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후회된 적은 없었어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나는 더듬더듬 답했다.
“후회요...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쓴 글을 읽어보면 부끄럽긴 해요. 그래도 지우지 않았어요. 어쩌다 읽어보면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구나’하고 알 수 있거든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나는 엉뚱하게도 썼던 글에 대해 답을 했다. 그렇게 상황은 지나갔지만, 며칠 동안 질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글 쓰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상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고 돌아오는 길이면 조금 허탈하고 미진한 감정이 생겼다. 그리고 만났던 사람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고 말았다.
나는 저녁시간에는 과외수업을 하기 때문에 주로 점심 약속을 잡았는데, 한참 글을 쓰다가 외출준비를 하면 흐름이 깨졌다. 머리를 감아야지, 옷을 뭘 입지, 하는 생각에 분주해졌다. 몇 번은 밥 먹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해서 나가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어김없이 후회가 따라왔다. 쓰다가 멈춘 글 때문이기도 했고, 만난 사람과 뭔가를 나눈 기분이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러다 점차 점심 약속이 줄어들었다. 내가 피했고, 먼저 제안을 하지 않아서였지만 가끔은 이러다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만큼은 잃고 싶지 않은데 하고.
지인을 만나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건 이전까지 나에게 일상의 활력을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그 일들은 시간을 뺏는 일이 돼버렸다. 안주가 맛있는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는 일, 지역 축제에 놀러 가는 일, 오일장에 가는 일 등등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읽은 임승수 작가의 <오십에 읽는 자본론>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취향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욕망도 바뀝니다. 음식 취향이 바뀌면 이전과는 다른 음식을 먹고 싶고, 옷 취향이 바뀌면 이전과 다른 옷을 입고 싶어 지지요. 마찬가지로 삶의 취향이 바뀌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지거든요.”
확실히 나는 글을 쓰면서 취향이 바뀌었다. 아니 취향을 찾았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거다. 요즘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시간을 확인하고 거실로 나가 커피분쇄기로 커피를 간다. 여과지에 커피가루를 담아 드리퍼와 포트를 들고 거실에 있는 탁자 앞에 앉는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보미를 무릎에 올려놓고 책을 한줄한줄 읽어간다. 이른 아침, 책을 읽는 시간은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김없이 다른 책이 떠오른다. 책장에서 책을 찾아서 탁자 위에 올려놓다 보면 어느새 서너 권이 쌓인다. 오늘 아침에는 <부활>을 읽다가 헨리 조지를 언급한 문장을 보고,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찾아와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꼭지를 읽었다.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대로 책을 읽는 일이 언젠가부터 놀이가 되었다. 글을 쓰고부터 글을 읽는 재미가 한층 더 깊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감정과 생각을 나누지 못했던 일은 아쉽다. 나한테 몰두하느라 그들의 현재를 공유하지 못한 것만큼은 후회가 된다. 내가 외롭지 않게 돌봐주었던 사람들. 비록 횟수는 줄어들겠지만 이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밀도 있는 시간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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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후회된 적 있느냐고 질문 한 사람은 나의 글쓰기 선생인 배지영작가다. 한길문고에서 15분간 강의를 하는 <한길세바시>를 열었다. 내가 첫 주자로 나섰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 받은 질문이다. 나중에 내가 왜 그런 걸 물었냐고 했더니 배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가 가끔은 지치게 하기도 하잖아요.”
지금 여기에 다시 답을 해본다.
“글을 쓴 뒤로 예전에 좋아했던 일과 하나씩 작별하게 되었어요. 한동안은 글에 관심 없는 지인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고요. 그런가 하면 시간에 쫓기고 강박감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갖고 싶은 장난감을 손에 쥐고도 다룰 줄 모르는 아이처럼 마음이 조급해했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글쓰기 외에 다른 일을 할 때도 기꺼운 마음이 되어야 마음이 풀어져서 글쓰기도 잘 된다는 걸 알았어요. 요즘도 종종 조바심이 생기지만 그럴 때일수록 운동을 더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마음을 느슨하게 해주려고 해요.
아, 왜 또 다짐을 하는 걸까요. 이것도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네요.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어요. 글쓰기 하나를 시작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이 변했어요. 그것만은 확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