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초원에서 어디로 가야 길일까
세렝게티 들어가기 이틀 전. 조금이라도 속세 맛을 더 보고자 아침 일찍 인터넷 창을 열었다. 탄자니아 시간 오전 8시 35분.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가 통산 600호 홈런을 쏘았다. 미국에도 8명밖에 없고 일본에도 2명뿐인 기록, 그리고 한국 최초의 기록이다.
나는 야구를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야구보단 야구를 보며 먹는 치킨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승엽 선수에 대해 한 시즌 56호 홈런으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WBC 4강으로 미치도록 많은 뉴스들이 쏟아졌던 건 알고 있다. 인터넷도 잘 안되지만 치맥 할 수 없는 밤을 달래려 스포츠 뉴스까지 클릭하다가 하나둘씩 알게 된 사실이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세렝게티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이슬 맺힌 텐트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장비를 챙긴다. 허겁지겁 커피를 마시고 동쪽으로 달린다. 365일 일출을 찍어도 건지는 건 고작 2,3개. 오늘은 그럭저럭 환하게 해가 떴다. 자외선을 듬뿍 받고 나니 선크림을 미처 못 바르고 나온 게 생각난다.
이제 사자를 찾아야 한다. 어제 그곳에 있어주기를 바라며 GPS를 켜고 달린다. 초원 위를 헤매다 보면 방향 감각이 없어져 GPS의 화살표를 따라 가도 너무 낯설어 보인다. 어제 기억해놓은 특이한 나무가 나타나자 속도를 줄였다. 경운기가 가듯 살금살금- 털털털- 조심조심 접근한 게 허무하게도 풀을 뭉갠 자국만 남아있다. 하아, 오늘은 또 어디를 가봐야 할까.
저쪽에서 일어나는 먼지는 바람 때문일까, 새로운 동물 때문일까.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살펴보기를 수십 번. 초원에선 스쿼트가 따로 필요없다. 아까부터 암사자 한 마리가 자꾸 두리번 거린다. 배를 보니 아주 홀쭉한 건 아니지만 사냥을 못할 배도 아니다. 이 근처에 초식동물이 어디 있었더라? 아까 누우 떼가 가던 방향이 이쪽 아닌가? 다른 사자들은 어디 있지? 저쪽에서 다른 암사자 한 마리가 걸어간다. 바람은 지금 어디로 불고 있지? 빨리 촬영차의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한껏 기대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종일 부산만 떨다가 석양까지 찍고 돌아오는 허탈한 길. 캄캄한 야영지에서 내일은 어디로 갈지 회의를 하고 클립 정리도 마치면 10시. 고양이 세수 하고 일기를 쓰고 나면 어느덧 11시다. 빨리 자야 하는데 초원을 덮은 무수한 별처럼 깨알 같은 고민이 밀려든다.
아무리 긴장을 하고 지내도,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다 보면 모든게 지겨워진다. 항상 같은 길, 항상 같은 음식 그리고 항상 같은 동물. 요행을 바랄 수도 없고 실적이 쌓이는 것도 아닌 이 무정한 초원. 날마다 초원 위에서 보내는 똑같은 일상이 힘들기 때문에 노력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침낭 안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한다. 이렇게 버티는거 말고 뭔가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명확한 답이 떠오르진 않는다.
이승엽 선수의 야구 인생 30년.
여기서 3년이라고 떠들었던 내가 그만큼 작아진다.
진정한 노력은 무엇이고, 나는 그곳에 다다르고 있을까.
커버 이미지 : 길을 잃었던 그루메티 어딘가의 얕은 돌산 @2015
작은 사진 1 : 내가 싫어하는 랜드크루저를 타고 @2015
작은 사진 2 : 핸드폰 보다 중요한 GPS @2016
작은 사진 3 : 진흙탕을 무사히 나온 랜드로버 창문 @2016
큰사진 1 : 그루메티 초원 일몰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