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보며 지금을 사랑하다’는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의 에필로그 제목이다. 나는 종종 그 제목을 곱씹을 때가 있다. 박혜윤작가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차면 언젠가 그 마음이 사라질 끝을 떠올리고 얼른 비운다는 거다. 그래서 빵 만들기에 빠졌을 때 제빵 도구를 사지 않을 수 있었고, 부동산은 투자수익보다 팔 때 매매가 잘 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욕구 자체가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욕구가 어떤 선을 넘어서도 계속됐을 때가 힘들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다. 시험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힘들었다. 빵 굽기도 새벽부터 밀가루를 반죽하고 밤낮으로 반죽을 주시하며 만드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최고의 빵을 욕망할 때 힘들다.”
나는 이 글을 어떤 일을 하는 것과 결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걸로 이해했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결과를 기대하게 된다. 결과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지만, 실패하면 오직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자책하게 된다. 그 일을 하느라 내가 포기한 것들 때문에 억울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정작 나를 괴롭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이 억울한 마음일지 모른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도 그때의 출제경향과 경쟁률에 따라 떨어질 수 있다. 유망할 거라고 시작한 사업이 코로나 같은 역병으로 좌절될 수 있다. 그게 아니어도 성공과 실패는 각각 50프로의 확률인데, 시험에 떨어지지 않고 사업에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가정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분한 마음이 나를 병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시험공부를 하는 중에도 오늘의 한 끼를 소중하게 여기고 건강한 것을 먹고, 사업이 중요하지만 아이의 표정을 관찰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결과에도 내가 챙기지 못한 끼니와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억울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끝을 생각하는 일은 나를 보호하는 일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대단한 일도 그 일이 끝난 후에 나는 계속 살아야 하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삶은 한 가지로 충족될 수 없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실패일 수 있다. 한 가지에 몰두하느라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보면 실패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성공은 실패의 무덤일지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쓰지 않은 박혜윤 작가의 책은 특이하다. 밀도가 높고 다시 들춰보는 일이 잦다.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 없이 우물에 물이 차오르듯 넘친 생각을 옮겨서일까. 그저 내키는 대로 심연까지 내려가 길어 올린 사유여서일까. 이와 비슷한 책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재미있는데 유머 때문이 아니라 궁금함과 기대로 내 안을 파고들 때의 재미였다. 중간중간 멈춰서 내 생각과 견주고, 내 생각을 깨워서 같이 걸어가는 기분. 다 읽은 후에는 자책과 조바심은 저 멀리 던져두고, 느긋하지만 진지하게 살고 싶은 의욕이 일었다.
책에서 직업이 없는 저자에게 배운 것이 아깝지 않냐고, 사회에 기여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자기만의 오두막에서 발견한 삶의 한 조각을 사람들과 나누는 도움도 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는 건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산다는, 지금을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