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요가 02
요가 수업 시간 1시. 12시 52분에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는데 휴대폰이 없었다. 현관 출입구에 차를 세우고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왔고, 동사무소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는 매트를 깜빡 잊고 왔다는 걸 알았다. 다시 차를 집으로 돌려야 했다. (건망증 증세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죠?) 코 앞에 있는 동사무소를 가는데 난관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이삼례, 이단임, 강순자, 박명자.”
수업시간 7분이 지났지만 아직 출석을 부르는 중이었다. 출석에 10분을 투자하는 선생님이다. 빈자리를 찾는데 한 아저씨가 시야에 들어왔다. 둘째 줄 왼쪽 끝자리. 전체 일곱 줄 중 두 번째면 경쟁이 치열할 법도 한데, 아저씨의 앞과 옆은 휑하게 비어있었다. 아저씨는 외로운 섬처럼 있었다.
나는 아저씨 앞에 매트를 깔았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저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 30여 명 사이에 있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흡사 여탕에 잘못 들어온 기분? 여성 회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동작을 할 때 의식이 되어서 가까이 앉지 않았겠지만, 아저씨 입장에서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변태취급받는 기분일 것 같기도 했다.
우쿨렐레, 뜨개질, 영어회화 같은 동사무소의 많은 수업 중 힐링요가를 신청했을 때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선을 견뎌내겠다는 나름의 각오를 하지 않았을까. 아저씨가 그 자리에 오기까지 필요했던 나와 비교되지 않는 난관을 상상했다. 아저씨는 꿋꿋하게 쟁기자세를 해내고 있었다.
오늘도 선생님은 꾸밈없는 친절한 말로 여러 가지 동작을 나열했고, 나는 선생님의 리듬에 올라타 동작을 맞춰갔다. 1시간 30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선생님이 감정의 동요가 크거나 불성실하거나 조급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운을 비를 맞듯 고스란히 받게 된다. 운 좋게 친절하고 성실한 선생님을 만나 석 달 동안 기분 좋게 요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행운이라 할 만하다.
오늘도 굴 속 같은 잠을 잤고, 2시 25분에 마쳤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를 하자 손뼉을 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다.
요가를 마치고 라떼맛집에서 아이스라떼를 샀다. 라떼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로버츠가 갔던 구루가 있는 인도 기도원도 아니고, 호텔 요가테라피도 아닌, 한 달 수업료 11,000원에 집에서 580m 떨어진 동사무소에서 하는 요가가 좋다. 별 일없이 동사무소 요가에서 몸을 늘리고 라떼를 마실 수 있는 그 정도의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이어지기를.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평일 오후 1시에 요가를 하려면 어디에 매여있지 않은 시간적 여유와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경제적 자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거기다 어느 정도 긴장이 있는 일상이어야 매트를 끼고 580m 거리에 있는 동사무소에 갈 수 있다.
4년 전, 산악인의 성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갔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8시간을 날아와서 낯선 나라의 산동네를 걷고 있을까. 군산의 구불길을 놔두고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아침 일찍 내 집에서 밥 해 먹고 나가서 내 가까이 있는 곳부터 내 발로 꼭꼭 걸어 나가고 싶은 사람.
낯선 장소로 떠나 나를 발견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10시간 등산을 하며 내 안의 깊은 곳을 만나는 여행이 좋다. 내 몸의 한계를 마주하고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지점에 닿으면 알 수 없는 기쁨이 차오른다. 내가 모르는 감정이 있다는 건 내게 많은 것이 남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앞에 힘든 몇 시간을 견디면 새로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기대가 된다. 산을 오를 때마다 내가 달라지기에 도착하는 곳은 매번 다르다.
끝나고 나면 내 안에 찌꺼기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새롭게 리셋되는 기분으로 내일을 시작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의 여행이다. 외부 환경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나를 바꾸어서 같은 일상이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면 호기심과 의욕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연휴 날짜가 줄어드는 것과 일요일 오전부터 월요일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던 내가 호텔이나 해외 유명 관광지에 간들 무슨 소용인가. 하루 4시간 하는 과외로 해외여행과 호텔 경비를 낼 수는 없지만, 평일을 휴일처럼 휴일을 평일처럼 보낼 수 있고, 그게 나한테 맞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온 것 같지만, 동사무소 요가, 완전 내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