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무용해 보이는 일
내가 가는 산악회는 신입회원이 거의 없다. 기존 회원들은 고령화가 되고, 한 명씩 ‘은퇴’를 하는 분위기다. 은퇴수순은 대개 이렇다. 선두로 가던 분이 어느 날 중간으로 밀려난다. 그러다 회원들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닉네임이 김대감님인 70세 산우가 한 번은 나한테 무릎아대를 준 적이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받아두라고 하더니 다음 달부터 김대감님은 나오지 않았다. 은퇴를 할 마음을 먹고 회원들 중 가장 젊은 나한테 유산을 남긴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산우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제 은퇴할랑가벼.”
“나도 얼마 안 남았어.”
이런 서글픈 대화에 내가 끼어든다.
“아,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오래오래 나랑 놀아줘야 줘야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우리 산악회는 줄기 산행만 한다. 과거에는 백두대간, 정맥, 기맥 같은 줄기산행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마니아층만 남은 실정이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캠핑이나 골프, 자전거, 맛집 탐방처럼 여가 활동이 다양해지면서 등산인구가 줄어든 모습이 미디어 시장이 커지면서 독서 인구가 감소하는 흐름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니아층만 줄기산행을 하는 것처럼, 앞으로 책을 구입해서 읽는 일이 소수의 취미가 되는 게 아닐까.
국내 최장수 월간지 <샘터>가 55년 만에 올해 1월호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폐간을 결정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1인출판사 대표는 신간이 1쇄가 다 나갔지만, 2쇄를 찍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쇄가 다 나갈 때까지 창고비용을 매달 감당하는 게 버겁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를 쓴 김인규 작가님은 얼마 전 페북에 출판사가 경영난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는 글을 올렸다. 수십 년 미술교사로 살아오면서 배운 것을 응축한 책인데, 책이 사라질 것을 걱정했다.
책을 내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한쪽에서는 나를 포함해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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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햇님편집자와 원고 교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제 글이 빈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세밀하지 못하다고 해야 하나. 어떤 작가의 잘 쓴 글을 보면 서서히 접근해서 펼쳐내는데 제 글은 갑작스러운 것 같아요.
햇님: 호흡을 말하는 거죠?
나: 네. 맞아요. 호흡.
햇님: 작가님 고민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느낌을 주는 작가의 책을 계속 읽어보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 박혜윤 작가 좋아한다고 하셨죠?
나: 네. 맞아요.
햇님: 또 하나 추천드리고 싶은 건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예요. 어떤 분야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알면 지금보다 쓰는 게 과감해질 수 있어요. 제가 봤을 때 작가님 글에서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하는 주저함이 있는 것 같거든요. 오래 보지 않았지만 옆에서 보면 작가님이 공부를 좋아하시는 것 같고요. 그런 게 채워지면 글에 많이 반영될 것 같아요.
덧붙여서 햇님편집자는 자신이 요즘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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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대학 때 제대로 공부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했다. 실용성이나 직업 때문이 아니라 공부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든 경험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김영민, 유시민, 박혜윤은 한 방면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당장은 무용해 보이는 일이 긴 시간의 축으로 보면 정반대가 되기도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