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

by 김준정

3년 전, 나는 한 출판사와 처음으로 계약을 했지만, 끝내 출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두 달 전, 새로 쓴 원고로 다른 출판사와 다시 계약을 했다. 이번에는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첫 계약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책은 언제 나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나는 출판사와 의논한 방향에 맞춰서 원고를 고치는 중이었지만,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힘들게 쓰고 나면 작위적이거나 교훈적인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인사를 들으면 기쁘기보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출간 일정은 계속 미뤄졌고, 결국 계약은 파기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두 번째 계약을 하고 원고를 다듬으면서, 나는 3년 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글에 집중이 되는 걸 느꼈다. 편집자의 조언이 부담이 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도와주었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거나 더 확장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정확히 짚어줄 때면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3년 전 책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처음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편집자의 말을 평가처럼 받아들이고, 미흡한 부분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편집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3년 전에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면, 지금은 책이 안 나와도 괜찮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다. 체념이 아니라 보루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책이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쓰고 싶은 마음이라는 보루를 지키는 일일지 모른다. 첫 계약이 불발되었지만, 쓰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두 번째 계약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첫 계약을 했을 때도,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도, 그리고 두 번째 계약을 했을 때도 나는 문우들과 함께 한길문고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왔다. 크게 낙심하지 하고 계속 쓸 수 있었던 건,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나눈 온기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고 싶은 마음'은 식지 않고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또 하나, 쓰고 싶은 마음을 붙들어 준 건 브런치였다. 5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 글을 발행한 지 일주일만 지나도 마음이 바빠지는 걸 보면 말이다. 어디에 가든, 무얼 하든 이 소재로 연재를 해볼까? 이런 기획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브런치는 이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실수로 같은 글을 또 발행한 적이 있었다. (‘기껏 데리러 갔더니 구박하는 딸’) 그런데도 발행 직후 ‘좋아요’를 눌러준 분들이 있었다. 그 13분 중에는 같은 글이라는 걸 알고도 눌러준 분들도 있었을 거다. 나는 그것이 화답처럼 느껴졌다. 내 글을 평가가 아니라, 친구나 지인이 하는 이야기처럼 잘 듣고 있다고 하는 신호 같았다.


오랫동안 글을 읽어온 브런치 작가들의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에게 크게 다가온다. 새로운 자극이 되어서 글감을 찾게 해준다. 한편 새 글을 올리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는 작가에 대해서는 신상에 문제가 생겼는지, 내게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글쓰기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매일 안부를 묻듯 그 작가의 홈에 들어가서 글을 발행했는지 확인한다. 글이 없으면 댓글에 뭐라고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윤아람 작가님, 몸이 아프신 건 아니죠? 제발 아무 글이나 올려주세요."

하고 말이다.



*


12월 둘째 주 토요일, 한길문고에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제1회 3000자 소설 수필 공모전 수상식과 작은 서점 지원사업으로 출간한 <한길통신: 모두의 군산 이야기> 출판기념회가 함께 열린 날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한길문고에서 올해 처음 마련한 3000자 소설 수필 공모전의 수상자는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부녀가 나란히 수상해 많은 이들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다. 아버지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한길문고는 집과 가까워서 아이들과 자주 오는 놀이터 같은 곳인데, 상까지 받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그의 초등학생 딸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꿈이 작가인데요, 앞으로 훌륭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한 소녀가 꺼낸 그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상상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60103_085527673.jpg 10명의 수상자의 작품이 수록된 책

이날 함께 출간기념회를 연 <한길통신: 모두의 군산 이야기>는 군산시민들이 추억과 사연이 깃든 장소를 군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책이다. 2025년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활동한 최영건 소설가와 군산에서 글을 쓰는 작가 17명이 참여했고, 총 21편의 글이 실렸다. 나도 그중 한 꼭지를 썼다.


책 작업을 함께한 사람들이 '군산기억상'이라는 상을 받기 위해 한 명씩 단상 앞으로 나왔다.


"한동안 글을 못쓰고 있었는데, 오늘을 계기로 다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합가를 앞두고 있는데, 시어머니와의 생활을 써봐야겠어요."

"제 글이 책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에요. 새로운 길이 열린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의 소감을 듣는 동안, 그날 내린 비처럼 마음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어느 날 씨앗 같은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건 아닌 것 같다.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부족한 일이 있다는 걸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마음에 생긴 씨앗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온기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나는 게 아닐까.


KakaoTalk_20260103_085540284.jpg 군산 시민이 소개하는 군산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