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이장에 붙박여있던 모자와 가방을 꺼냈더니 작은 동산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중에서 ‘이건 버릴까? 쓸 일이 있을까?’ 버리기 아까운 것을 골라내다 보니 진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것 같았다. 막상 내 손을 떠나는 순간이 되고서야 가치를 알게 되는 건가.
기세를 몰아 작년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죄다 꺼냈다. 세 개 옷장에서 나온 옷들로 등반해도 될만한 산이 만들어졌다. 한 사람이 샀다고 믿기 어려운 실로 엄청난 양의 옷무더기를 나는 한동안 멍하게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 속에서 골라낸 건 달랑 바지 하나, 블라우스 두 개.
종량제 봉투행이 된 옷, 모자, 가방은 어느 것 하나 대충 고른 것이 없었다. 사는 순간만큼은 신중했다. 30만 원이 넘은 얇은 스웨터, 100만 원을 웃도는 코트, 50만 원이 훌쩍 넘는 원피스는 나를 빛나게 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쓸어 담아서 쓰레기봉투에 넣다 보니 지난 기대와 믿음을 버리는 것 같았다.
환한 조명과 세련된 백화점에서 그 옷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홀딱 빠졌다. 하늘하늘 거리는 천에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옅은 베이지색 원피스, 절제된 디테일로 단정함과 시크함이 배어나는 재킷. 석 달 동안 통장이 홀쭉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수고만 하면 아련한 분위기와 단정함, 시크함이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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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숙원사업을 결행한 이유는 설연휴에 부모님이 오기로 해서다. 숨 쉬듯이 참견을 하는 아버지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대대적인 청소가 불가피했다. 백화점에서 카드를 꺼내는 데는 필요이상으로 과감하지만 청소와 정리 앞에서 초인적인 인내심을 자랑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70리터 종량제 봉투 5장을 사고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3주가 걸렸다. 디데이 일주일 전이 되고서야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반전이 일어났다.
“할머니 하고 군산에 가려고 했는데 우리 손녀 고3인데 한 자라도 공부하라고 안 가기로 했다. 너희 엄마도 니 챙겨주라고 오지 말라고 했다. 이번 설은 조용하게 보내고 시험 쳐놓고 놀러 많이 다니제이.”
아버지가 초밥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직전에 나한테 몸이 피곤해서 다 귀찮다고, 공장에 일거리가 있어서 쉬엄쉬엄 일하고 엄마하고 절에 갈 거라면서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하더니, 그 속내에 초밥이 공부가 있었다. 내가 가서 아버지가 귀찮을 일이 뭐가 있냐고, 나 없으면 음식은 누가 하냐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마음 바뀌면 얘기해요”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휴대폰 종료버튼을 누르자마자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장장 5일간의 휴가가 내 손에 쥐어졌다. 대구를 간다면 가는데 하루,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하는데 하루, 상을 차리고 치우는데 하루, 돌아오는데 하루가 걸린다. 5일 중 내가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하루나 될까.
별 일없이 연휴를 보냈다. 그중 어느 날, 산책을 하고 났더니 저녁시간이었다.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초밥이한테 비싸고 맛있는 걸 먹자고 카톡을 보냈다. 방근 김밥을 먹었다고 해서 마트에 들러서 어묵 한 봉지를 사서 들어왔다. 프라이팬에 당근, 양파, 표고버섯, 어묵을 넣고 볶다가 마늘, 굴소스, 참기름으로 양념을 했다. 접시에 담고 반 병이 남은 막걸리를 잔에 따랐다.
어묵을 하나 집어서 먹어봤더니 입에 착 감겼다. 어묵은 나에게 언제 어느 때 먹어도 실패하지 않는 식재료다. 그냥 무와 고추와 함께 끓인 어묵탕, 아니면 전자레인지에 익혀서 고추냉이간장에 찍어먹어도 안주로 그만이다. 탄수화물과 기름에 튀겼다는 것 때문에 좋아하는 만큼 자주 먹지 못해 애석할 뿐이다. 기껏해야 어묵볶음이었다. 많고 많은 음식 중 내가 좋아하는 건.
문득 지금 내 모습이 허황되고 욕심 많은 내가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버리고 나서야 도착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있는 것 중에 떠나보낼 것과 남길 것을 고르는 일 같았다. 옷무더기에서 한 줌의 옷을 골라내듯, 노트북 앞에서 한 줄의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