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인턴, 석딩, 영국, 큐레이터
1부: The British Museum의 한국인 인턴 이야기 (https://brunch.co.kr/@upside/185)
많은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를 얻게된거야?
일단, 해외에서의 인턴십을 통해서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커리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국가에서 생각보다 많이 지원해줘. 특히 나같은 경우에는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교류재단이라는 곳에서 해외박물관 인턴십 자리를 마련해준거야.
보통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공고를 내면 거기에 지원을 해서 총 3차의 면접을 걸쳐 최종선발이 되면 파견을 나오게 되지.
해외박물관 인턴십에 지원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이 있어?
음...아무래도 그렇지. 사실 국가재단에서 시행하는 인턴십 제도에는 박물관 말고도 한국어 교육이라든지 외국에 있는 정책연구소에 파견되는 인턴십 제도도 있어.
하지만 박물관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연구직이기 때문에 석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해. 그래서 지원할 때 특히 미술사를 전공했다면 석사 이상의 학력이 필수지. 그리고 해외인턴이다보니까 어느정도 수준의 영어실력과 해당국가의 언어실력정도?
어, 해당국가의 언어실력이라고 하는거 보니 이 제도가 영국이랑만 협력하는게 아니라 미국이나 프랑스로 가는 사람들도 있겠네?
그렇지. 정확하진 않지만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파리에 있는 기메동양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 Guimet)에 파견나갔던 적이 있다고 들었어.
현재는 미국이랑 영국 두 국가에만 파견을 나가고 있어. 올해같은 경우에는 총 6명이, 미국 4개의 기관과 영국 2개의 기관 (영국박물관과 Victoria & Albert Museum) 에 파견이 되었어.
아 그러면 각 기관에 한명씩 파견나가는거야? 고를 수는 없고?
각 기관마다 한명씩 파견이 나가게 되고 우선지망순위를 적어서 낼 수 있어. 지원과정자체에 올해 파견을 나갈 수 있는 기관 리스트가 제공이 돼. 그리고 그 기관에 있는 담당학예사들이 원하는 조건을 명시하고 지원자들이 그 조건을 고려하면서 우선순위를 적어서 내는거지.
어쨌든 미술사를 심도있게 공부하는 학생들이니까 조건들을 보고 ‘아 내가 이 기관에 맞겠다’, ‘이 기관에 가면 내가 학술적으로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등을 고려하면서 지원하게 되지.
대략적으로 8~10개의 기관이 뜨는데 거기서 2개의 기관을 골라서 지원할 수 있어. 1지망, 2지망 이렇게. 나같은 경우에는 영국과 관련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 가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해서 영국박물관을 1차로 썼지. 2차로는 미국 보스턴에 있는 Museum of Fine Arts 를 썼는데 그쪽도 워낙 내 논문주제와 관련이 깊어서 지원했었어.
영국박물관 자체에서 인턴을 뽑지는 않아?
영국박물관 같은 경우에는 기관의 성격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인턴을 뽑는 것 같지는 않아. 영국박물관이 완전한 국가소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 기관이라 그런지 자금측면에서 여유롭지가 않다고 전해 들었어.
그래서 보통은 펀딩시스템을 통해 박물관에 펀딩을 해준 다른 재단에서 인턴자리라든지 학예직 자리를 마련해줘. 펀딩시스템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 역시도 영국박물관 인턴이라기보다는 영국박물관 인턴임과 동시에 한국국제교류재단 인턴이라고 불려. 어디서 펀딩을 받느냐에 따라서 타이틀들이 항상 있어.
한국에서는 아모레퍼시픽에서 펀딩을 해주고 있고 아모레퍼시픽을 통해 들어오신 분들은 ‘아모레퍼시픽 프로젝트 하에 있는 (position name)’ 이런 느낌이야.
약간 미국이라는 국가 같네? 주(state)들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그렇지. 여러 재단들이 협력해서 영국박물관이라는 집단 하나를 운영하게 되는거지. 영국박물관에서는 부장급, 그러니까 department head를 keeper라고 부르거든? 그런 자리는 거의 permanent contract라서 영국박물관 자체에서 케어를 하지만, 그 이외의 직책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예를 들면 나같은 경우에도 다른 펀딩을 통해 들어온 임시직에 가까운거지.
보통 펀딩하는 식으로 타이틀이 붙는댔잖아. 그런데 왜 영국박물관에 펀딩을 해주는 아모레에서 인턴을 안 뽑고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뽑는거야?
아주 간단히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외교부 산하라서!
사실 이게 생긴지 얼마 안됐어. 90년대 초부터 해외에 우리나라 전시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가 그렇게까지 신경을 못 썼지. 경제적으로 조금 넉넉치 못한 나라들은 여기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으니까 우리나라도 90년대 초반까지 그랬던거지.
그러다가 이제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까 ‘아 영국이랑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 전시실도 우리가 케어해보자.’ 라고 생각하게 된거지. 이런것도 일종의 외교 방법 중 하나니까. 그러면서 이제 외교부 산하에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해외에 있는 한국관들을 지원하면서 거기에 인턴을 파견시키게 된거야.
또 아모레퍼시픽의 펀딩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펀딩과 성격이 다른 별개의 것이라 그렇기도 해. 아모레퍼시픽 프로젝트는 보존 업무를 중점적으로 지원해주는 펀딩 프로젝트이거든. 이제 첫 단추를 꿰매는 시기라서 아직 뚜렷한 것들이 없지만 조만간 일들이 자리를 잡으면 아모레퍼시픽 인턴도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외교사절단 같다ㅎㅎ 인재육성 측면과 문화적으로 선진국인 곳에 가서 배워와서 그 시스템을 한국에 보고해줘라 이런거구나!
어 그렇지 아무래도. 예를 들면 사절단이나 특파원처럼 해외로 나와서 공부하고 배우고 다시 한국 가서 그걸 보고 및 공유하자는 측면도 있고, 아무래도 나는 학생이니까 학생이 좀 더 배우고 와라 하는 것도 있고. 세번째로는 우리나라 사람이 잘 없는 곳에 나처럼 민간인이 공공외교를 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넣는 것도 있고. 내가 행동하는게 어떻게 보면 간접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게 되는거니까 일도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ㅎㅎ
너는 한국에서도 다른 재단에서 잠시 일해보고 영국박물관에서도 일을 해봤잖아. 시스템적으로 두 나라가 다른 걸 많이 느껴?
음..한국에서도 운이 좋게 다른 재단에서 짧게나마 일을 해봤고 지금 여기서도 비슷한 기간동안 일을 해봤는데, 내가 정직원이 아니고 인턴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업무분위기를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확실히 다른 점은 있는 것 같아. 조직문화라든지 개개인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어떤 가치관으로 여기느냐 이런 것들이 좀 다른 것 같아.
예를 들면 영국은 확실히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국가다보니까 일 이외의 것들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잘 간섭 안해. 물론 하루 어땠어? 같은 스몰토크를 할 수는 있지만.
그치만 한국은 뭔가 ‘우리! 우리회사! 우리조직!’ 이런 것들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고. 일단 뭐, 상사가 다르기 때문에 업무분위기가 다른 것 같기도 한데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내 주어진 업무만 잘한다면 그 이외의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터치를 안하는 편이야. 출근시간이라든지 업무기한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빡빡하지 않아.
그런데 한국은 그런 조직에 대해 중점을 두기 때문인지 개개인이 하나하나 뭐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인 관리를 한다고 해야하나? 그런 점들이 다른 것 같아.
너의 석사논문 주제가 영국박물관 업무랑 관련된 일이라서 선발이 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러면 너의 논문주제를 너의 사수선생님께서 교수님처럼 지도해주시는 부분이 있어 아니면 너가 스스로 찾아서 하는거야?
사수 선생님은 내 지도교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논문을 지도해주시지는 않지만 관련 자료를 찾는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셔! 그도 그럴 것이 내 사수선생님과 우리 아시아 부서 부장님 같은 경우에는 내가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걸 알고 뽑으신 것 같아 왠지.
그래서 이 공간에서, 이 기회를 통해 박물관 업무도 배우지만 그만큼 자료조사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할 수 있도록 많이 지원해주셔. 만약에 내가 스스로 공부하면서 이러이러한게 필요하다라고 말씀드리면 사수선생님께서 영국박물관의 외부 자료실인 Blythe House를 다녀올 수 있도록 외근을 잡아주시거나 관련 자료를 추천해주시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셔.
이 인턴 프로그램이 업무보조의 측면도 있지만 교육이나 인재양성의 측면도 되게 강하다.
어 그렇지 아무래도. 철저히 배움의 입장에 있는 자리라 생각해. 뭔가 내가 이 부서에 ‘더하기(+)’의 역할보다는 ‘아 배우는 애가 들어왔구나’ 하는 느낌이야. 박물관에서는 나를 뽑아서 더 일을 시키려는 게 아니라 연구나 공부의 측면에서도 배우는 입장, 박물관 시스템이나 업무 측면에서도 배우는 입장의 학생을 뽑아 준 것 같아
.
이 말은 내가 아예 일을 안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엄청 중요한 업무는 아니고 ‘extra hand’가 되어 잡무를 담당해서 큐레이터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면서 여분의 시간에 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해외 기관에 와있는 동안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고 이런 박물관 일, 문화외교 업무에 관심이 많고 알고싶어하는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는게 맞다고 생각해.
막연히 런던이고 해외인턴이고 영국박물관이라서 온다고 하면 좀 잘못된 접근인 것 같아. 정말 연구에 관심있는 사람이 와야 훨씬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재단이나 영국박물관에서나 그런 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일에 관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뭐야?
질문?..그런데 진짜 놀랍게도 나한테 사람들이 질문을 안해ㅋㅋㅋㅋㅋㅋㅋㅋ
영어 잘해야 되지? 자소서 어떻게 썼어? 면접 빡세? 이거는 많이 들었는데.
아주아주 솔직히 말하면 ‘영국박물관 인턴’이라는 감투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런던에서 살수도 있고, 돈도 지원 받고, 그냥 박물관도 아니고 영국박물관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니까. 어떻게 나도 해보면 될까 하는 마음에 ‘어떻게 됐어?’를 질문하는 사람이 많지 ‘뭘 배웠어?’를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어. 업사이드팀이 처음이야 사실..ㅋㅋㅋ
면접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
서류-1차 한국어 면접-최종 면접 이렇게 3단계가 있었어.
서류는 영어로 자기소개서 및 연구계획서를 쓰는거였는데 지원자가 지원한 박물관의 성격이나 특성과 얼마나 맞는지를 보는 것 같았어. 1차면접은 인성면접 같은 느낌이었어. 한국어로 진행됐고. 이 사람이 동료들과 협업은 얼마나 잘하는지, 외국기관에서 위기상황이나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처능력이 유연한지 이런걸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
예를 들면 거기서 일을 하다가 내가 해결을 못하는 일이 나타났을 때 나는 과연 도움을 먼저 청할 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해결할 것인가 그런식으로 많이 물어봤어.
그 질문에 넌 뭐라 대답했어?
내가 사실 1차면접을 잘보긴 했어ㅎㅎㅎ 질문이, 일을 하는데 내가 실수를 했어. 그런데 그걸 내가 내 보스한테 말을 하지 않고 혼자 해결할건지 아니면 보스에게 바로 보고해서 해결할건지 대답해보라했어. 나는 보스한테 솔직하게 얘기해서 2차 피해를 방지하겠다고 했었지. 또 외국에서 일하니까 문화차이가 있을텐데 거기에서 오는 갈등을 어떻게 이겨낼거냐 이런 것도 물어봤었어.
내 대답은 ‘미국에서 1년동안 교환학생하면서 느꼈던 문화차이를 생각해봤을 때 그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겠다. 그런데 나는 내가 외국에서 왔고 영어를 원어민급으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거를 먼저 인정하고 그 그룹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을 했지. 그리고 내가 실수를 한다면 나는 그걸 내가 몰라서 그랬다는걸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일을 해나가겠다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
2차 면접은?
내 사수샘이 영국에 계시니까 스카이프로 면접이 진행되었어. 질문은 보통 내 연구주제나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질문하셨어. 이러이러한 연구주제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오면 어떻게 자료조사를 할 거고 어떤 것 위주로 보고싶느냐 등등 정말 연구에 관련된 질문만 하셨던 것 같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수샘께서 나의 연구를 어떻게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 지를 알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하셨던 것 같아.
아 사수샘께서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 범위내인지를 알기 위해?
어. 그리고 박물관 유물에 대해 내가 이해가 잘 되어있는지. 연구계획서를 쓸 때 어쨌든 내 연구주제랑 관련된 걸 써야하니까 영국박물관에 있는 이러이러한 유물들이 내 연구주제랑 디테일하게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를 내가 되게 어필했어.
영국박물관에 있는 유물에 관해 100% 이해가 되어있는건 아니지만 2-30%라도 되어있고 그걸 활용하며 연구하고싶다! 라고 했더니 사수샘께서 여기 와서 뭐를 보고싶은지, 얼마나 더 자료를 찾고싶은지 이런걸 물어보셨던 것 같아. 그리고 인턴십을 끝내고 난 뒤에 하고싶은건 뭐냐고.
그래서 넌 뭐라했어?
난 사실 말도 안되는 말을 했어. 나 로스쿨 간다 그랬어ㅋㅋㅋㅋㅋ
내가 애초에 내 논문주제를 선택했던 이유가 우리나라 유물이 왜 밖에 나가있는지, 환수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등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관련 재단이나 관련 업무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쨌든 해외에 반출되어있는 유물들에 관심이 있으니까 해외박물관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 쪽 입장도 알고싶어서 나오게 됐는데 만약에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그런 경험을 벗 삼아 로스쿨을 가서 관련 공부를 하고 싶다 생각했어. 여전히 나는 문화재 환수, 유지, 관리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긴 해. 특히 해외에 나와있는 한국전시실을 좀 더 서포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런데 로스쿨은 시간과 돈이 된다면 할 의향은 있지만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중인 것 같아.
너가 말했듯이 아모레퍼시픽 같은 사기업에서도 해외박물관에 있는 한국전시실에 펀딩을 시작하고 있으니 그런 쪽으로 가도 좋겠다.
아무래도 그렇지. 일본이나 중국처럼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나라들은 국가가 아니더라도 개인이나 기업에서 자국의 문화적인 우수성을 알리고 문화외교를 위해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해.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기반이 잘 닦여있는 것 같지는 않아. 많이 하지도 않고.
예를 들어, 영국박물관에 있는 동양회화 보존스튜디오 이름이 ‘히라야마 스튜디오’거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판화가이자 굉장한 자본가이기도 한데 본인 사비로 유물 보존하는 데에 힘써주고 있어. 그런데 또 일본 자체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강한가봐. 그래서 해외에 있는 일본회화를 더 잘 유지하고 유지한 유물을 관람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본 이미지가 더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일본사람들은 그 스튜디오를 만드는거야.
그런데 히라야마뿐만 아니라 미츠비시도 그렇고 스미토모라는 회사에서도 거의 10년, 20년짜리 장기프로젝트를 기획해서 꾸준히 지원을 해.
반면에 우리나라가 기획해서 하는 프로젝트는 되게 짧아. 1년, 2년 길어야 5년. 그래서 그 프로젝트에 채용된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 싶어도 기간이 너무 짧으니까 ‘어차피 나는 더 못할텐데’ 하면서 굉장히 단발성인 프로젝트밖에 기획을 못하게 되고 장기적으로 유지가 안되는거야.
그래서 통일성이나 책임감이 좀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사람이 20년짜리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면 자기가 가진 현재 역량보다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는데, 그 기간이 짧아지면 어차피 안될거라 생각하면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더 펼치지 않으려 하지. 그래서 이 분야에 있어서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가 뒤쳐진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영국박물관에서 일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이상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과 막상 와서 부딪혀본 현실과의 괴리감이 있었어?
어..되게 많이 컸던 것 같아. 나는 어쨌든 해외에 있는 한국실이라면, 거기다가 나라의 지원을 받으니 재정적으로 부족할 거라 생각을 안했다? 사실 적자상태는 아니지만 시스템 자체가 장기적이지 않고 탄탄하지 않다보니 전시기획을 하면서도 아쉬운 점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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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이런 테마의 전시는 더 크게 혹은 더 제대로 하면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타나고 우리 한국실 이미지도 더 좋아지고 보다 나은 전시가 될 수 있을텐데 아무래도 그걸 담당하는 인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다보니 역량발휘가 더 안되는 것 같아.
난 한국에 있을 때는 그정도 규모의 기관이면 더 멋지고 대단한 걸 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고. 정말 인력난과 시간의 부족함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지.
맞아. 나도 영국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유물이 몇점 안될거라고 생각했어. 한국실의 규모가 작다보니. 그 안에서도 또 분류작업을 시대별 타임라인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테마를 통해 정말 다양하게 할 수가 있는 거였구나.
그렇지. 어떤 거를 하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이게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이 우리나라 시스템상 잘 안 갖춰져있어. 그렇다고 영국이 뜬금없이 한국만을 위한 서포트를 해주진 않을 거 아냐. 사실 그건 우리 몫이거든. 우리가 제대로 못하고 있는거지...노력이야 하고 있겠지만 부족한게 많지.
우리나라에서는 펀딩해주는 기업이 아모레퍼시픽이 유일한가?
한국을 집중적으로 펀딩해주는 곳은 정부를 제외하고는 아모레퍼시픽이 유일해. 그런데 뭐 사실 일반 사기업이 다른 쪽을 지원해주고 있긴 해.
예를 들어, 대한항공이 영국박물관의 오디오가이드를 지원해준다던가 삼성에서도 디스플레이 같은 기기를 지원해주고. 그런데 그건 한국관을 지원해주는게 아니라 영국박물관을 지원해주는거야. 자신들의 기업명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물론 우리 나라의 기업들이 더욱 성장한 뒤 그 다음 수순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겠지만 중국이나 일본이랑 비교해 봤을 때 아쉬운 면들이 많아.
그러네? 블로그 후기 같은거 보면 역시 대한항공이 국위선양하네요~라고 되어있는걸 많이 봤는데 생각해보니 아니네.
그러니까. 난 그게 왜 국위선양인지 모르겠어 사실ㅋㅋ 결국 자기네 항공사 이름을 알리는거잖아 마케팅 일환으로. 한국실이과는 무관한거고. 어차피 외국인들은 그게 ‘한국’회사인지도 잘 몰라.
그러면 너가 말하는 서포트는 진짜 아모레가 유일하구나.
그렇지. 아모레는 한국회화를 보존해주는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는거야. 사실 아모레라는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거지. 왜냐하면 아모레가 자기네 이름을 달고 영국박물관에 오디오가이드라던지 지도를 지원해주는건 아니니까. 다만 우리 유물을 더 잘 보존하기 위한 서포트를 묵묵히 해주는거지 사회환원의 일환으로.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드는 아쉬움은 없었어? 어떤 역량을 좀 더 준비해올걸이라던가!
나는 항상 드는 생각이 제2외국어를 좀 더 다양하게 했으면 좋았을걸이란 생각을 해. 이쪽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제2외국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난 어느 일을 하던 간에 제2외국어 제3외국어를 갖추고 있는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만큼 보이는 것도 많아지고 기회도 많아지니까. 나는 아쉬운 점이 영어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했던 것이야.
그래서 다른 언어를 더 깊게 배우지 못하고 영어에만 너무 시간을 할애했던 부분이 컸지. 적당히 소통만 어느 정도 된다면 그 이후로는 더 잘하고 못하고는 큰 문제가 아닌데 말이지.. 다른 언어 하나를 더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예를 들어, 중국어를 좀 더 잘했더라면 지금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더 많이 되었을 것 같아. 그리고 난 어쨌든 아시아부서에 있고 되게 글로벌한 환경에 놓여있잖아. 중국인도 있고 일본인도 있고 인도인도 있는데, 그 사람들과 좀 더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과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대감이 쌓일 기회도 더 많이 생길 것 같아. 일적으로도. 아쉬움은 딱 그거 하나.
너가 생각했을 때 가장 필요한 언어는 뭐라 생각해? 이 분야랑 너의 상태.
이 분야는 아무래도 내가 영국과 동양을 잇는거기 때문에 중국어랑 일본어를 했으면 나한테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고. 일반적으로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은 아무래도 프랑스어를 아는 게 더 좋겠지? 라틴어라던지?
역으로 너의 어떤 부분이 이전 인턴과는 차별화되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내 연구주제? 그리고 나는 사실 서양미술사를 주력으로 공부를 해온 서양미술전공자이긴 해.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국미술이나 동양미술을 놓치지않고 공부해왔거든. 그러다보니 그 중간에 섞여서 여기에서 일을 할 때에도 서양미술에 대한 베이스가 깔린 상태에서 동양미술도 알고있으니까 그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
여기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에도 서양미술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손발이 좀 더 잘 맞는게 있어. 아는만큼 보인다고 더 배우게 돼. 영문학과를 나온것도 차별점인 것 같기도 해. 애초에 영국문학이 영국문화사에 속하니까...난 영문과에서도 19세기 빅토리아 문학을 세부전공해서 그런지 런던의 삶 자체도 더 많이 보이고...영국사람들이 이야기 할 때 우스갯소리로 하는 유머도 좀 더 알아듣는 것 같고. 너무 낯설진 않은 것 같아.
정말 많은 걸 배우고 가는 것 같다 친구야ㅎㅎ 앞으로 이 인턴십 경험을을 발판 삼아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정말 어려운 질문이야. 아직도 고민중이고. 그런데 이 인턴 경험이 있기 전까지는 막연히 남들 걷는 길처럼 정해진 길을 걸으려고 했다? 석사를 졸업하면 공무원 시험을 쳐서 학예사가 된다던지, 아니면 취업준비를 해서 관련재단에 간다던지.
그런데 그게 ‘이런 일을 하고싶어’ 라는 뚜렷한 목적성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이걸 했으니까. 그런 길을 가는게 정석이니까’ 라는 무의식이 있었어. 하지만 여기서 6개월 살면서 이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니까 꼭 그게 정석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좀 더 보람차겠다 하는 조금은 더 뚜렷해진 방향성이 생긴 것 같아.
마지막으로 Up(業)Side 독자분들께 한마디 해줄래?
음..좀 꼰대 같을 수도 있지만ㅋㅋㅋ 영국박물관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정말 멋진 일만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허드렛일도 많이 해요. 수장고에서 힘도 많이 써야하고 먼지도 많기 때문에ㅋㅋㅋ항상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도 입어야해요. 보이는 것과 실제는 굉장히 다르다는것. 또 혹시 지원을 하실 분이 계시다면 정말 연구가 하고싶고 영국박물관 유물을 잘 활용해서 공부하고 많이 배워가야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지원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나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업사이드 팀을 통해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릴게요.
“친구야~ 난 정말 런던에서 지내고 영국박물관에서 일을 한 6개월이 내 인생에서 엄청 기억될 것 같아. 정말 말 그대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랄까? 일도 하고 사람들 사는 것도 보고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은 것 같아. 그만큼 나 자신도 많이 돌아보게 됐어. 아까도 말했지만 막연히 ‘그냥' 이라는 말을 붙이며 그냥 그렇게 걸으면 안되고 좀 더 나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고 많이 느껴.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했을 때 뿌듯함을 느끼는지 말이야.” 라고 말하며 다시 업무로 복귀한 인터뷰이.
인터뷰이와 사적으로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는데, 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칭찬할 건 칭찬하고 발전시킬 부분은 또 발전시키는 모습이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인터뷰이는 또 명언제조기인데 그녀가 필자에게 해줬던 가장 인상깊은 말.
‘존버(독하게 버티기를 속되게 이른 표현)를 하려면 뿌리가 탄탄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원래 시간이 걸리는 법이야. 하지만 우리는 작년보다 1년의 연륜과 경험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으니?’
인터뷰이에게 6개월의 경험이 생겼으니 인생의 다음 레벨을 향해 더 힘차게 내딛길 바라본다!
Disclaimer
Up(業) Side의 인터뷰는 개인적 경험 및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특정 회사의 상황이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