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물 우화에 담긴 진실
태초에 모든 동물은 무늬가 없었다. 뿔도 없고 털도 없고 희끄무레하고 밋밋했다. 어느 날 동물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무늬가 있는 가죽과 색이 화려한 털이 가득한 동굴을 발견했다. 모든 동물들이 동굴에서 예쁘게 단장을 시작했다. 표범은 꼼꼼하게 멋진 가죽옷을 꿰맸지만, 눈이 안 좋은 코뿔소는 바늘도 놓치고 자꾸 코 뿔이 걸려서 제대로 바느질을 못해 벙벙한 가죽을 입어 몸에 주름이 지게 되었다.
식탐이 많았던 얼룩말은 “아직 시간은 많아” 라며 풀만 먹고 게으름을 피웠다. 동굴로 가면서 멋지게 변한 각종 동물들을 만났지만 여전히 풀을 뜯으며 천천히 갔다. 결국 동굴에 제일 늦게 도착한 얼룩말, 그의 눈 앞엔 작고 검은 천과 실 몇 가닥만 남아있었다. 얼룩말이 겨우 옷을 만들고 몸을 다 넣은 순간, 팍! 팍! 팍! 옷이 그만 갈기갈기 다 찢어져버렸다.*
아프리카 동물 우화에선 얼룩말은 흰색이 바탕이고 검은색 무늬라고 한다. 얼룩말 무늬의 색이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과학적인 의견이 많지만 난 이 이야기를 믿고 싶다. 세이블처럼 멋진 뿔을 가질 수도 있었고 표범처럼 화려한 무늬를 가질 수도 있었지만, 결국 먹느라 늦게 갔다는 게 정말 신빙성 있기 때문이다. 얼룩말은 하루 종일 풀을 뜯는다. 저 통통한 몸을 감당하려면 당연한 그래야 할 것 같다. 코끼리는 코로 한 번에 휘감아서 먹으면 되는데 얼룩말은 짧은 풀을 한입 한입 다 뜯어먹어야 한다. 체구에 비해서 이빨도 몇 개 없고 그마저도 옥니여서 한 번에 많이 뜯지도 못한다. 배고플 때 밥알 하나씩 먹는 거랑 같은 기분일까?
옷이나 소품에 많이 쓰이는 무늬라 눈에 익어서 그런지 저 멀리 얼룩말 떼를 보면 누가 초원에 머플러를 하나 흘리고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지랑이까지 피어오르면 너울너울 영락없이 바람에 휘날리는 머플러다. 다 똑같은 ‘얼룩말 무늬’ 같지만 무늬가 같은 얼룩말은 하나도 없다. 얼룩말 몸의 무늬는 사람의 지문이랑 같다고 한다. 갓 태어난 얼룩말은 몸에 보송보송하게 털도 있고 아직 무늬도 연갈색이다. 어른 얼룩말과는 달리 통통하지도 않고 날씬하다.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있으면 더 호리호리해 보인다. 새끼와 어른을 비교해보면 키는 1.5배 정도만 더 크는 거 같은데 옆으로는 세배쯤 불어나는 것 같다.
배도 통통 엉덩이도 통통. 귀여운 외모이지만 얼룩말은 은근히 ‘한 성깔’ 한다. 싸울 때 보면 캥거루 못지않게 격하게 앞발을 들어 올리고, 사방팔방으로 뒷발질을 한다. 잇몸이 활짝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 화를 내는데 침이 얼마나 튀는지 모른다. 얼굴도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눈빛이 강하다. 카메라 줌을 잘못 당겨서 시야에 얼굴만 확 들어오면 흠칫할 때도 있다. 마치 위장을 하고 밤샘훈련을 한 특전사의 눈빛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을깔게 된다.
숨겨진 포악한 성격 때문일까, 얼룩말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얼룩말보다 훨씬 크고 날씬한 말도 마차를 끌고 사람을 태운다. 몸집이 비슷한 당나귀도 온순하게 등에 짐을 얹고 제 할 일을 한다. 하지만 얼룩말은 태초에 그랬듯 야생에서 계속 살고 있다. 아, 성격 한번 대단하다.
* 이 아프리카 동물 우화가 쓰인 ‘Greedy Zebra’는 기념품 코너의 단골 서적이다. 작가 이름은 Mwenye Hadithi라고 되어있는데 사실 진짜 이름이 아니고 ‘이야기꾼'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다. 진짜 작가 이름은 Bruce Hobson으로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난 외국인이다. 이 아프리카 우화 그림책은 어린이용이지만 아프리카 동물들의 숨겨진 내용이 많아 어른이 읽어도 재밌다. 일러스트도 일반 그림책처럼 마냥 원색으로 도배되어 있지도 않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의 홈페이지는 여기(클릭).
커버 이미지 : 새끼 얼룩말과 엄마 얼룩말 @2015 미쿠미 국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