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가들을 대처하는 방법
며칠에 한번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 있다.
정확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행복이 별거겠는가.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행복이지.
그래, SoSo한 그런 날 말이다.
새벽의 찬 공기도 시원하게 느껴졌고
뚝섬까지 가는 택시비도 전혀 아깝지 않은 날이다.
당시 나는 택배 상하차 알바에서 하차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10kg이 넘는 상품이 머리 위에 있어 짜증이 잔득 난 상태일텐데
어째 내리는 물건이 전부 가벼웠다.
이대로 아침 여덟시, 여섯 시간만 버티면 된다.
상하차만 10년 했다는 그 사람(나이가 서른인데 군대갔다오면 10년은 뻥이겠지만) 이었다.
나한테 일당중독 조심하라고 말했던 그 사람.
그는 목소리도 크고 몸집도 거대했다.
평소에는 예의도 바르고 착한 심성인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일단 화부터 내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을 “퇴행성 애정결핍”이라고 불렀다.
그런 병명이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내는 이유도 참 많은데
하루는 누가 자기한테 인사를 안했다고 화내고
하루는 자기가 하차를 열심히 하는데 나머지 다섯 명이 느리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하차를 빨리 하는데 라인에서 소분이 늦어 막힌다는 게 이유였고
어느 날은 자기가 하차를 하는데 여성들은 저 뒤에서 가벼운 일을 한다고 화가 났다.
기억나는 한 가지는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캠프에서 자기를 고마워하지 않는 다는 거였다.
아무튼 그 날도 또 뭐로 화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유치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에겐 정말 큰 일이었겠지.)
그는 거세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물건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킹콩처럼 말이다.
상품이 부셔져라 자동레일에 물건을 던졌다.
다른 하차 사람들은 그 사람 때문에 물건을 놓는 타이밍을 놓쳐서 흘렸다.
라인에서도 물건 집어 던지는 관경을 구경했다.
반장은 그 사람을 못 말리는 건지 안 말리는 건지...
결과적으로 하차 속도는 그 사람 덕분에 빨라졌다.
혼자 다 던져버리니까.
원래 다른 사람의 기분에 민감한 성격이라 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시작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저게 화낼 일인가 싶다가 화가 날 수도 있나 생각하다가
맘에도 없는 격려도 해주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냥 그 분위기가 흐르는 게 불편해서 한 말이다.
사실 힘들기는 다 같이 힘들고 짜증도 다 같이 나 있는 상태인데
그 사람의 "꼬라지"가 먹히는 걸 보면서 억울하기도 했다.
신금일주(辛金日柱)라 그런지 화내는 사람이 참 불편하다.
결국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박혀버렸다.
기분 나쁘면 한 마디 하면 될텐데 왜 난 또 아무 말도 못하는 걸까.
거대한 덩치에 완빤치 맞으면 훅 갈 것 같아서 그런가.
그 사람이 화내는 이유가 납득되기 때문인가.
이미 내 앞엔 손석희가 사회를 보고있었다.
아니다.
그냥 감정을 소모하며 싸우기가 싫었고
분위기를 더 악화시키기 싫었고
저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보니
비단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남자만 모인 곳이라 그런지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하차에서 물러나 다른 역할을 맡고 보니
소리 지르고 집어 던지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여기선 목소리 크고 액션이 좋은 사람이 이긴다.
물건을 발로 차고 집어던지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 그들을 행위예술가 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캠프에 불을 지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내일부터 안 나온다면서 자기 안 나오면 캠프 물류가 막힐 거라고 장담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내일 반드시 나온다.
그리고 신기한 건 결국 반장은 그런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오히려 정중히 요구하면 무시당한다. 3
즉 이곳에서 화는 아주 효과적인 대화수단이다.
좋아하는 형에게 고민을 털었다.
그 사람이 화내는 것 때문에 일이 너무 힘들다고.
“야, 그 새끼 좆도 없어. 신경 쓰지 마.”
그러고 보니 형은 누가 화를 내면 그러거나 말거나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누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꼬장 부리고 있는데 그 옆을 태연하게 지나간다.
“그냥 너한테 뭐라 하는 거 아니면 없는 취급해.”
그러게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곳엔 이어폰 끼고 일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걸 발견했다.
감정 전염://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 말투, 목소리, 자세 등을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자신과 일치시키면서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경향을 의미한다.
나는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인 거고 특히 화라는 감정을 너무 어렵게 받아들인다.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전염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만들어 낸 말이 ‘감정면역’이라는 단어다.
“그랬구나.”라는 말로 타인의 감정을 흘리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려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대로 오늘, 지금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단절시킨다.
나는 화내는 사람을 속으로 욕한다.
아주 저열한 존재라서 상종할 가치가 없고 이해할 가치가 없다.
저런 인간이 되지 말자.
잡아먹히지 말자.
그의 무례한 분노에 내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분노란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고 도구다.
화가 많은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분노 말고는 없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