당시에 있던 분 들 지금은 승승장구 하고 있잖아요? 정말 공문 하나에 가차없이 해고될 줄은 몰랐어요. 저희 솔직히 성과급 받는 것 보면 부러워요. 일은 똑같이 하면서 누구는 두둑하게 받는데 누구는 옆에서 부러워라 하고 있어야 하니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네가 너무 무심 했던 것 같다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지금은 현실이 이렇지만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겠죠

설마 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날을 꿈꾸며 마음을 달래봐야지요.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까 속은 좀 시원하네요. 오늘 이런 자리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 그래 잘 가라.


하루 일과가 끝나고 은주언니와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나가는 별님이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은주 별님 이를 발견하고 살며시 다가간다.

“ 야 뭔 생각을 골똘히 해. 들어가자

“ 어? 언제 왔어. 그래

종업원이 다가 와서 주문을 받고 두 사람 마주 앉는다.

“ 요즘 어떻게 지내? 얼굴 보니까 편한 쪽은 아닌 것 같은데

“ 언니 아주 돗자리 깔아라. 요즘 아주 죽을 맛이야. 미영언니 가고 나니까 지도 잘 모른다고 나보고 알아서 하래. 아까도 인감관계 물어봤더니 다른데다 물어봐서 하라는 식야 그래서 언니한테 전화했잖아.

“ 뭐 그런 애가 다 있냐 담당자면 지가 책임감 가지고 알아서 해야할꺼 아냐 그냥 확 붙어버려 무서울 게 뭐가 있어.

“ 안 그래도 두고 보는 중이야. 한 순간에 확 붙어 버릴 려고.

“ 언니는 지낼 만 하오?

“ 나도 그냥 그렇다. 언제는 재미보고 다녔냐. 아마 나처럼 재미없게 사는 사람도 없을 꺼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 씩 뭉치는 맛에 위안 삼아 다니는 거지. 나도 이 생활이 지겹다. 자유도 없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눈치만 봐야되고 17년 됐지만 어쩔 땐 솔직히 창피하다. 아는 직원들도 많고 해서 자꾸 피하게 되더라구. 그럴 이유도 없는데 말야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명령대로 움직이는 로봇트 같은 생활이 정말 싫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결혼만큼은 내 마음 대로 하고 싶은데 안되네. 부모들이 말하는데 안본다고 할 수 도 없고 가자니 도살장 가는 것 같고 억지 춘향이 노릇하는 것 같고. 아주 단계가 있어. 처음엔 되든 안되든 한번 보라고 하고 그다음엔 한쪽에서 마음에 든다고 하면 만나자고 하면 만나라고 하고 그다음엔 날짜까지 잡는다고 하겠지. 아 지겹다. 이 심정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다. 넌 좋겠다. 그런 스트레스 안 받아서. 글구 솔직히 누구 소개로 만나면 다시 귀에 들어가니까 말하기도 조심스럽다니까. 어찌 보면 그동안 오래 다녔어도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이 내 인생관까지 바꿔났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동안 직원들 치다꺼리만 해줘서 특히 남 직원들이 많잖아. 그래서인지 결혼생각도 없어 의무감에서 하는 것은 더욱더 싫고 능력 있음 혼자 사는 것도 좋지 않냐? 정년 보장 되겠다. 무슨 걱정이여. 이제 갈수록 좋아지겠지. 그동안도 참고 다녔는데 정식 안되도 좋으니까 사람들 인식이나 확 바뀌어서 즐겁게 다녀봤음 소원이 없겠다. 그렇게 다니면서 봉사활동이나 가끔씩 하면 더 좋겠지. 어찌 운 좋게 원불교에 들어와 교법을 배우고 있으니 보은해야지 나는 정말 마음 편히 그렇게 살고 싶어. 요즘 시대에 이렇게 다니는 것도 복인데 한 만 쌓여가고 직원들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힘들어 말로만 혁신 외치면 뭐하냐. 겉은 혁신하면서 외쳐도 속은 그대로 인데.

“ 맞아 정말 맞아 그런 날이 꼭 와야 할 텐데 우리 그날까지 빡세게 버텨 봅시다.

“ 그러자 아자.


저녁식사를 마친 후 돌아오는 은주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심란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십 수 년이 흘렀지만 항상 제자리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직장생활 첫발을 내딛었던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은주는 처음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그해 9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주로 하는 일은 문서수발과 타이핑 이었다. 그 밖에 청소 및 심부름 등 한마디로 말하면 사환이었다. 여직원이라고는 은주하나 남 직원들 만이 근무 하는 그곳에서 그렇게 시작했다. 12만원이라는 봉급 정말 다른 아이들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었지만 사회생활 첫발을 내딛은 초년생답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곤 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 접해보는 일들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될 무렵 정식 여직원이 온다는 소리가 들렸고 은주에게는 처음으로 느끼는 배신감에 휩 쌓였다. 그때 당한 배신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만두고 좀 쉬고 있을 무렵 다시는 발도 들여 놓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 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그래도 전에 근무했던 곳보다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경험이 있어서일까 일하기도 훨씬 쉬웠다. 직원들도 예뻐 해주고 무난하게 근무할 수 있었다. 91년 3월 상사님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은주는 비로소 마음에 안정을 되찾았다. 처음으로 겪었던 배신감에 휩싸여 불안하기만 했었다. 첫 월급이나 다름없는 급여를 받았을 때 정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는 일은 같아도 몸은 힘들어도 항상 즐거웠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생기면서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94년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서서히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권태기라고나 할까? 매일같이 되풀이 되는 일상 속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해줘야 되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생활했다. 같은 부서에서 7년 정도 근무할 무렵 IMF가 닥쳤고 그 무섭고 거센 칼바람은 힘없는 비정규직에게 불어 닥쳤다. 98년 12월말 해고 되었다. 두 번째 당하는 배신감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서글펐다. 그동안 좋은 시절 다 바쳐 일했는데 결과는 해고라니 할 말을 잃었다. 그때 받은 상처와 함께 맺혔던 한은 쉽사리 지워지지가 않는다. 아니 영원히 한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1년 정도를 공공근로로 전환해서 다닐 무렵 구사일생이라고나 할까? 전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같은 기관 최 일선에서 민원인들을 상대하며 근무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접해보지도 못한 일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한 동안은 힘들었지만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민원인을 상대하며 근무하고 있다.


하늘도 청명한 토요일 아침 은주는 평일과 마찬가지로 출근길에 나선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무실에 나가기 싫은 것일까. 정류장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안녕 하세요”

“어 은주 씨 왔어.

오늘 체육대회도 있는데 함께 가지.

“은주 없으면 나 혼자 힘들어서 못해요.

“그래도 그동안 고생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고 하니까 봐주지 그래

“저 괜찮아요. 그냥 민원 처리 할래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수고해
”다녀오세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은주는 서운함이 얼굴에 그대로 들어나 있다. 출산휴가 들어간 여직원 때문에 토요일에도 쉬지도 못하고 평일에도 아침에 일찍 나와서 업무처리 때문에 몸도 많이 지쳐있는데 오늘 같은 날에도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언니 속상하지.

“언제는 내 마음대로 하고 생활 하는 줄 아냐. 그런데 진짜 오늘은 서운하다. 매주 토요일 쉬지도 못하고 나와서 일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오늘 같은 날은 말이라도 혼자 처리할거니까 갔다 오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

그런다고 해서 내가 나몰라 하고 갈 사람이냐고. 진짜 좀 서운하다.

갑자기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그러니까 그동안 언니가 제일 고생했는데 말이야. 내가 보기에도 속상한데 언니는 더하지

“그만하자 마음 다잡고 근무나 해야지. 자꾸 생각해봤자 서럽기만 하고 잡생각만 나니까 일에나 몰두해야겠다. 근무 끝나고 밥이나 같이 먹자.

근무가 끝나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까는 나라도 서운할 것 같아.

“이게 지금의 내 현실이야. 정말 이런 현실이 싫다.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으니까 적응하는 거지 힘들다. 토요일에는 쉬게 되어있는데도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어쩌다 쉬고 나오면 월요일엔 출근 하면서 눈치부터 살피게 되고 이렇게 까지 해야만 되는가 싶다. 얼마 전에는

토요일 날 늦게 왔더니 일찍 다니라고 하면서 화를 내더니 존댓말 로 바뀌는데 며칠 있다가 신청을 하나 잘못했는데 전화해서 나 들으라고 일부러 “우리 일용직 여직원이 신청을 잘못 했다”하면서 그러는데 정말 피가 거꾸로 서는 줄 알았다. 자기는 뭐가 그리 잘나서 나 솔직히 누가 신분 가지고 뭐라고 하면 진짜 예민하거든 그런데 일부러 나 있는데서 그러니까 정말 미치겠더라고.

“정말 사람도 아니야. 그리고 무슨 변덕이 그렇게 심해

“원래 그래 그 뿐만이 아니야. 명절 앞두고 토요일 날 선물 꾸러미도 많고 해서 갈려고 하는데 자기 볼 일 있다고 사람 오면 가라고 한 사람이야. 그렇게 하고 어디 갔다 왔는지 아냐.

얼마 전에 유명한 도사님이 왔는데 거기 가는 거 있지. 그게 중요하냐. 근무가 중요하냐. 정말 어이가 없어가지고 말이 안 나오더라.

“정말 심하다.

“너는 모를 꺼다. 이 바닥에서 십년이 훨씬 넘게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심정 모를 거야. 나 쓰레기 잘 못 버렸다가 넝마주이 라는 말까지 들었잖아. 전날이 봉급날 이어서 은행 다니느라 몰랐는데 소각장 파기한다고 버리지 말라고 했나봐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전처럼 청소한 줄로 착각하고 버렸는데 몰래 버리고 갔다고 넝마주이 라는 말까지 하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자기들도 잘못 했지. 안내문이라도 있었음 그렇게 안했지. 그런데 말 한마디 못하고 당했잖아.

이것이 나의 모습이야. 당당하게 따지지도 못하고 쥐 죽은 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야. 솔직히 직원들하고 트러블 생길 때마다 부딪치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상대방 성격을 알 기 때문에 또 시끄러우니까 같이 해봤자 좋을 것도 없고 내 이미지만 나빠지니까 그냥 꾹 참고 지내는 거지 마음속으로는 부딪치고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가 않더라고. 서로가 상처 받고 내 자신부터 속상하니까 한 번씩은 내가 따돌림 당하고 있지는 않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정말 틀에 박히고 명령 따라 움직이는 생활에 익숙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력 자체도 흐려지는 것 같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가 없어 정말 싫다.

나도 사람이라 오늘 같은 날은 한번쯤은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체육대회니 뭐니 하면서 행사 있을 때는 완전히 사무실 지키는 강아지야. 영양가 없는 것 할 때는 직원이라고 포함시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직원도 아니고 그렇지 뭐. 더 이상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냐. 내 입만 아프고 속만 상하지.

- 언니 힘내요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죠.

- 그렇게 믿어야지 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 언니는 직장생활 할 때 회식자리 가면 어색하지 않았어요? 저는 진짜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색하고 그래요

- 너 가 그 말 하니까 옛날 생각난다. 나도 마찬 가지였어. 과에서 회식 있다고 하면 먼저 도망가기 바빴지. 처음 발들인 부서에서는 남직원들만 있는 곳이라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지 뭐. 그러다 거기서 배신 당하고 다른 부서에 와서는 내가 원래 성격이 누구하고 잘 어울리지를 못해 그래서 도시락 멤버가 있어서 싸가지고 다녔는데 한 번 씩 그냥 올 때는 구내식당 이용하면 될 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몰랐고 혼자 가기도 심난하고 해서 제과점이나 슈퍼에 가서 빵으로 대신 하기도 했어. 내 봉급 12-15만원 받고 다닐 때부터 집에 생활비 주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았지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된 자리 얻고 나니까 언니들도 오고 여직원도 새로 들어오고 해서 그때부터 조금씩 회식자리 참석하게 되었지.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것 같아 한 두번 참석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되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때가 보람도 있었고 행복했다. 한푼 두푼 모아서 집에 가전제품이야 뭐야 이것저것 들여 놓고 아버지 칠순 때는 이 막내딸도 자식 노릇 좀 했지. 그리고 내 발전을 위해 통신대도 다녀보고 끝은 보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어.

그렇다고 지금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진짜 오늘은 피곤 하다.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 겠다.

그래도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다. 갈수록 신규 채용 연령이 낮아지니까 잘만 지내면 괜찮을 것 같아. 예전 사람들은 우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마음의 벽이 있거든. 하지만 요즘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직 이 사회에 물들지 않아서 내가 대하기도 편하고 동생 같고 격이 없이 어울리니까 좋은 것 같아. 한 번씩 자존심 상할 때도 있지만 말이야.

이제는 너는 비정규직 이고 나는 정규직이고 하는 그런 인식을 벌어야 한다고 봐. 똑같이 일하는데 그렇게 편을 가르는 것이 속상해.

- 저도 언니랑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려요.

- 사회생활 선배로 얼마든지 조언 해줄게.


아침부터 출근 준비로 바쁜 은주 전화벨이 울린다.

- 여보세요?

- 은주 씨 나 미정인데.

- 어 왜?

- 나 오늘 몸이 아파서 못 나갈 것 같아. 미안 하지만 병가 좀 내줘

- 알았어.

전화를 끊은 은주 표정이 별로다. 아이를 가진 탓인지 병가 내는 일이 많아 진다. 은주도 미정이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도 비슷한 또래이다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보조를 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연말 구조 조정 관계로 공공근로로 전환해서 다니고 있는 상태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한 은주 연.병가 대장을 작성 계장님 자리로 간다.

- 은주 씨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무슨 말씀이신데요?

- 은주씨도 알다시피 미정 씨가 곧 있으면 출산 휴가를 들어가는데 봉급을 좀 맡아 주었으면 하는데

- 저보고 봉급을 보라고요?

- 응

- 계장님 너무 하시는 것 같네요. 제가 지금 그거 보게 생겼어요? 지난 연말에 구조조정 당해서 이렇게 공공근로로 다니는 것도 편치가 않은데 제 입장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셨어요? 차석님은 뭐 째로 있어요?

저 그렇게 마음 너그럽지도 않고 봉급 볼 능력도 없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일을 하고 싶겠어요? 지금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것 아니고요. 생각할수록 진짜 억울하고 돌아 버릴 것 같아요. 왜 힘없는 저희들만 당해야 되는데요. 좋은 시절 다 바쳐서 일했는데 0순위로 구조조정 해버리고 저희들 없으면 불편하니까 공공근로라는 명분 아래 계속 근무하게 만들고 그런다고 마음대로 휴가도 갈 수 도 없잖아요.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차석님께서는 자기 일 먼저 해주지 않는다고 무슨 일을 시키면 토 단다고 하고 이 사무실에 여직원이 저 하나는 아니잖아요. 지난번에 소송 관계로 재직증명서 발급해오라고 해서 법령집 정리해놓고 가려고 했는데 그것을 못 기다리고 시키면 빨리 해오지 않했다고 뭐라고 하고 저도 모르게 꼭 내가 가야 되냐고 했더니 가재는 게 편이다고 미정 씨 편들어 주시더군요. 미정 씨를 견주어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본인이 직접 갈 수도 있잖아요. 엘리베이터 타고 몇 층 만 내려가면 그만인데 그걸 가기 싫어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시키고 저도 힘들어요. 그리고 좀 미정씨도 갔다 오면 큰일 나는 것 아니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잖아요. 지난번에 글 한번 썼다가 과장님한테 당한 것 생각하면 공연한 짓 했구나 싶고 저는 뭐 평생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살아야 되나요? 그냥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 속에 묻어둬야 속이 편하겠죠.

솔직히 어차피 보조 해주는 거니까 도와 줄 수는 있지만 저한테 맡아서 하라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그동안 이 사무실에서 7년 동안 있으면서 할 만큼 했어요. 미정씨 대신 감사장 가서 근무도 했고 도청에서 새로운 업무 이관되어서 내려 왔을 때 하루면 수십 건씩 되는 것 문서 발송 다했어요. 심지어는 을지연습 때에도 밤새도록 날 새고 집에 가지도 못하고 시행문 만들어서 발송 했고요. 휴가 다녀와서는 상상도 못하게 많은 양 가지고 다니면서 처리 다 했어요. 그렇게 까지 해줬는데 결과가 뭔데요? 저 없으면 대신해서 업무 처리 해주는 사람도 없잖아요. 힘은 힘대로 들고 배신은 배신대로 당하고 기가 막혀요.

- 내가 괜한 말 했어 미안해. 은주 입장은 생각도 못했네.


은주는 앞으로 십 수 년 후에도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은 채 퇴임을 맞을 상상을 하며 그동안에 담아두었던 말을 글로 표현해본다.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올립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39년 이라는 세월을 흘러서 왔네요.

돌이켜 보면 정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수많은 세월 동안 저에게는 비정규직이라는 꼬리가 달려있습니다. 열아홉 살 풋내기가 이제 어느덧 퇴임을 앞두고 있으니 그동안 제 자신을 돌이켜보면 서러운 마음만이 남는 것 같네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직원들 모두가 형제자매요 아들 딸 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감싸 주시고 챙겨 주세요.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어린 마음으로 대해 줄 때 저희 가슴속에 맺힌 한 들은 봄눈 녹듯 녹아내릴 것입니다. 그동안 박혀있던 고정관념을 바꿔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근무하면서 참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소수의 분들은 저희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지만 의견이 있어도 가슴속에 맺힌 것이 있어도 속으로만 품고 있었습니다. 자유도 없고 명령 따라 움직이는 로봇 같은 생활이 지겨웠습니다.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고쳐 주세요. 저는 비록 떠나지만 제 밑에 있는 직원들은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좋은 조건에서 근무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소외감을 받아야 합니까. 아마 지금 제가 정식이 되어서 높은 위치에 있었더라면 이런 씁쓸한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겁니다.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는데 그 희망은 꿈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퇴임이라고 생각하니 1998년도가 생각이 나는군요. IMF가 오면서 힘없는 우리한테 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때가 떠오르네요. 명예롭게 물러나야 할 퇴임이 왜 이렇게 쓸쓸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어리석다고 하겠죠. 일명 백그라운드라도 써서 탈피하지 그랬냐 하시겠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고요. 정말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신문에 기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정말 차가웠습니다.

내가 공연한 짓을 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과연 상사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말씀하셨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 뒤로는 정말 벙어리로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슴속에 묻어둔 채 30년 이상을 훌쩍 넘겼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이유 때문인가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사랑해주세요.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베일 속에 가려진채 조용히 떠나려 합니다. 그동안 진심어린 마음으로 대해주신 소수의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 드리고 싶네요.

모두들 건강 하시고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행복 하세요“

간단하게 낙서하듯 써내려간 글을 읽어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이런 현실이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은주 역시 내성적인 성격에 한 만 쌓였다. 그래서 한 번씩 낙서 하듯 글로써 스트레스를 푼다. 속상할까봐 집에다 이야기도 못하고 글쓰기가 유일한 벗이라고 생각한다.


따가운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눈을 뜬 별님이 컨디션이 안좋아 보인다.

“ 자갸 몸살기 있는거 같아. 먼저 출근해 오늘 하루 쉬고 싶다.

“ 그래 알았어. 몸조리 잘해 나 먼저 간다.

“ 응 수고해

사무실로 전화를 거는 별님이 정화의 싸늘한 말투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동안 생활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서러움이 밀려온다.

전화를 끊고 난 정화 표정이 날씨만큼이나 열이 받아 있다.

“아주 여러 가지 해요. 아침 에도 9시 다돼야 오고 뭐야 진짜 아 짜증나. 열 받아 죽겠는데 민원인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동안의 피로가 쌓인 탓인지 곤히 잠들어있는 별님이는 한참 꿈나라에 빠진다. 그렇게 얼마를 잤을까 눈을 뜨는 별님이 한결 몸이 가벼워 보인다.

수화기를 들고 미영이 한테 전화를 한다.

“ 언니 나 별님이 적응 잘하고 있어?

“ 응 넌 어떠니.

“ 나야 그렇지 뭐. 오늘 컨디션이 별로여서 삼실에다 전화하고 하루 쉬고 있어. 한숨자고 일어나니까 조금 낫네. 근데 정화언니가 받아서 그 퉁명스런 말투 있지 그게 좀 걸리네.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 야 신경 쓰지 마 걔 원래 그러잖아. 저 혼자 하려고 하니까 짜증나서 그러겠지. 너 가 없어봐야 너의 소중함을 아니까 마음 편히 푹 쉬어

“ 나도 그냥 무시해 버리려고 하고 있어. 내일 출근해서 뭐라고 하면 이제는 나도 못 참아 그냥 붙어버릴 거야.

“ 그래 네 덕분에 나도 희열감 좀 느껴보자. 그럼 다음에 보자 잘 쉬고

“ 응 알았어.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삼실에 도착한 별님이 정화의 눈치부터 살핀다.

“ 언니 어제 바빴지.

“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바빴지.

아침이면 일찍 오기를 하나 그렇다고 점심시간을 제대로 지키길 하나 어제는 결근까지 하고 말이야 아 정말 신경질 나 죽겠네.

별님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무엇인가 결심한 듯 먼저 말을 꺼낸다.

“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생일도 빠르고 해서 언니 해줬는데 너나 나나 종이 한 장 차이야 알아?

이 계집애야. 너 항상 네 잘못 인정안하고 나한테만 몰아붙이지 너 그러면 못써 내가 너보다 못하는 것 없고 일도 너보다 많이 해 그동안 참고 있었는데 네가 업무 맡았으면 책임지고 해야지 어디서 다른데다 물어봐서 하래 그렇게 하고도 봉급 받으려면 양심에 가책도 없냐. 너도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을 해봐라.

“ 뭐야? 너 말 다 했어

“ 아니 아직 다 못했어. 미영언니 아파서 안 나올 때도 네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일만 저질러 놓고 치다꺼리는 다른 사람이 다 해준다고 했지. 네가 그렇게 업무에 대해서 다 알아? 너도 실수하면서 그런 소리 할 자격도 없어 뭘 알고나 그런 소리 해 알았어?

직원들을 비롯 동장님까지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며 고요함과 적막감이 감돈다.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은 별님이 이제는 직원들과 동장님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 직원들이나 동장님도 어떻게 하셨어요. 저 여우같은 계집아이만 감싸고 돌았죠.

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런 얘에요. 남들 앞에선 착한 척 하면서 뒤돌아서면 본색이 들어나는 그런 아이라고요 아셨어요?

사무장님도 그래요 그렇게 직접적으로 차별대우 하시면 안돼요. 다른 직원들한테는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하시고 저한테는 그런 말 한마디 하기는 고사하고 음식물 쓰레기나 버리고 오라고요? 저 정말 그때 얼마나 서글펐는지 아세요? 제가 비록 여기서는 사소한 것까지 다 해드리고 있지만 저도 집에 가면 한 사람의 아내요 제 부모님한테는 귀중한 딸이에요. 사무장님 따님이 이렇게 사소한 것이나 하면서 개인비서 역할이나 하고 있는 모습 보면 기분 좋으시겠어요? 그래도 개인 비서는 그나마 낫네요.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 거예요. 얼마든지 스스로 하실 수 있는 것도 그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시키시면 저도 나름대로 일이 있는데 제 일은 언제해요?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퉁 소리 먹는 건 누가 먹어요. 저만 중간에서 뭐냐고요. 저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단지 임시직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궂은일 다하고 누구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신 분 있으세요? 요즘 혁신 말은 좋지요 하지만 겉으로 혁신만 외치면 뭐합니까. 속은 그대로인데. 저도 인간이라 편하고 싶고 대우받고 싶고 봉급도 더 받고 싶고 그래요. 다른 것은 몰라도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와 해 줄 수 있는 것은 있잖아요. 이 중에는 저처럼 임시직부터 거치신 분도 계시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럴수록 더 이해 해주고 감싸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모른다고 잊고 사셨나요? 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으시겠죠. 저부터도 그럴 테니까요.

어제 전화하니까 몸조리 잘하라고 해주지는 못할망정 퉁명스러운 정화언니의 말투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세요. 다른 분들은 일이 있으면 연 병가도 잘도 내시죠. 아파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무슨 일 있으면 이 사람한테 이야기하고 저 사람한테 이야기하고 눈치 봐야 할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예요. 그 뿐만이 아니죠. 왜 업무분장 할 때 저희 까지 건드리세요. 저희는 솔직히 아무 상관 없잖아요. 자기가 대하기 싫은 민원인은 다 저희보고 처리하라고 하고 저희가 뭐 쓰레기 청소해주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피하려고 하는지 한번 상대한 민원은 끝까지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대체 여러분들은 저희를 평가하는 기준이 뭐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군소리 없이 하면 그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기준 아닌가요. 이 기분으로는 정말 근무 못하겠네요. 상기된 얼굴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간다.


밖으로 나온 별님이 한편으로는 속 시원 하고 한편으로는 서러움이 북받쳐 온다. 무작정 걸어왔는데 어느덧 미영이 근무하는 사무실이다.

“ 무슨 일이야? 몸은 괜찮아.

“ 응 나 지금 직원들이랑 그 정화 계집애한테 한바탕 하고 오는 길이야.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막 퍼부어 줬어.

삼실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준다. 미영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 야 내 속이다 시원하다. 잘 했어 아이고 속 시원해. 역시 우리 별님이 용감했어. 사실 그동안 나도 엄청 힘들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언니한테 오고 나니까 좀 마음이 풀리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나 그럼 이만 가볼게 아무리 열 받아도 내 할일은 해야 하니까.

“ 그래 조심해서 가고

한편 사무실 직원들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멍 하니 있다. 동장님 직원회의를 부른다.

“그동안 도대체 별님이 한테 어떻게 했길래 그럼니까 예? 별님이 말 하나도 틀린 것 없어요. 조용히 자기 일만 한다고 우습게 봐서는 안됩니다. 앞으로는 서로 애로사항이 뭔지 파악해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그렇게 근무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특히 정화 씨는 별님이 한테 함부로 하지 마세요.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하면 앞으로 계장되고 과장되면 더 할 것 아닙니까. 아무리 직급 사회라도 인간적인 면이 우선 입니다. 자기보다 낫다고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정화 씨 뿐만이 아니고 모든 직원들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명심들 하세요. 그리고 사무장도 그래요

사무장이라는 위치가 직원들이 부족하고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감싸주고 어머니 역할을 해줘야지 그게 뭡니까. 별님이가 가정부도 아니고 진짜 너무 하셨어요.

마음이 진정 됐는지 사무실에 도착하자 동장님 실로 향한다.

“ 동장님 아침부터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그런데 정말 이런 말은 언제부터 꼭 하고 싶었어요.

“ 알아 별님이 말 틀린 것 하나도 없어. 우리 이제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면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근무해보자. 알았지.

“ 그래 우리도 미안하다. 네가 하도 성격이 좋아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니까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둔 게 있었는지 몰랐어. 미안해. 이제 보니까 별님이도 보통이 아닌데 다시 봐야겠어.

“ 원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무서운 법이에요.

정화가 별님이 에게 사과를 요청한다.

“그동안 내가 미안했다. 앞으로는 서로 위해주며 친구처럼 지내자 미안해.

“그래 그러자 지금부터 말 놓는 거다. 알았지. 너 앞으로 잘해 한번만 더 그러면 이젠 국물도 없다.알았어?

“ 예 명심 하겠습니다.

“ 동장님 말씀처럼 이제 서로 위해주면서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근무해요. 은주언니가 자주 쓰는 말인데 맑고 밝고 훈훈하게 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내 자신부터 맑고 밝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아끼고 위해준다면 정말로 모두가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훈훈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동장님 우리 파이팅 하고 하루 일과 시작해요.

우리 모두 파이팅.

“ 여러분 앞으로는 다투는 소리는 나지 않고 웃음소리만 가득 넘쳐나는 그런 사무실 분위기 만들어 갑시다.

즐겁게 하루 시작 합시다.파이팅!!

“우리 동장님 정말 멋있어요. 존경합니다.

“ 그동안 이 동장한테도 서운한 거 있음 풀어라 나도 앞으로는 더 신경 쓸게

“ 동장님께는 서운한 거 없어요. 저도 앞으로 더 잘 할게요.

직원들과 별님이 동장님 모두 환한 웃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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