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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지망생'

by 김준정

월명산에 가면 젊은 사람들보다는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분들부터 80대 이상인 분들까지. 체육공원을 지나는데 운동기구가 비어있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한창 운동 중이었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어서인지 이곳이 또 다른 학교처럼 느껴졌다.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노년을 생각하게 되었다. 창밖으로 지나쳐가는 풍경을 보듯 사는 게 아니라 멈춰서 되돌아보는 경험을 많이 한다면 많은 돈과 친구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글쓰기가 과거의 나와 이별하는 일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습작을 시작한 초기에는 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썼다. 그 글에는 원망과 서운함이 듬뿍 담겨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 얘기를 쓰지 않게 되었고 쓰더라도 현재의 나의 시선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려면 배경 설명을 해야 하고 타인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객관화가 되었고 나의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어린 나와 이별하게 된 기분이었고,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의 나를 만나 당시에 알지 못했던 두려움과 속마음을 발견하고서야 그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조금씩 내 안에 쌓인 것들이 비워져서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건 친숙했던 친구와 가족을 떠나는 일이기도 했다. 예전에 친했던 사람인데 만나고 나면 헛헛함을 느낄 때가 있다. 친구와의 이야기는 자꾸 어긋났고 나중에는 말을 고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겉돌기만 하다가 어떤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돌아서고 말았다.


친구와 내가 한 말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동안 내 마음은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친구를 탓하는 마음이 들다가 불쑥 예전에 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마침내 나한테로 돌아왔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건 우리가 함께한 행복한 기억 때문이었지만 그때와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 그 시절에 나는 엄마도 아니었고 40대도 아니었다. 강물이 흐르듯 나는 제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걸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 예전의 감정을 기대한 나의 성급함이 문제였다. 내가 변한 만큼 친구도 달라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친구를 만나지 않고도 소중한 추억을 음미할 수 없을까. 친구에게는 다정한 메시지로 내가 잊지 않았고, 우리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려준다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외롭지만 혼자의 시간을 조용히 채우다 보면 언젠가 나를 아끼는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가 올 것 같다.


글을 쓸수록 내 안에 생각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한 가지 일이 다른 것으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걸 경험한다. 그 일의 보다 깊은 의미를 알게 되면서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이 충만한 노년을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지난 일의 의미를 되짚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누구와도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삶이 끝나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부모님을 원망하다 나중에는 자식에게 기대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으니까.

한적한 월명산


본격적으로 습작을 한 지 2년 9개월이 되었고, 초밥이는 내게 “도대체 책은 언제 나오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전에 하던 질문은 “엄마 작가는 언제 돼?”였는데, 내가 “오늘 글을 쓴 사람이 작가”라고 알려주자 초밥이는 질문을 바꿨다.


마흔이 넘어서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는 게 부끄러운지 자문을 했다(사실 좀 부끄러워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어떤 일의 ‘지망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몇 살이 되든 더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 아닐까. 이 말도 초밥이한테 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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