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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Sep 13. 2021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딸에게

초밥이의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버스를 잘못 탔다고 하지만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들어온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날도 주짓수가 끝나고 친구랑 걸어온다며 밤 10시가 되어서 들어왔다. 일찍 들어오라고 하고 통금시간을 정하면 되겠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아이가 내 말을 무조건 수용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른 생각을 가졌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중요한 건 다른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행동이면에 숨겨진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아이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부모, 자식 관계는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조차 공유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생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할 필요가 없다. 아이의 관점을 알고 내 생각을 보태면서 의견을 좁힐 수 있다.     


학원을 그만둔 이유 중에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기 싫다는 것도 있었다. 왜 지각했냐, 숙제 안했냐, 공부해라, 그런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숙제를 안 했다면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지각을 하게 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는 이상한 수학선생님이었다.     


나는 중요한 건 행동보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과 생각을 이야기를 하는 게 잔소리 100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커나가고 새로운 상황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잔소리를 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권위(설사 그 사람이 부모라 하더라도)때문에 어쩔 수없이 따르는 것보다 스스로 납득해서 결정했다는 경험을 가지기를 바랐다. 동의되지 않는다면 끝까지 저항하기를 (속이 터지지만 어쩔 수없이) 바란다. 인생을 나로서 살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정말 화가 났다. 아니 두려웠다는 말이 맞겠다. 7살 초밥이가 혼자 건널목을 건너서 빼빼로를 사 온 적이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맡에서 빼빼로를 오독오독 먹고 있는 녀석을 보고 “그거 어디서 났냐?” 하니까, 녀석은 천진한 얼굴로 “마트에서 사 왔는데?”했다. 그 순간 느낀 공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사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불안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다. 망가지면 나는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 어젯밤에도 찾아왔다. 아이는 나와 엄연히 다른 인간이어서 내 불안이 이끄는 대로 할 수도 없다. 이럴 때는 아이를 이성적으로 대할 자신이 없어서 집에 들어온 딸에게 자라고만 말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불쑥 예전에 원망했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아빠가 느꼈을 불안이 이거였구나,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고 폭력으로 느꼈던 행동 너머에 이런 약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니. 아빠가 가여웠고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우린 왜 그 마음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했을까.     


내가 중학생일 때,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놀다가 5시에 집에 오는 것도 아빠는 안된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이 등하교할 때 같이 해야지, 혼자 버스를 내려서 걸어오는 게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아빠였으니 다른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건 입만 아프게 할 뿐이다. 지금 내가 기억해야 하는 건 동의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순응했던 그 모든 일들이 나중에 뒤틀린 방식으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사랑, 불안, 위압, 사회적 관습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것을 이해할만한 어떤 지식도 태도도 갖지 못했기에 직시하기보다 회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내 입장과 의견에 대해 들어주지 않았던 아빠 자리에 직장 상사나 내가 속한 집단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차지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눈물부터 흘리고 불합리함을 말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아빠 앞에서 하던 것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사랑해서 네가 다칠까 봐 겁이 난다고, 네 말이 맞지만 그냥 아빠 말을 따라주면 안 되냐고 했다면 좋았겠다. 아빠 마음 그대로 보여줬더라면 나는 떡볶이 같은 거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거다. 그랬다면 긴 시간 우리가 진심을 알지 못해 멀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고 나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거다. 이제는 당시에는 보지 못한 아빠의 마음을 따라가고 싶었다.     


초밥이의 빼빼로부터 나의 떡볶이까지 펼쳐놓고 내 마음을 보여주자고 마음먹었지만, 일요일 늦잠을 자는 아이를 깨울 배짱이 내게는 없었다. 녀석은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데 나만 지금 안달하는거지, 하면서 과감하게밥을 하지 않고 집을 나갔다.


사랑과 복종밖에 모르는 보미와 청암산 등반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초밥이가 설거지를 했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려놓았다. 반성한다 이거지. 가스레인지까지 (처음으로) 닦아놓을 걸 보고 내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으면서 밥을 했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장을 본 걸로 죽순 들깨 볶음, 얼갈이배추 무침, 된장찌개, 목살구이를 만들었다. 하얀 음료 두 잔을 따라서 초밥이와 건배를 했다.      

잘 먹고 힘을 비축해야 한다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자두 먹고 싶다.”했는데 녀석이 못 들은 척하길래, “아, 맞다. 나 어제 화났었지?”하니까 초밥이가 자두를 썰어서 대령했다.      

하얀 음료 한잔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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