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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Park Apr 06. 2022

배우의 얼굴을 완성하는 '한 끗'

그 한 끗은 '처연함의 가능성'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예쁘거나 핸섬한 얼굴이 오히려 커리어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배우들이 있다. 현실의 차원을 초월한 듯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만으로 경계를 긋고 괴리를 만든다. 말 그대로 ‘현실의 차원을 초월한 미모’이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권태롭거나 잔인한 일상의 표정을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화려한 그릇이 된다. 개인적 취향으로 배우로서 가장 좋은 얼굴을 꼽는다면, 모난 곳 없이 고우면서도 단촐하고 소박한 백자와 같은 얼굴이다. 한예리와 김다미, 박소담과 전여빈, 그리고 김태리.(최근 애플tv 오리지널 <파친코>에서 인상깊게 본 김민하도 추가됐다)  어떤 종류의 서사에 최적화된 얼굴은 아니지만, 어떤 맛을 담아도 넘치지 않게 어울리는 얼굴들. 나는 그런 배우의 얼굴이 좋다.


영화 <미나리>에서의 한예리.


배우의 얼굴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한끗이 있다. 그것은 ‘처연함의 가능성’이다. 나는 이것을 대충 ‘사연있어 보이는 얼굴'이라 부른다. 이걸 타고나게 갖추는 사람은 드문듯 하다. 배우의 세계가 멋지게 숙성되면서 갖춰지는 역량이다. 자기 삶의 면면에서 쌓인 애수가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배우 개인의 내면에 쌓인 삶에 대한 통찰이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연기에 섞여들어가는 순간은 눈에 띄게 울린다. (윤여정,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의 연기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디어 마이 프렌즈>의 모든 장면들이 시종일관 기름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절절한 공명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아닐까. 이 배우들은, 이미 자기 삶의 베테랑이니까.)  


tvN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의 스틸컷. 김원숙,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윤여정, 신구, 그리고 김영옥.


배우 자신이 가진 내면의 굴곡이 화면 속 활짝 웃는 표정의 한가운데 서늘한 그늘로 드리워지는 순간은 특히 벅차다. 최근 남주혁의 연기를 보며 바로 그 벅참을 느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준하역을 연기한 남주혁


그가 스물 여섯에 연기한 <눈이 부시게>(2019)를 보면서, 뒤늦게서야 그가 차근차근 탄탄하게 밟아온 성장의 경로를 역추적할 수 있었다.  ‘준하’라는 캐릭터는 그가 배우로서의 얼굴을 완성하는 중요한 기점이었던 것 같다. 그 전까지 이 배우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상은 ‘동시대가 욕망하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완벽한 매끄러움으로 보여주는 마스크’, 한마디로 ‘요즘 가장 취향타지 않게 잘생긴 외모'를 가진 배우라는 게 전부였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준하역을 연기한 남주혁

그 얼굴에 상실감, 체념, 허무, 신경질적인 예민함, 기구한 운명 위에 딱 한발만 딛고 선 위태로움 같은 것들이 깃드는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지난 몇년 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까지 연기가 늘었냐’는 에디터의 질문에, 그는 ‘나는 언제나 꾸준히 고민했고, 꾸준히 실패했으며, 여전히 매일 고민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며 연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충격파로 인해, 어느 순간 둑이 무너지듯이 자신도 모르게 해방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변함없이 내면의 둑을 때리고 있었던 거다. 아직까지 자신의 이름 앞에 ‘배우’라는 말을 병치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자신은 이 업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질 수 있는 ‘감냥’을 아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새삼 그 진지함에 또 한번 적잖이 놀란다.


—-

 배우가 앞으로도 꾸준히 보여줄 성장의 ‘목격자’가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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