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적 삶의 태도'라는 덩어리
메모를 하기 시작한 건 글을 쓴 지 2년이 지나고부터였다. 쓰려고 하는 글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표현이 생각나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메모한 양이 어느 정도 차면 글을 쓴다기보다 글감을 나열한다고 생각하고 자판을 쳤다. 구성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다 꺼내놓자고 말이다. 대개는 건조한 문장 나열에 그치는 날이 많았지만, 어떤 날은 날은 촉촉한 한 편의 글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쓰는 글이 나아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부담은 줄어갔다.
매일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부스러기를 모아 뭔가를 만드는 기분이 든다. 하나하나의 부스러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한 편의 글에서는 의미심장한 것이 될 때 묘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일어난 일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단편적인 일들을 구성하는 건 나고, 나를 통과하고 나서야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닐까’
같은 사건도 어떤 글의 어느 부분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이 되는 걸 보면서,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나는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결정하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는 군산 한길문고에 김호연 작가가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사는 도시에 온다는데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자연스럽게 질문거리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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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당일, 질문 시간이 되자 나는 첫 번째로 손을 들었다. (나는 강연을 들으면 올웨이즈 처음으로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 작가님이 인터뷰를 했던 유튜브를 봤는데요. 진행자가 “작가의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작가님의 했던 말을 정리하니까, 김호연작가님이 “아니요, 작가적 삶의 태도입니다”라고 정정하셨어요. 작가의 태도와 작가적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가요?
김호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게...
나: <혼자 일해요>라는 유튜브였어요.
김호연: 아, 최하나 작가 채널이었죠. 구체적인 상황이 떠오르지 않지만 아마 이런 뜻으로 한 말이었을 거예요. 제가 <불편한 편의점>을 구상한 건 선배가 편의점을 차린 걸 보고서였어요. 그 날치 원고를 쓰고, 저녁에 선배한테 놀러 갔다가 선배가 손님을 응대하는 걸 보고 ‘이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은 불편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노숙자 독고까지 구상한 건 아니지만, 편의점에 불편한 직원과 손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작가는 퇴근이 없어요. 삶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일을 계속하는데 작가적 삶의 태도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어요.
김호연 작가의 답을 며칠 곱씹어본 뒤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글 쓰는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글 쓰기를 삶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심혈을 기울여서 쓴 소설이 공모전에서 물을 먹고, 시나리오는 팔리지 않거나 영화화되지 않고, 출판 한 책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점 서가에 꽂여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일들 속에서 그는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깨달은 게 아닐까. 순간순간의 결과에 따라 기뻐하고 좌절하다 보면 꾸준히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 오래 고민한 끝에 답을 낸 게 아닐까.
<불편한 편의점>은 몇 개의 아이디어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소재를 모으는 게 생활이 된 작가가 힘을 빼고 쓴 소설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보낸 시간과 태도가 녹아들어 갔기 때문에 그처럼 일상적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가 된 것이다.
공모전에 당선되고, 출판하는 것 하나는 삶이 아니다. 공모전 이후에도 출판한 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한 가지의 목표보다, 메모하는 습관과 글쓰기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 같은, 글쓰기로 생긴 부스러기들이 김호연 작가가 말한 ‘작가적 삶의 태도’라는 덩어리가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