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의 종착역을 향하여 앞만 보고 달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풍요로운 삶을 살기위해 머나먼 이국땅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첫발을 내딛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 산업연수생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문화적, 언어적 차이 등 넘어야 할 산이 첩첩 산중이다.
직장을 구해도 최저임금도 못되는 급여를 받을지언정 그들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이 실현되기까지는 무척이나 힘에 겨웠거나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누린다는 얄팍한 자본가들의 논리가 적용됨에 따라 그들은 노동의 노예가 될 뿐이었다.
3D 업종의 취업 기피로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그곳에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야간작업을 도맡아 했고 언어폭력과 구타 임금체불에도 그들은 항거할 수 없었다.
그들의 요구사항을 말한다 싶으면 그것은 곧바로 추방이었고 반항이며 괘씸죄 였다.
한 두 평 남짓한 컨테이너가 그들의 숙소였고 난방조차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무조건 참아야 했다.
퇴직을 해도 퇴직금조차 주지 않으려는 얄팍한 사장들 각종 관련법 제시하며 따지고 들면 그때서야 꼬리를 내리며 응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들은 또한 체불임금을 포기한 채 다시 고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재산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돌려놓고 갖은 핑계로 임금 주기를 꺼려했다.
되풀이 되는 야근으로 몸은 지쳤고 이해하지 못한다며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며 구타와 폭언을 일삼는 자본가들 때문에 마음도 지쳤다.
그래도 그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소박한 꿈을 이루겠다는 굳은 신념이었을 것이다.
작업을 하다 다쳐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몸살이 나도 꾀병을 앓는다고 몰아 부치고 손이 절단되고 허리를 쓰지 못해도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참고 참았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조안 그는 결혼 후 아이 2명을 둔 평범한 주부였지만 둘째 아이 때 닥친 시련 아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지만 그에게는 백혈병이라는 커다란 벽이 가로 막았다.
만만치 않은 치료비도 문제였지만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아버지와 딸, 미등록 이주 노동자인 어머니도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조안은 쓸쓸히 고통의 시간을 버텨야 했고 결국은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하늘나라로 떠나야 했다.
그의 시신은 치료비 대신 해부용으로 기증되었다.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봤을 때는 희망의 국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과 허탈 모욕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가들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한결 같이 임금체불은 기본이고 폭행과 저임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나라로 가버려”였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의심스러웠다.
하기야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고를 일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인데 외국인들한테는 오죽이나 할까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외국인 노동자 뿐 이겠는가.
국제결혼으로 만난 이주여성들 역시 순탄하지는 않았다.
민원실이라는 업무 특성상 외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혼인신고를 하러 온 사람들을 많이 봤다.
겉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여성과 열 살 이상 차이나는 남성 자녀 같은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볼 때 행복하게 끝까지 살면 모르는데 또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왠지 어린 여성의 표정은 쓸쓸해 보인다.
머나먼 이국땅에 시집온 그들은 늦은 밤 고향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달랠 것이다.
이혼이라도 할 것 같으면 결혼 비용을 요구한다고 한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가족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돈에 팔려온 노예가 됐다.
살기가 어려워서 자녀들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고 아이들 또한 다문화 가족으로써 아픔과 놀림을 받아야 했다.
교포 또한 한국 사람인데도 외국인 취급을 받고 출생신고를 하려고 해도 유전자 확인서를 첨부해야 했고 모든 생활에 걸림돌이 많았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률도 외국인 노동자를 미등록자로 내몰고 있으며 언제 어떻게 단속에 걸려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초조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기본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인종과 모양새가 다르다고 차별을 일삼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하나이다.
자신들의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 할 때 없이 헤매고 있을 때 “한국 이주 인권센터”가 손 내밀어 주었고 행정기관과 업체에 대항하며 싸워주었다. 인권센터 마저 없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인권센터는 그들에게 노동조합과도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이주 노동자로 고달픈 삶을 살다가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인해 부상당한 이들과 하늘나라로 떠나간 이들에게 빠른 쾌유와 영원한 해탈 천도를 그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하루 속히 떨쳐버릴 수 있기를 빌어본다.
-행복한 세상에 종착역을 위하여 -
부푼 꿈 안고 찾아온 이국땅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
그래도 꿈의 실현을 위해 오늘도 참으리
밤샘작업에 몸이 지치고
무시와 폭력에 마음의 상처가 깊어간다
하루하루 악몽에 시달리며
언제 추방될지 모를 두려움에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지친 몸 이끌고 밤하늘 쳐다보니
고향 생각뿐
외롭고 허전한 마음 달래며
오늘도 우리는 자본가들의 일하는 기계가 된다.
그들은 꿈을 향해 온갖 설움 및 차별을
견디며 자신과 싸운다.
멀고도 먼 고통의 터널 지나
환한 빛 가득한 행복의 세상
그 종착역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