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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08. 2023

양심에서 솟아난 성수

토요일 아침, 나는 보미와 은파호수 공원에 나왔다. 절정에 달한 벚꽃이 파란 하늘과 호수 사이에 햇빛을 받아 화사한 테두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아빠가 뜬 걸 보자 싸한 기분이 들면서 좋은 이야기가 안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건 오랜 경험이 축적된 경험칙이라 할 수 있다.      


“엄마가 니 입안이 헐었다카던데, 그기 다 면역이 떨어져가 그런 기라. 인자 니도 나이가 들어가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 돼. 텔레비전에 전부 건강 얘기밖에 안 나오는데 니는 텔레비전이 없으이 모르잖아.”     


70대 아버지가 40대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을 나는 한참을 듣다가 말했다.    

 

“요새 시청자 중에 노인들이 많아서 건강 프로그램이 많은 거예요.”     


귀가 어두운 아빠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마 있어봐라, 니한테 알려줄라고 어데 적어놨는데.” 

부스럭부스럭 찾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래, 폴리페놀하고 산양유를 먹으라 카드라.”      


나는 빠른 전개를 위해 헛된 반항은 하지 않고 당장 폴리페놀과 산양유를 주문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아빠가 한마디 덧붙였다.     


“주서방하고도 좋은 방향으로 좀 생각해 보고.”     


마무리 타임, 발끝으로 쓱 밀어 넣는 기술에 나는 엉겁결에 “무슨 그런 얘기를 해요”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애꿎은 인물을 소환해서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나의 아침을 망치는지.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내가 보호자도 없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건강 얘기한 거죠? 그런데요, 아빠, 노후를 책임져달라고 재결합하는 건 그 사람 이용하는 거잖아요. 그건 서로 비참해지는 길이예요. 혼자 늙어가는 불안 때문에 재혼해서 더 큰 문제를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요, 건강이든 노후든 내가 감당하면서 살 거예요.”    

 

눈물 때문에 눈앞이 뿌옇게 흐렸지만, 또박또박 말을 마쳤다. 아빠는 그래,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벚꽃 구경도 다했다. 전화를 끊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서방과 헤어지기 전에도 이 길을 걸으며 많이도 울었다. 호수 맛이 짜다면 다 내 눈물 때문 일거다. 하지만 오늘 이 눈물은 달랐다. 이전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내 몫의 어려움을 감당하겠다는 양심에서 솟아난 성수.     


문득 나는 이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아빠에게 나 스스로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것 같아서, 이제야 하나의 존재로 우뚝 선 것 같았고,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사실 아빠는 부모로서 딸에게 어떤 배우자를 만나라던가 전남편과 재결합하라던가 뭐든 말할 수 있다. 그걸 따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다. 이전에 나는 무지하고, 양심이 없어서, 아빠에게 받을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따랐던 것뿐이다. 받을 건 다 받고 아빠를 원망했고, 내 책임을 떠넘겼다.     


아빠에게는 아빠가 보는 건강프로그램처럼 자기가 믿는 세상이 있다. 아빠의 ‘천기누설’ 같은 세상. 내 건 따로 있고, 가끔 아빠에게 놀러 간다면 관광지에서 본 걸로 화가 나지 않는 것처럼, 아빠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빠한테 미안하다. 내가 구내염이 걸렸다는 말에 약이름을 메모해서 알려주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하고, 때로는 든든하지만, 내가 보호자가 있어야 할 미숙하고 약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에 더 이상 갇히고 싶지 않다. 그건 나를 비겁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애달픈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여있지 않고 흘러서 바다로 가고 싶다. 큰 물줄기가 되어 넓은 바다로. 그곳에서 나는 내가 오고 싶은 곳이 여기였다고, 중간에 멈출뻔했지만 그래서 아빠가 위태롭게 바라봤지만 결국에 왔다고, 그리고 아빠의 사랑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싶다.     


(주서방은 배우 주지훈의 성에서 따왔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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