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 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 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 있는 내용이다. 조지 오웰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 글을 몇 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 지금에야 와닿는 이유는 내가 쓰는 글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장면을 묘사하기보다 설명이 주를 이루고, “이미 만들어진 어구”가 많다는 자각 때문이다.
특히 ‘단어’를 먼저 찾지 말라는 데서 네이버사전을 검색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구체적이고 복잡한 감정을 기존에 있는 어휘로 표현하려다 보면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 전혀 새롭지 않은 글이 되고 만다. 또한 단어를 찾으면 연결하는 문장도 상투적이 되기 쉽다. 원래 있는 것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아예 처음부터 단어, 어휘, 표현을 밀어내고 마음속에 그려지는 하나의 장면을 표현하라고 했다.
내가 네이버사전을 검색하고, 상투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조지 오웰이 한 말에 답이 있다.
“이미 만들어진 어구를 쓰면 단어를 찾아내느라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문장의 리듬 때문에 애를 먹을 필요도 없다. 그런 어구들이 대개 제법 듣기 좋게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매끄럽게 보이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거칠고 미숙하지 않고 유려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숙련이 잘 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유창하다는 평가를 받으려고 글을 쓰는 걸까. 지식이 많다는 걸 뽐내고 싶은 걸까. 심오한 생각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걸까.
이런 욕심이 조금씩은 있겠지만 진짜 쓰고 싶은 건,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크게 보면 평범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성장환경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로 빚어진 술 같은 글이다.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오솔길 같은 글이다. 단출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자신이 언젠가 잊어버렸던 것을 발견한 기분이 드는 글이다.
그렇다면 능숙하고 매끄러운 글을 쓰는 건 포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서툴다는 평가를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내 안에 그려지는 것을 믿고 밀고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조지 오웰은 이런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남을 따라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의식하고 시작하지 않아도 쓰다 보면 독자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불러일으켜진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 대부분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학교 선생님의 것이고, 그것 또한 그들의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도 평가 때문에 단어에 의지한다면 기존의 질서에 다시 편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존에 있는 단어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내 경우에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라져 버릴까 봐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옅게 드리워진 생각을 어서 하얀 화면에 검정 글로 새겨두느라 느긋하게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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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새로 시작하는 독서모임에 갔다가 목요글쓰기회 문우 두 명을 만났다. 목요글쓰기회는 매주 목요일, 한길문고에서 두 시간 동안 글을 쓰는 모임이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독서모임을 마치고 밥을 먹자고 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코다리찜 식당은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옆에 있는 한식뷔페를 갔다. 식판에 반찬을 담아서 놓고 먹는데 대학교 학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60대로 교사를 퇴직한 분이다. 하지만 어울리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카페에 이동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여유롭고 편한 시간이었다. 같은 걸 배우는 사람,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일을 잘하려고 하는 사람, 획일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 일이 나를 튼튼하게 해 줄 거라고 믿는 사람, 그 일을 하고 난 다음에 벅찬 감정을 느껴본 사람들과의 대화여서 즐거웠는지 모른다.
“준정샘 글을 톡톡 튀면서도 재미가 있는데, 내 글은 고리타분해. 틀을 못 벗어난 것 같애. 학교 다니다가 학교에서 일해서 틀을 못 벗어나나 봐.”
이 말을 한 혜정 선생님은 작년에 학교를 퇴직했다. 요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글쓰기다.
혜정선생은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기사가 채택되었다. 단통방에 수줍은 멘트와 함께 기사를 올렸다.
혜정샘: 용기 내어 올린 글~ 이런 일이 처음이라 무척 설렙니다.
문우 1: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용기와 첫 경험 축하드려요.
나: 우와! 첫 경험 짜릿하겠다.
문우 2: 제가 처음 오마이뉴스에 글이 실린 날, 혼자서 히죽히죽 웃으며 거실을 서성였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축하드려요. 멋진 성탄 선물이네요. 용기도 글쓰기도 응원합니다.
혜정샘: 첫 경험 ㅋ 오우 기분 좋은데요? 이렇게 같이 기뻐해주고 칭찬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 글쓰기! 이 분위기 이 힘으로 쑥쑥 자라겠습니당. 목요 글쓰기회 파이팅!
문우들은 혜정 선생님의 마음이 어떨지 알기 때문에 한마음으로 기뻐해주었다.
혜정 선생님이 자기 글이 고리타분하다고 했다고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의 너그러운 성정이 글에서 묻어나요. 독자는 그걸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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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단어와 의미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 <어느 서평자의 고백> 도입부를 올려봅니다.
추우면서도 공기는 탁한 침실 겸 거실. 담배꽁초와 반쯤 비운 찻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좀먹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쓰러질 듯한 탁자 앞에 앉아 먼지 쌓인 종이 더미 속에서 타자기 놓을 자리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종이들을 버릴 수는 없다. 쓰레기통이 벌써 넘쳐날뿐더러, 답장 못한 편지들과 아직 못낸 공과금 고지서들 사이에 현금으로 바꾸지 못한 게 거의 확실한 2기니짜리 수표가 끼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소록에다 주소를 옮겨 적어야 하는 편지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주소록을 잃어버렸고, 그걸 찾을 생각을 하면(그뿐 아니라 무엇이든 찾을 생각을 하면)극심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상투어구를 쓰면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상투적인 비유나 숙어를 쓰면 정신노동이 크게 줄어들긴 하지만,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문장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비유를 섞어 쓰는 것이 중요하다. 비유의 유일한 목적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