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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23. 2024

엄마 이제 울지 마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 영화 <장기자랑>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은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이 어쩌다 연극을 하게 되고, 어느새 연기의 재미에 푹 빠지는 이야기다. <장기자랑>은 어머니들이 공연하는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데, 아이들이 수학여행에서 하려던 장기자랑을 어머니들이 대신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극이다.     


그렇게 연습한 연극을 단원고에서 공연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것도 4월 16일에. 연극을 연출한 김태현 감독은 어머니들에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당찼던 어머니들도 그것만은 자신 없어했다.   

   

“‘왜 내 아들은 저기에 없을까’라고 생각이 들면 감당이 안될 것 같아요.”     


김명임배우가(수인 엄마) 말했다. 내 아이와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는 게 맞는 건지 보는 나도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공연 장소는 아이의 명예졸업식을 한 강당이 아닌가.      


당시 졸업식 장면이 나왔다. 아이를 한 명 한 명 호명하면 그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빈 무대에는 주인 없는 졸업장과 꽃다발만 있었다. 이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구나. 당사자가 없는 졸업식 같은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구나. 아이의 친구가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들은 주인 없는 졸업식에 있는 기분이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은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다. 자기 분량의 연기를 마친 뒤에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했지만, 어머니들은 무대에서만큼은 능청스러울 만큼 잘 해냈다. 공연이 끝나고 재학생들이 무대로 나가서 어머니들을 안아주었다. 서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건드려졌다. 천사가 된 아이들이 돌아와서 엄마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엄마, 나 괜찮아, 엄마 이제 울지 마하면서. 


초밥이와 따로 살기로 하고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도시로 아이를 보내는데 가슴이 이리 허한데,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낸 분들을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미안해요. 10년 전 멈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분들을 생각하면 이 부채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엄마는 나 얼마나 사랑해?”
“여기 손톱 보이지?”

나는 손바닥에서 검지 위로 쬐끔 올라온 손톱을 가리켰다.

“이걸 뺀 세상 전부!”     


순간 초밥이 얼굴이 환해지면서 세상 전부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다. 나를 세상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아이. 우리만 믿는 세상 속에서 우리만의 약속, 확인을 했던 시간. 자식은 부모에게 이런 귀한 선물을 해준 존재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기억은 더욱 또렷해진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나는 단원고 재학생들이 어머니들을 안아주는 장면을 연출한 의도를 질문했다. 이소현 감독은 쑥스러워하면서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영혼의 위로를 받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삶을 채 피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애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피어보지 못한 꿈, 피어보지 못한 사랑,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잊지 못하는 거니까.      


한 가지 질문을 더했다.     


“만약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면 좋을까요?”     


“극 중 예진 어머니가 연극을 보고 예진이를 한 번이라도 찾아봐주면 좋겠다고 한 것처럼, 예진이를 찾아봤다고, 영화 잘 봤다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나면 후회하면서도 지인들에게 남편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 왔다. 그러다 어떤 분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이 일을 이렇게 보고 있구나, 과거의 나는 이걸 못 봤구나, 이야기를 하면서 자각이 되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이전에 느끼지 못한 홀가분함을 느꼈고, 이런 예감이 들었다.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겠다.  


내가 이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내가 몰랐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지만, 하다 보면 미련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데 치중하게 되었다. 그러니 하고 나면 구질구질한 기분이 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이 연극을 통해 이런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어머니들, 영화 잘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감독과의 대화- 이소현 감독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 영화 <장기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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