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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꽃 일원이 Feb 26. 2016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를 읽고

마약, 알코올중독, 자연파괴, 노동자계급의 노동착취, 성폭행, 인종차별 이 모든 것들이 세계를 손에 넣고 흔드는 미국이라는 곳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이다. 

어디 미국만의 세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국가라면 어느 정도는 공통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빼앗아 갔던 인디언들의 보금자리,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자본가들 때문에 노동자들과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은 갖은 언어폭력과 구타 등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고 약물중독 등으로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목숨을 걸고 미국 땅을 밟은 불법체류자들의 삶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연 파괴는 일도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 병들고 힘겹게 살아가도 관심조차 없었다. 

대기업이 그러하듯 정치자금으로 의원들을 유혹했고 정경유착의 끈끈한 고리는 자본가들의 이익만 부풀려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업이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고, 이를 위해 정치권력과 손을 잡는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대중의 희생을 먹고 자란 결과이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라는 해묵은 이념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최상의 가치라 여기는 우리에게 오늘날 미국의 대중이 처한 현실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사례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가가 되는 동안 미국의 대중들, 특히 인디언, 흑인, 유색인종의 참담한 희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물론 그 과실은 소수의 백인이 차지했다. 
 미국은 파괴를 통해 성장했다. 자연을 파괴했고, 환경을 파괴했고, 인간성마저 파괴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고통을 먹고 성장했다. 오랜 세월 자신들이 일구어놓은 터전을 빼앗긴 인디언의 고통, 노예로 그리고 노예처럼 살다가 슬럼가에 방치된 흑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조국을 떠난 수많은 유색인종의 고통을 먹고 자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성장의 발판이 되었던 자연 파괴와 대중의 고통이 이제 칼날이 되어 그들 자신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사를 누리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배에 완전히 올라타지 못한 수많은 백인들 앞에도 희생이라는 칼날이 놓인 것이다. 미국과 그들의 기업이 세계 곳곳에 남긴 파괴의 흔적과 세계인의 고통이 부메랑을 타고 미국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은 권력 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걸까?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법인데 1%가 99%를 지배 한다고 할까? 

영원히 함께할 것 같은 소중한 사람들, 영원한 나의 소유인 것처럼 욕심 부리며 모으기만 했던 재벌가들의 재산도 운명 을 달리하면 가져갈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 소중한 사람들도 떠나게 되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자연적 이치요 순리인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나의 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의 소유 기간은 얼마나 될까? 

짧게는 몇 분에서 몇 십 년 까지 일 것이다. 

본인의 원에 의해 소유한 것에 대하여는 애착이 남다르다.     

“나의 가치는 무한대입니다. 

 나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아 오릅니다. 

나로 인해 기쁨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나의 소유 정도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를 남에게 과시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쓰기도 합니다. 

나는 행복의 조건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나 주어진 여건에 따라 함께 할 시간이 달라집니다. 

나와 당신은 항상 이별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는 깨끗하고 적당히 쓰여 지기를 원합니다. 

뭐든지 나를 이용해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는 한계가 있으며 당신의 사고방식에 따라 나의 가치는 변합니다.     

나는 “돈” 이당 께요?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지만 그것은 소유했다는 만족감에서의 웃음일 뿐입니다. 

돈 잘 쓰면 보람되고 마음도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누구나 쾌적한 환경과 풍요롭고 화목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일 것이다.     

나는 지나가는 시간과 같아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때 느끼지 못하면 알 수 없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 일수도 있고 부러움의 대상일 수 도 있습니다. 

나는 모두를 웃음 짓게 해주지만 모든 것을 잃게 되면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나의 조건은 각자 생각에 따라 다릅니다. 

조건에 대한 생각을 크게 가지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소박한 생각을 가지면 작은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어 웃음 짓게 합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행복”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리듯이 1% 지배에서 벗어나 이제 그들만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저항하고 있다.

2011년 9월 17일,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서 월 가 점령 운동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99%의 희생이 99%의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묵묵히 희생당하던 대중이 자본주의의 실상을 알고, 기업의 뻔뻔스런 탐욕을 깨치고, 이들과 강하게 유착한 정치권력의 부조리를 몸소 체험한 결과이다. 비록 늦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항 운동의 중심에 백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사회의 주류 세력이라 여겨졌던 백인이 저항 운동에 나선 것은 소외감과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이다. 결국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라는 그늘 아래 있는 기업과 정치권력 앞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삶의 질과 빈부격차의 문제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점점 더 나빠질 게 분명하다. 이제는 ‘희망’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사치스럽다’라는 말로 인식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많은 민중이 뉴욕의 중심가에 모였다. 이를 계기로 자본주의와 기업과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 운동이 세계를 휘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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