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사를 건넨다. 설레는 만남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헤어짐의 끝을 알리기도 한다. 문득 졸업식 때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예전에는 이 노랫말을 보면서 희망을 품었다면 요즘따라 왠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진다. 작사가의 정확한 의도는 알지 못하지만 슬픈 이별을 억지로 아름다운 척 포장시킨 것만 같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몸이 멀어지게 되면서 마음도 멀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함께 모든 것들을 했었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안부를 묻기 조차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그 순간은 아주 불현듯 찾아왔다.
며칠 전, 나는 5년간 우정을 나눴던 친구와 이별을 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별 통보를 받았다. 우리는 서로 챙겨주는 사이였고, 사소한 다툼 한 번 한적 없었다. 그러니 '이별'이라는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 정도는 붙여 줘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자기 합리화에 가깝기는 하지만.
뜬금없이 받았던 장문의 메시지 안에는 서로 좋은 감정이 있을 때 떠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좋았던 일들을 쭉 나열해 말해줬지만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되묻지는 않았다. 차마 대답을 들을 용기까지는 없었다. 밤새 고민 끝에 친구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로 했고 나는 추억팔이 얘기들을 하며 끝을 맺었다. 그렇게 '우리'에서 '남'이 되었다.
그 날이 마지막이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다르게 대했을까. 만나면 얘기하려고 차곡차곡 쌓아뒀던 일상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모든 순간을 함께 하기로 했던 말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머물러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기억에서 조차 잊혀 가겠지.
나름 쿨하게 보내줬다고 생각했는데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그냥 괜찮은 척했나 보다. 인생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다시 만날 일이 생긴다면 서로 웃으며 보자고 말은 했지만 잘 모르겠다. 지금의 감정이 상처로 남아 더 악해질지, 아니면 아물어서 무뎌질지는 그때가 와봐야 알 거 같다.
친구를 처음 봤던 날이 생각난다. 어색하지만 설렘이 가득했던 '안녕'. 무언가에 끌려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점차 그렇게 서로 알아가며 친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부턴가 옆에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후회를 한다기보다 아쉬움이 크다. 내가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봤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 적어도 그랬다면 이렇게 가슴 한편에 머물러 있진 않을 텐데.
창 밖을 보니 언제 그렇게 깜깜했나 싶을 정도로 눈이 부시다. 밤이 지나고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넨다. 굳이 애써서 미소를 짓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날 반겨주는 사람은 내가 어떤 표정을 짓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어두운 내면을 숨기기에만 바빴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생의 1막은 연기로 끝났지만, 제2막은 온전한 나로 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