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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Dec 22. 2023

이렇게 멋진 어르신이라니!

“과연 72세의 멋진 어르신입니다. 처음으로 72세를 사는 기분은 어떠신가요?”라는 물음에 배우 윤여정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매년 달라요. 우아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점잖게 살고 싶지. 하지만 나도 하루하루가 처음이라 실수하고 성질도 내죠. 유준상이 나한테 보낸 편지가 있어요. “선생님은 참 훌륭하시다. 늘 반성하시고 사과하신다. 그런데 또 그러신다.” 반성하고 사과하고도 또 같은 실수를 한대요. 내가! 그러니 이 나이에도 매일 아주 조금 성숙해지길 바랄 수밖에요.(웃음)

<배우 윤여정님, 젊은이들의 팬심이 느껴지십니까?>


이렇게 멋진 어르신을 봤나! 윤여정님뿐만이 아니에요. 허둥대는 내 손을 잡아 줄 아량 있는 어른은 없는지, 그 많던 어른은 정말 이 세계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건지 한탄하다가 ‘거대한 자가 에너지로 반짝이는 사람이라는 행성을 깊이 탐구해 보고자 한다' 며 사람을 찾아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그중 평균 연령 72세의, 오롯이 자기 인생을 산 16인의 어른과의 인터뷰를 담은 이 책 [자기인생의 철학자들]에는 멋진 말들, 아니 멋진 신념들이 가득 펼쳐져 밑줄 긋고 오래 보려는 욕구로 충만해지더군요.




인격의 핵심은 성실성이다. – 철학자 김형석

남이 내 비위 안 맞춰 주니 내가 먼저 내 비위에 맞춰 줘야 한다. – 디지아너 노라노

이제는 불완전한 내가 불만스럽지 않아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운은 하늘의 귀여움을 받는 것 –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나는 어떤 말을 하는 노인이 될까 상상해 보니 어이쿠, 이렇게 살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모름지기 해 줄 말이 있으려거든 뭐라도 해봐야 할 텐데 아직도 이렇게 몸 사리고 있으니. 책 속 어르신들의 말씀을 읽다 보면요, 그저 경험만 술술 말할 뿐인데 아하! 저마다 깨우침을 길어 올릴 만하더라고요. 본인 인생을 긍정도 부정도 않고 치열하게 살았던 어르신은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겸손함이 체화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고집이 없으십니다. 세상 쿨해요. 내내 기분 좋게 읽히는 이유는 꾸짖음과 재촉은 없고, 별 거 없으니 자기 모양대로 살아보라는 응원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란 물음에 디자이너 노라노님은 이런 답을 하셨습니다.

“장인정신이 있었던 사람. 디자이너는 고상하지 않아요. 항상 고객의 신체와 취향을 맞추는 감정노동자고 동시에 장인이에요. 과대평가는 싫어.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던 사람, 욕심 없이 순리대로 쉬지 않고 계속 갔던 사람. 그 정도면 좋겠어요.

<70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는 점에서 내가 샤넬 여사보다 한 수 위야. 샤넬을 이겼다고.(웃음)>


과대평가는 싫다는 말씀. 겸손인 것 같지만 치열하게 살아본 바 하루하루 노동자일 뿐이란, 그래도 행복하단 고백인 것 같아 감동이었습니다. 하루를 열심히 채워나가면 그걸로 족하다는 고백 아닌가요?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인간적으로는 꽤 쓸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아, 결론까지 멋지십니다. 일본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님의 말씀과 겹치네요. 덕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가능한 다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겁니다.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작은 상황도 분쟁으로 만들고 빈번하게 소송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겨도 계속 비슷한 분쟁이 반복될 뿐이에요. 불운을 끊어 내지 못하는 거죠.

<"운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입니다."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로서 사람들의 본성에 직면하다 보니 인간상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신 것 같아요. 덕을 쌓지 못하는 사람은 잠깐 이기는 것 같아 보여도 어딜 가나 또다시 문제를 만드는 반면에 성공한 기업인이나 유명인들은 승승장구한다고 합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보다 겸손하게 운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운이 좋지 않을 수 있냐며 반문하네요. 

정말이지 이 분 인터뷰를 읽다 보면 성실에 올바름을 더해 덕을 쌓으며 살고 싶어 져요. 그러면 하늘의 귀여움을 받지 않을까요? 




“어른이라고 행세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염치를 가지고 지킬 걸 지키면 어른으로 대접받는 거죠.”

<캠퍼스의 화사한 꽅나무 아래서 시든 기색이 없으신 배우 이순재님>

34년생 배우 이순재님의 문장은 육성으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ㅎㅎ 겸손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겸손하신 분이기에 캠퍼스의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오지 않나 싶어요. 이순재 배우님이 교수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견고한 신념으로 타협 없이 정석을 가르침과 동시에 덕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며 엘리트 출신도 할 수 있구나, 란 다소 편협 어린 생각도 해봤습니다.

“<꽃보다 할배>를 보며 안심이 됐던 건 선생이 그런 ‘자기’가 살아 있는 노인이어서예요. 우리와 대결하지 않지만, 대결할 정도의 힘이 있는 어른 곁에서 안정감이 느껴진달까요?” 인터뷰어 김지수님은 이순재 배우님께 이런 마음을 전했습니다. 젊은 우리들과 대결하지 않지만, 대결할 정도의 힘이 있어 좋단 뜻이겠죠. 답변이 역시 멋집니다.

그게 바로 생명력이에요. 나이 들어도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과제를 달갑고 고맙게 받아야 해요. 수선스럽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면서.


책 속 16분의 어르신들에게서 존경심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 생명력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군가는 만족하라 하고 누군가는 만족하지 말고 나아가라 했으나, 둘 중 하나만 정답이 아니더군요. 저마다 선택한 그 길을 확신하며 걸었고, 결과가 그 믿음을 증명했기에 감동이었습니다. 자기만의 확신을 갖고 사는 삶이 멋지다는 거죠. 




한 분만 더 소개할게요. 대한민국의 자랑,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님께 연주할 때 몸의 느낌이 어떠신지 물으니 이렇게 답하셨어요.

“이번에 브람스 콘체르토를 연주했는데, 물리적으로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어요. 젊었을 때는 그렇게 완벽했는데.(웃음) 중요한 건 불완전한 내가 불만스럽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 이상 어떻게 더 해? 하하하. 젊을 땐 부모, 나라, 스승을 위해서 안달하며 연주했는데, 지금은 나를 위해서 해요. 내가 여섯 살 때 발견했던 최초의 신비… 그 소리의 색채, 마음속의 무지개를 좇아서 해요. 

이번에 서른세 번째 앨범을 내면서 가브리엘 포레와 세자르 프랑크의 곡을 연주했어요. 포레는 젊을 때 사랑에 빠져 그 작품을 썼고, 프랑크는 60대 중반에 썼어요. 그런데 프랑크의 곡은 젊을 땐 일부러 성숙함을 연출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그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기브업(give up)은 안 할 겁니다.

<기브업이 웬 말이십니까? 우리나라의 보배,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


내가 아등바등할 때 선배들은 늘 ‘언젠가 된다’ 말했어요. 그게 그렇게 야속했는데 정말 때가 차면 되는 게 있더군요. 그러니 지금 당장 잘 풀리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요. 지금은 안 될 때인 겁니다. 절로 될 때를 기다리며 조바심 없이, 불평불만 없이 그저 열심히 하기로 해요. 지난밤, 책을 멈추지 못하고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산전 수전 반전의 따스한 지혜에 위로받고 매료되었는데, 유플리더분들 곁에 좋은 어르신과 동료들이 있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금요일이네요. 금요일이란 사실이 큰 위로가 되죠?! 청춘을 불태우는 저녁이 되길 응원하며 마무리할게요.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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