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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ug 21. 2020

이왕이면, 힘있게 사랑하기.

어렸을 때 우리 집 벽에는 웬지 안어울린다 싶은 애매한 위치에 항상 걸려있는 액자가 있었다.

때로는 거실에, 때로는 안방에, 때로는 작은 방에, 때로는 다락방에,

이사를 갈 때마다 버렸나 싶었지만, 어느 순간에 보면 나와있었다.

유일한 액자였다.

약간 싸구려(?) 티 나는 황금을 가장한 금빛 액자 속에서 종이 색만 바래갈 뿐, 세월이 지나도 내용은 궁서체로 선명했다.

사랑에 대해서 막연하게, '아, 사랑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사랑은 저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사랑.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데 살다 보니, 사랑이란 뭘까 갈수록 모호해졌다.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면, 오래 참을수록 사랑이 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사랑이 온유한 것이라면, 사랑할수록 온유해지는 것이 아닌지

제대로 사랑을 하지 못해서, 알지 못해서

사랑을 글로는 배울 수가 없는 것이어서

20년을 보고 자랐어도 나의 사랑은 액자 속의 사랑과는 도무지 다르게 느껴졌다.

참는 것이 힘이 들고 원통하며

온유하지 못하고 심장 세포 마디마디가 흔들렸다.

온유는커녕, 오뉴월에도 몸이 덜덜 떨리게 슬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성경 속에도, 영화 속에도, 소설 속에도

많은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하는 것이었는데

현실 속에서 사랑은 '그러면 불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내 정신이,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인 건 아닐까.

사람은 나 자신을 위해서 견딜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건 꿈이건, 인생에서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보았는데

역시나, 서툴렀던 것 같다.


그나마 아이들을 통해서 '사랑'을 배워간다.

나 자신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은 자식에 대해서뿐이다.

오늘 막내가 자연 동화책을 가져와서는, 책에 욕이 나온다고 성화였다.

문제가 된 것은 '새끼들 때문에 어미새는 배부르게 먹지 않고 먹이를 실어 나릅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새끼들 때문에.'

이쁜 내 새끼들.

자식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조금씩,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의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엄마에게 허락된 축복이다.


마음속에 액자가 있다면, 사랑에 대한 글을 붙여두고 싶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어미는 새끼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그 사랑의 동화가 영원히 이어져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길,

아이들이 스스로 알을 깨고 나아가는 길 위에서

묵묵히 놓여있는 다리가 되길.

언젠가 사랑에 대해서 아이들이 진지하게 물어본다면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힘인 것 같아.'


그리고 그런 사랑을 굳건히 지키는 힘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그래서 힘없는 사랑 말고, 힘 있는 사랑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자, 힘있게! 대문자로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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