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집 근처의 카페에 갔었다.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시간이 10분쯤 흘렀을까. 옆 테이블에 젊은 아기 엄마들 6명과, 각각 딸린 아이들 - 한 엄마당 아이 두 명 – 이 와서, 어른 6명에 아이 12명, 총 18명이 옆 테이블 3개를 이어 붙여서 앉았다. 그리고 유모차가 3대, 유모차 안에는 곤히 잠든 아가 3명. 알고 보니 총인원이 21명이었다.
(아... 자리를 옮길까 말까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자리라 계속 앉아있는 것을 택했다.)
우려했던 상항은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터졌다.
엄마들은 맘 카페 회원인지 서로 닉네임을 부르며 애써 친근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닉네임으로만 대하다 얼굴을 마주하려니, 오래된 사이처럼 허물없이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서 통성명하는 어색함이 얼굴에서 느껴졌다.
일단은 분위기 좋게 각자 차를 주문하고, 조각 케이크 몇 개와 아이들용 주스 하나씩, 주문하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뒤 주문했던 메뉴들이 테이블에 놓이고, 가볍게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나는 30분째 어느 아이가 밥 먹다 음식 흘리는 이야기, 화장실 가서 똥 싸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나도 안 웃긴데 엄마들이 모두 웃어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다 12명의 4~6살 사이의 아이들이 슬슬 보채기 시작했고, 게 중에 몇 명이 엄마들 이야기에 자꾸 끼어들자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러다 누구는 쥬스를 쏟고 누구는 쿠키를 떨어트리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엄마들이 일어나서 마른 휴지를 가지러 가고, 어느 엄마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서 아이의 손을 닦아주며 몇 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끼리 친할 리도 없고, 엄마한텐 말 한마디 붙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어른들과 대화할 수도 없고 조신하게 앉아있을 리도 없는 철부지 아이들이 넓은 카페 안을 운동장 마냥 뛰어다녔다. 뛰다가 소파에 걸려 넘어지고,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 그러다가 울음소리가 귀청 찢어지게 들렸다. 내 귀청이야 찢어지든지 말든지, 테이블에 넘어진 아이의 이마가 찢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큰아이들의 소란한 소리에 유모차에 누워있던 – 조신하게 잠자고 있던 – 영아들이 깨어나 일제히 울기 시작했고, 엄마 3명이 일어나서 품에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6명의 엄마 중 3명은 아기를 달래느라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자장가를 부르고, 12명의 아이들은 눈 오는 날 개 뛰듯이 카페를 뛰어다니고, 6명 중 3명의 엄마는 테이블에 앉아서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이 설거지를 도와주는데 고춧가루가 그대로 묻어있다는 말에 엄마들이 일제히 웃어주었고, 시어머니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서 깜짝깜짝 놀란다는 말에도 엄마들이 맞장구를 치며 웃어주었고, 애들 중에 꼭 3-4명은 그 와중에 똥이 마렵다고 엄마 손을 붙들고 일어섰다.
카페 안은 시장보다 더 어수선하고 그 옆에 앉아있던 나는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자리를 옮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어느 타이밍에 웃어야 하는지, 어디가 웃기는지 모르겠는데, 한참 웃어대는 엄마들을 보면서, ‘아... 저분들이 지금 웃고 싶은 거구나..’ 하는...
카페 안이 너무 소란스러웠지만, 이렇게라도 한 숨 돌리고 말로 떠들며 속풀이라도 하고 싶은 아기 엄마들 마음도 이해가 되는지라, 그저 옛날 생각하면서 앉아있었다.
카페 직원이 좀 조용히 해달라고 자제를 시켜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으나 이제 막 생긴 카페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이 아기 엄마들에게 그런 말을 하긴 어려워 보였다.
결국 뛰어다니던 12명의 아이들에게는 각각 핸드폰이 쥐어줬고 아이들이 각각 핑크퐁, 뽀로로, 게임, 만화를 떠들썩하게 보는 동안 실내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울던 아기들은 어느새 엄마품에서 잠이 들었다.
엄마들은 다시 아이 키우는 얘기, 남편 얘기, 시댁 얘기를 30분쯤 더 하다가 아쉬운 얼굴로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12명의 아이들이 핸드폰을 다시 엄마에게 반납하고, 3대의 유모차가 카페를 먼저 나가고 6명의 엄마들이 모두 나간 다음에야 카페엔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약속시간이 되어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해진 카페에 앉아 내게 다가온 지인을 만났다.
그리고 지인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와,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시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며 적절히 웃었다 울었다 해주었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말고.
‘이제 다른 이야기 좀 해요, 우리도.’
읽은 책 이야기,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내 꿈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이제 함께 웃고 울고 할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육아는 참 힘들다. 힘들게 아이들 키우며 웃고 우는 그네들의 삶에, 우리의 삶에 진짜 평화와 기쁨이 깃들길,
지금의 어려움이 아름다운 나만의 무늬가 되길, 힘듦과 지치는 일상으로 지금의 마음이 황폐해지지 않길,
젊은 아기 엄마들을 보면 그녀들의 수다마저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웬만하면, 공공장소에서는 적당히 처신할 수 있기를...
비록 더 웃고 싶더라도,
계속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그중에 단 한 명의 아기 엄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를 안고 서서 달랬다가 재웠다가 하면서도, 조용히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나에게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 아기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고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쪼록 아이들도 엄마들도 건강하게 자라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