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Jul 26. 2023

시리도록 다정한 말

밤 11시가 다 되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내 어딘 줄 아나? 영덕이야. 큰 이모가 복날인데 뭐 하냐고 해가 그냥 있다고 했더니 나를 태우러 와가 영덕에 데리고 와뿌는 거 있째. 너거 아빠한테는 이모가 전화해가 오늘 집에 안 들어간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잘했어요. 그런 날도 있어야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있잖아. ‘저 하늘에 별을 찾아’ 부르민서 아인나 춤을 췄다? 아이고 얼매나 웃기는지.”     


그때 큰 이모가 전화를 받았다.     

“준정아, 이모 잘했째? 너거 엄마 이래 안하만 놀러 갈 줄도 몰라가 납치해뿟다.”

“잘했어요. 나는 우리 엄마한테 이모들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모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모도 우리 준정이 많이 사랑하는데 니 전화번호가 없드라, 너거 엄마한테 네 번호 여라, 알알째?”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내 번호를 넣으라니. 큭큭.

아침에 일어나 보니 큰 이모가 나한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막내이모와 엄마가 속옷차림으로 안고 있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이모가 있다. 7남매 중 1,2,3,4 순번인데 엄마가 2번이다. 큰 이모, 작은 이모, 막내이모를 보면 3년 후 엄마, 젊은 엄마, 더 젊은 엄마를 보는 기분이다. 나이만 같다면 쌍둥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닮은 외모 때문이다.          


이모들의 성격은 각자 세세한 면면은 다르지만, 솔직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흥이 넘치고 감정표현을 아끼는 법이 없는 이모들은 만났다 하면 웃다가 싸우고 그러다 부둥켜안고 울어서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그것이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느라 바빠서 풀지 못한 감정을 꺼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내 속이 다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이모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건 동명이모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내가 동명 이모라고 불렀던 3번 이모가 췌장암을 이기지 못하고 67세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남은 이모 둘과 엄마는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에 장례식 3일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이렇게 십 년을 더 사는 게 무슨 소용이야?”          


멀게만 보이는 죽음이 갑자기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혼란을 나는 막내이모가 하는 말에서 읽을 수 있었다.            


오래전 오빠의 결혼식장에서다. 나는 아직 돌이 되지 않은 딸을 안고 있었는데, 이모들이 오더니 “아를 너거 신랑한테 안으라 캐라”라고 했다. 그때는 내가 힘들어 보였나 보다 했는데, 이제 돌이켜보면 이모들은 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참지 말고 남편에게 힘들다고 하라고, 어쩌면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했는지 모른다. 내가 이모들을 통해 미래를 상상했듯 이모들은 나에게서 과거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살아간다는 건 죽음을 연습해 가는 일이 아닐까. 이모는 나에게서 청춘의 소멸을 보고 지나간 조바심과 애달픈 감정을 만났을 것이다. 사느라 보지 못했던 것을 헤아려보는 것만이 죽음을 배우는 길이 아닐까.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풍성해진다면, 마침내 삶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내가 연습한 무수한 죽음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임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아득한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짐작해 본다.    

     

죽음을 주제로 한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 <그 집에는>는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남편을 잃은 딸과 그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 남편처럼 의지한 아들을 허망하게 보낸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왜 죽었을까. 왜 나만 남겨놓고 떠났을까. 왜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 사람은 어느 날 17년을 함께 산 반려견 순돌이가 죽자 “고마웠다, 잘 가라”라고 말한다.      


순돌이의 죽음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순돌이를 보내주듯 그렇게 흘려보내야 한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함께여서 고마웠다고 하는 것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7살이었을 때, 막내 이모 집에 일주일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이모가 외출을 할 때 나도 함께 따라 나갔는데, 한 번은 이모가 약국에 들어가려다가 나한테 물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고개를 푹 숙인 내 얼굴을 보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물어봐주는 이모가 보인다. 내가 머뭇거리자 응? 하면서 내 표정을 살피던 이모. 나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 다정한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머뭇거렸다. 잠시 후 내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려있었고 다른 한 손은 이모의 손을 잡고 길을 가던 낯선 순간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막내이모집에 있는 동안, 막내이모는 만화그림이 그려진 그릇을 사주고 뭘 먹고 싶냐고 물었지만 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기 때문에 이모는 괜히 데리고 와서 나를 힘들게 했다고 기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집을 떠난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이모가 나를 대했던 느낌은 지금까지 남았다. 내 기분이 어떤지 살피고 내 얼굴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려고 했던, 낯설지만 다정했던 기억. 이후 오랫동안 나는 “우리 막내 이모는 진짜 좋아. 내가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스크림을 사줬어”라는 자랑을 두고두고 했으니까.      


"아이스크림 먹을래?" 

나에게는 시리도록 다정한 말이다.     

           

극단 사람세상 <그 집에는>


작가의 이전글 부추에다 사과를 넣으니, 이것도 반찬이 되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