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지피티로 부모의 궁합을 보는 아이

결혼식날 딱 하루 좋을 사람

by 김준정

“소개팅이 들어왔는데 안 한다고 했어요.”


“왜 그랬어요?”


“그냥 남자 만나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요.”


“요즘 같은 분위기였다면 나도 결혼을 안했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만 해도 비혼이라는 선택지는 없는 줄 알았어요.”


얼마 전 운동을 가르치는 트레이너와 나눈 대화다. 트레이너는 삼십 대 중반 여성으로 (아직까지는) 비혼이다. 그분을 보면 나는 결혼은 안 해도 아이를 낳아보는 경험은 소중하다는, 명백히 오지랖인 말을 하고 싶다. 결혼 제도와 나란 사람에 대해 제대로 한번 생각해보지 않고 남들 따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조언을 하려는 건지. 그런 점에서 트레이너는 나보다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어디 취직했어?”

“결혼할 사람 있어?”


예전에 친척 어른들이나 직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침범당한 기분이 들었고 내가 미숙한 존재 같았다. 내가 중년이 되고 보니 그 어른들은 자기들도 듣고 유쾌하지 못했던 질문을 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시험을 치고 난 사람이 시험장을 들어가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을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고 싶었을까? 그저 관심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 오래되고 익숙한 방식을 따라 했을 거다.


출산은 시기가 정해져 있는 일이니 잘 생각해 봐라, 나중에 후회할까 봐 그런다라고 하고 싶은 지금의 내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다. 나의 경험에 한정했을 때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 특별할 뿐, 그녀에게는 다른 경험으로 내가 모르는 걸 알 기회가 있을 거다.



*


초밥이가 아빠를 만나러 간 주말, 나는 덕유산으로 등산을 갔다. 오후 4시쯤 산을 내려와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초밥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옴마 나 아파... 아빠가 보드 타러 가자고 해서 무주 갔는데 나 진짜 딱 한 번밖에 안 탔는데 내려오자마다 토 왕왕하고 너무 울렁거렸어. 원래 군산 바로 갈라고 했는데 아빠가 평소에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고 체력이 약해져서 그렇다고 영양제 맞고 쉬라고 해서 아빠집에 다시 왔어. 내일 갈 거 같애.”


“많이 아파? 지금은 어때? 내일 일찍 데리러 갈게.”


“진짜? 힝...ㅠㅠㅠ고마워.”


다음날 아침 8시, 초밥이를 데리러 갔다. 초밥이가 전남편이 최근에 이사 간 집 주소를 카톡으로 보내주어서 나는 그걸 네비에 찍고 갔다.


초밥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초밥이가 그러는 거다.


“아빠집 되게 좋아. 엄마 보여주려고 사진 찍었는데 볼래?”


“그걸 나한테 왜 보여주고 싶은 건데. 장난치는 거 보니까 다 나았나 보네. 여기 내려줄 테니까 걸어와라.”


“웃긴 얘기 해줄까? 아빠가 쳇지피티로 엄마하고 궁합 보라고 해서 해봤거든?”


“야! 그런 거 왜 하는데!”


“재밌잖아. 엄마 한번 들어봐. 쳇지피티는 웬만해서는 부정적으로 답을 안 하잖아. 그런데 불과 불이래. 엄마는 앞에서 푸르르 화를 내고 아빠는 은근히 화를 담아둔대. 진짜 맞지 않아?”


아... 그 시절에 쳇지피티가 있었으면 결혼을 안 했으려나...



*


“아빠 키는 180이 넘는다. 아빠를 닮아 오미림과 나도 크다. 좁은 집에 큰 사람 셋이 살아서 답답하다. 아빠가 커서 좋은 건...... 싱크대 맨 위에 있는 그릇을 꺼낼 때 정도인 것 같다.”


소설 <순례 주택>에 있는 문장인데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왜 키 큰 남자를 선호했는지 난생처음 의문이 생겼다. 결혼상대자는 왜 키가 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40대가 되어보니 키와 상관없이 혈색 좋은 얼굴에 다부진 몸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무엇보다 결혼할 사람이라면 생활습관이나 유머코드 같은 걸 봐야지 뭐 하러 키 같은 걸 봤을까 싶다. 반이상의 금싸라기 시장을 놓친 것 같아 새삼 분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결혼식장에서 보기 좋으라고 키를 봤던 건 아니었을까? 남들 보기에 번듯해보려고 말이다. 직업과 학벌을 중요하게 여긴 것도 소개할 때 우쭐한 기분을 느끼려고 그랬던 건 아닐까. 나와 살 사람인데 남한테 좋아 보이는 사람을 찾은 거다. 결혼식날 딱 하루 좋을 사람으로.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 아니라 결혼식날 좋은 사람을 선택했다는 뼈아픈 결과지를 앞에 두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건 아마도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알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가 탐구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어떤 사람은 나의 여러 가지 면 중에 좋은 면이 나오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사실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상상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결국 헤어지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내가 원하는 나에 대해서 알게 해 주었기 때문에 고마움이 남는다.


나는 결혼 전에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답으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쳇지피티로 이혼한 부모의 궁합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아이라니. 진부한 소설을 고쳐 쓰는 기분이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이 괜찮은 기분을 설명해주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KakaoTalk_20260126_164012365.jpg 아플 때는 어리광을 부리는 초밥이, 이날 이후 녀석을 '왕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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