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생긴 버릇

글쓰기의 부스러기

by 김준정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글은 언제나 막막하게 다가온다. 대부분 디스토피아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책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에게 3대 1로 패한 후, 바둑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치밀한 취재를 통해 보여준다. 읽는 동안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와 상황에 대입해 볼 수 있어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거다’하는 예견하는 글보다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장강명 작가가 본 <먼저 온 미래>는 바둑계다. 그는 30여 명의 전현직 프로기사와 바둑 전문가 6명의 인터뷰를 한 내용을 책에 담았다. 알파고 이전에 바둑은 스포츠이기보다 인생에 비유할 만큼 관조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면, 이후에는 그런 일면이 확연히 줄었다. 대부분 기사들은 AI로 바둑을 배우고, AI가 제안하는 승률이 높은 초반 포석을 외워서 두는 것이 공식이 되었다. 대국 중계에서는 AI가 예측하는 승률을 표시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기사들마다의 개성이 사라지고, 기사의 전략을 추측하며 관전하는 재미가 줄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편 바둑계에 민주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전에는 유명한 프로기사의 제자가 되거나 유명한 기원에 들어가야 기량을 높일 수 있다면, 이제는 누구나 집에서 AI로 바둑을 배울 수 있어서 기회가 평등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입장을 보면서 나는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질문이 단순하고 순진한 것임을 알았다. AI대 인간이 아닌, 인간대 인간의 문제로 인식하고 우리가 무엇을 합의하고 결정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장강명 작가는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지점을 제시한다.


“‘위대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소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중략) 아무리 큰 감동을 주며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글이라 하더라도 매일 새로운 작품이 5분에 한 편씩 나오다면, 사람들은 그런 작품들의 존재를 특별하지 않게 여기지 않을까?”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생산한 소설이나 그림, 음악 같은 예술 작품에 우리는 감동할 수 있을까. 예술을 감상하는 목적에 부합하려면 우리는 AI가 만든 작업물에 어떤 규제를 해야 할까. 장강명 작가는 ‘위대함’ 같은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썼다.



*


AI가 바꾸는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과외하는 학생과의 일이 떠올랐다. 하루는 고등학교 2학년인 하진이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를 가는 일이 무의미해서 자퇴하고 싶어요. 친구들과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가까운 친구가 없어요. 순간순간 외롭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울하고 무기력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뭐라고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서너 달 전 하진이가 새 휴대폰을 사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 몇 군데 면접을 보고 프랜차이즈 버거가게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첫 출근을 했던 얘기를 할 때 하진이는 전에 없이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나한테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의 기분을 표현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있잖아요. 전화로 문의하고, 긴장해서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일을 배울 때, 그때 어땠어요?”

“재미있었어요. 나중에는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의욕이 생기는데, 최근에는 학교와 집만 오갔던 거 아니에요? 뭔가 시도하는 일이 있었어요?”


하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날은 그 정도 이야기를 하고 지나갔다.

얼마 후 하진이는 자기가 만들었다며 초콜릿쿠키를 건넸다.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따뜻한 쿠키를 받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약간 감동을 받았다.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힘든 걸음을 내딛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마침 간식이 필요한 타임이었다면서 커피를 내려와서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진이는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한테도 쿠키를 선물로 주었는데, 다들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하진이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면 내가 기대에 한 눈으로 “오늘도?”라고 해서 하진이가 아니라며 당황해하는 후유증이 생겼다.


한동안 잘 지내는 것 같던 하진이가 다른 이야기를 꺼낸 건 얼마 전이었다.

“부모님이 제빵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취미로 하고 직업은 기계 쪽으로 하래요.”


하진이는 아버지가 기계공학과를 가라고 하는데, 자기는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하진이는 이과 계열 공부보다 실제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빵은 자영업을 하거나 개인사업자에게 고용되는 형태니까 불안하신 거죠. 그럼 간호학과를 지원해 보면 어때요?”

최근에 응급실에 갔더니 거의 남자 간호사가 있었다. 다른 업종에 비해 간호학과가 취업이 용이할 거라 짐작되었고, 기계공학이 아니어도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된다면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자격증을 하나 갖고 있다는 건 중요해요. 의료지식이 있으면 사는데 유용하고요.”


제빵은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아도 실무경력이 중요하니까 천천히 알아보고 준비해도 될 거라고 덧붙였다.

하진이가 부모님에게 간호학과를 가겠다고 말했더니, 부모님이 무척 반겼다고 했다. 부모님이 보기에도 아들이 기계공학보다 간호학과가 맞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대안을 찾아보았다는 사실에 흐뭇해했다고.


과외하는 학생 모두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내가 한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가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평소 그 학생을 관찰해서 알게 된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을 때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미처 보지 못한, 제삼자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사실이 일반적인 조언보다 효과가 있었다.

이런 나의 행동은 순전한 호의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일상적인 일도 다르게 보려고 하다 보니 대화를 할 때도 그 방식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평범한 대화에서조차 적절한 표현을 찾으라 머리를 굴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글을 쓰면서 생긴 버릇이 일로 연장된 것이다.

초콜릿 폭탄 쿠키
현실감 있는 미래를 만날 수 있는 책


이전 02화글쓰기의 부스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