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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이 말하는 습작

제 9회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세

by 김준정

시작은 머리카락이었다. 이놈의 머리카락들이 어째서 제자리에 붙어있지 않고 집단 무단이탈을 하는지 원인을 찾아봤다. 당연히 첫 번째 원인은 노화다. 나는 현재 43세를 기점으로 찾아온 노화라는 급류에 속수무책으로 휩씁려가고 있는 중인데 동동브라더맘도 43세부터 노화의 가속도가 붙은 기분이라고 했다. 어쩌면 43이란 숫자에 과학적인 근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로는 매일 글을 쓴다고 머리를 쥐어짜는 게 머리카락들이 가출을 결심하게 한 게 아닌가 추측해봤다. 과외하느라 수학 문제를 푸는 건 어서 나가라고 부채질하는 효과일 테고 말이다.


이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머리카락도 간수하지 못하면서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하는 자문이 들었다. 글 한편 쓰고 고치는데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이 가성비 떨어지는 이 일을 나는 왜 하는 거냐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생각, 질문이 들어간 글을 쓰고 싶다. 대화가 잘 되는 사람과 마주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나조차 몰랐던 것까지 끌어올려질 수 있는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쓴다.


어설픈 사유가 주제넘고 우스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것’을 쓰고 싶다. 지금의 나를 기록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내 글을 읽고 과거와 달라진 나를 발견하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심각하기만 한 글은 나도 싫지만 읽은 후에 남는 게 없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그냥 웃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그냥 웃기기도 힘들지만) 웃긴데 뭔가 남는 게 좋다. 슬픈데 남는 게 좋다. 그런 글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점점 진지하게 읽게 만든다. 천천히 읽게 만든다. 집중할 수 있을 때 읽자고 기다리게 한다.


웃기기만 한 글은 매번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독자들은 이미 작가의 유머 코드를 아는 데다 기대치마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한순간 웃고 즐기는 글을 좋아한 독자는 새로운 글을 찾아 바로 등을 돌려버리기 쉽다.

독자로서 내가 좋아하는 글은 웃음 속에 사색이 숨겨져 있는 글이다. 유머 코드는 조금은 자학적인 게 좋고 구질함이 가미된다면 금상첨화다. 자기의 궁상스러움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폼나 보이는지 모른다. 별 게 다 멋있다 싶지만 내 눈에는 그렇다.


부끄러울 수 있는 부분을 드러내는 작가에게는 친근감을 넘어 존경심이 생긴다. 하소연에 그치지 않고 고통 너머의 숨겨져 있는 의미를 말하는 글을 읽으면 자신이 발견한 소중한 것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궁리를 하다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궁상 스러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마침 상황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학원도 폐업하고 돈도 없는 게 이건 뭐 온 우주가 나를 작가로 만들기 위해 밀어주는 기분이었다.


‘제9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가 시작되었다. 나는 앞에 두 번을 도전했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 공고를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또 안 될 텐데 뭐하러 하나였다. 애써 써온 글을 한 주제로 모으고 고쳐서 공모했지만 기대가 실망이 되는 일을 또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출간 작가는 물론이고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작가들, 숨겨진 고수들이 가득한 브런치에서 내 글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에 또 얼마나 많은 머리카락을 희생시켜야 하나, 소중한 머리카락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해보기로 했다. 머리카락 말고도 도전하지 않을 타당한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하기로 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내가 쓴 글을 들여다보고 한숨짓고 고심하다 창을 끄고 켜기를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글을 어떤 식으로든 묶지 않으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는 배지영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계속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독립출판이든 브런치 공모전이든 투고든 뭐든 다 할 수 있는 거였다. 한 가지만 너무 큰 의미를 두면 그 이후에 이어서 글을 쓰기 어려울 수 (잘은 모르지만) 있을 것 같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궁상스러워지자고 마음먹은 판국에 못할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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