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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Nov 03. 2022

테라스에 시든 상추.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지윤



집에 작은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에 나름의 농사를 해본다며 상추, 토마토, 깻잎, 고추 모종을 심고, 옆에 비어있는 공간들도 채운다며 작은 나무들과 꽃도 함께 심었다. 그렇게 열심히 심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상추나 토마토, 깻잎들은 다 시들었다. 심는 것보다 키우는 게 더 중요한 거였는데 '육아하기 바쁘다, 일하기 바쁘다, 운동하기 바쁘다.' 오만 핑계들로 물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으니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다음엔 꼭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테라스에 죽은 식물들을 다 치웠는데 몇 달 뒤 우연히 그 자리에 상추와 토마토가 다시 자라고 있는 걸 봤다. 치우는 것마저도 대충 한 우리 부부 덕분인 듯했다. 물론, 다시 자란 아이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키우지 않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흙을 더 파서 작은 뿌리들까지 하나하나 치웠다. 이 날 다시 자란 상추와 토마토는 그냥 새로운 모종을 사 와서 심으려 했던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실패했다고 그냥 포기하는 게 다가 아니라, 실패한 자리도 정리해줘야 하는 거구나- 




자영업자가 되기 전,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회사를 다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다시 취업. 퇴사한 그 자리를 한번 되돌아보며 왜 내가 그만뒀는지를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이래서 안 맞고 저래서 안 맞다며 안 맞는 이유들로 자기 합리화를 했던 시간들. 시들어 죽은 상추를 대충 치우고 새로운 모종을 심으면 다시 자라겠거니 했던 거다.



실패의 자리를 다시 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성공할 리가 없는 방법이었다. 



벤츠같은 직장이 나에게 오기만을 기다려왔다. 부단히 취업의 문을 열면 방 안에 황금빛 미래가 있는 줄만 알았던 나는 지난가을 아이를 낳고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 과거의 실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처음으로 가졌다. 태어난 지 한 달이 겨우 지난 아기를 재우고 혼자 소파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얼마 전 깨끗하게 치웠던 테라스가 눈에 보였다. 



"이대로 다시 직장에 돌아가면 난 같은 실패를 경험할 거야."


지금의 시간을 기회삼아 죽은 상추와 토마토를 뽑고, 흙을 다시 다지고, 거름도 주며 건강한 밑바닥을 다졌듯이 내 실패들도 다시 치우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실패의 이유를 눈으로 바라보니 파묻힌 흙속에는 하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일에 대한 후회가 있었다.


"누가 나에게 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한테 물을 줘야지."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는 처음으로 실패를 마주 보고 실패의 이유들을 찾았던 그날. 똥차가 가면 벤츠가 온다길래 오는 차들을 기다리기만 했던 내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던 그날. 후회를 만났던 그날의 나에게 '그래, 이렇게 자라고 있는 거야.'라고 격려를 해주는 책이었다.





"그냥 마음을 달리 먹어 보기로 했다.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는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잘하자!' 앞에서는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고, '하자!'앞에서는 이게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드는 나에게 '자라고 있을 거야.'라는 말은 가장 정직한 힘을 주곤 했으니까."


잘 살고 싶었다. 잘 사는 방법은 잘 몰랐지만 돈을 잘 벌면 되는 거구나 싶어, 더 많이 버는 방법만을 찾아다녔던 나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해보지도 않았다. 


시작해보지 않았던 것, 

그 자체가 실패의 이유였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무엇에 닿으려 하기보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줄 아는 마음을 잃지 말라고. 언젠가 무엇이 되려 조급해 말고,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근사한 시간을 보내라고."



흙속에 묻힌 후회가 있는 사람들에게 엉성하게 덮혀져 있는 실패들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름을 주라고 이야기해주는 책. 


이 책이 말해주듯 앞으로는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나에게 물도 주고, 새싹이 나길 응원하며 다가올 봄 다시 자랄 꽃들을 기대해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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