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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Nov 12. 2022

아기를 낳고 안경을 바꿨다.

밀레니얼 패밀리의 탄생, 채자영 x이영주



아기를 낳으면 시력이 안 좋아지나? 출산한 이후 유난히 눈이 퍽퍽하고, 잘 보이던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나 같은 산모들이 많아서 언젠가 다시 시력이 돌아오겠지 하며 걱정은 덜었지만, 반년이 지나도 나빠진 시력은 좋아질 틈이 없어 보였다.


결국 가끔 쓰던 안경을 새로 맞추기로 했다. 아기를 낳고 날 위해 처음으로 바꾼 건 옷도, 신발도 아닌 안경이었다. 안경을 바꾸자 흐릿하게 보이던 글자가 선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걷던 집 앞을 바뀐 안경을 끼고 걸었더니 바깥 풍경도 달라 보이고, 길을 걷는 내내 여행 온 기분처럼 설레었다.


집 앞에 이런 꽃도 있었나. 보이지 않던 꽃 보이기 시작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눈에 차기 시작했다. 고작 안경 하나 바꿨다고 모든 일상이 처음처럼 느껴지는데, 진짜로 처음인 것들이 가득 찬 도하는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낼까?


처음 셋이서 외출한 날, 처음 셋이서 여행 간 날, 처음 셋이서 외식을 한 날, 처음으로 셋이서 사진을 찍은 날. 우리 부부에게는 셋이라 처음이 되고 의미가 생긴 일이지만 도하에게는 정말로 모든 게 처음인 순간들. 이제 막 한 살이 된 도하는 정말로 매 순간이 새롭고 신기한 날들일 거다.




아기를 낳고 떨어진 시력,

새로 맞춘 안경,

모든 게 새로워 보이는 날들,

우리의 처음 그리고, 도하의 처음.


<밀레니얼 패밀리의 탄생>도 아기를 낳고 많은 게 바뀐 나처럼 초보 엄마 아빠의 출산과 육아를 이야기한다.


"나를 너무 사랑하고 일을 너무 사랑하는 한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임밍아웃'을 하고, 임신한 상태로 일터에 서고, 출산을 하고 키운다는 것. 그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일인지! 과거의 두려움 따위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정말 알지 못했다."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갔을 때 이 책의 작가처럼 나 역시 매일 밤을 울었다. 조리원을 나가고 싶다고 말하자 주변에서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후회할 거라고 계속해서 말렸다. 난 가만히 누워있는 조리원의 일상이 너무 지겨웠고, 답답한 조리원의 공기가 너무 싫었다. 결국, 조리원에서 2주의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10일 만에 나온 나란 사람.


사실 나도 다른 사람들의 말이 신경 쓰여 조리원을 다 채우지 않고 돌아가면 힘들지 않을까 속으로 많이 걱정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집으로 돌아간 날 남편과 처음으로 아이를 돌보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아기 목욕법을 유튜브로 공부했다는 남편이 도하를 씻기는데 모든 게 엉성해 그저 웃음만 나오고, 트림을 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두드리는 게 맞나 하며 한참 연구하기도 했던, 힘든지도 모르고 그저 재밌었던 날들.


물론 재미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낮에도 밤에도 세 시간마다 깨는 아기에게 수유를 하기 위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깨어있는 게 현실인건지 꿈에서 깨어있는 건지 구분이 힘들었던 날들도 참 많았다.

 


"아기를 키우면서 종종 놀라는 순간이 있다. 문득문득 만져지는 단단한 육체에서 '언제 이렇게 큰 걸까'하는 생각과 함께 '조금만 천천히 자라줬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성장 속도는 정말 놀랍도록 빠르다. 육아가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만 또 그렇다고 내가 두려워한 만큼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따라가는 일이 여전히 버겁기 때문이다."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모든 날 속에서 아기는 정말 빠르게 컸다. 책에서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는 말 나오는데, 요즘은 절실히 이해가 간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지금의 도하가 더 크면 내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날이 올 테니깐. (상상만 해도 무서운 순간이다...)


이런 나의 무서운 마음도 당연한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책. <밀레니얼 패밀리의 탄생>은 초보 엄마 아빠들의 고민을 담았고, 매일이 신기한 순간들을 기록했다. 누군가의 기록을 보며 공감을 하고 위로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독립출판물의 매력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


다른 사람의 육아가 궁금하다면, 육아 브이로그 보듯이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게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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