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류의 책은 성공한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일하는 방식, 조직문화, 그들의 성공스토리 등을 풀어낸 책을 말한다.
예를 들면, ’ 넷플릭스 인사이트‘, ’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파타고니아‘, ‘배민다움’ 같은 책들 말이다. 이런 류의 책을 신간이 나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읽던 때가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가로 살던 시절에는 ‘조직문화’를 강조할만한 규모의 회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의 생각은 틀렸다. 조직문화는 구성원의 수가 적을 때부터 고민하고 하나씩 원칙을 정착시키고 그에 맞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당시에는 창업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게 전무하다 보니 내 눈에 근사한, 성공한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배우고 필요한 부분만큼 모방하면 나도 성공한 스타트업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표가 처음이라 모든 것에 학습이 필요한 신생아와도 같은 상태였지만, ‘나도 유니콘 스타트업 만들 수 있어!‘라는 패기만큼은 남부럽지 않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부끄럽다.)
두 번째 창업한 회사를 시원하게 접고(말아먹고) 다시 직장생활로 돌아갔을 때 입사하자마자 회사가 인수합병 대상회사가 되었는데 당시에 두 회사의 인사제도와 조직문화를 분석하고 합병사에 적합한 방향을 도출하는 일을 리드하게 되었다. 50명 규모의 DT컨설팅 회사와 대기업 IT계열사의 합병을 통해 그룹 내 DT전문기업의 탄생을 기대한 합병이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시스템이나 사업 컨설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고, 합병 프로세스가 끝나면 원래 직무로 곧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 달리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 필요에 의해 나는 인사총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는 무엇을 믿고 나에게 인사를 맡겼을까. 정말 위험한 선택이었다.)
나는 ‘인사’라는 업무를 사용하거나 당하는 사람이었지, 실행해 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스타트업 대표일 때는 너무 작은 조직이었고, 인사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그날그날 해내야 할 일들에 쫓겨 살았다. 그러니 인사 관련 지식이 전무했고, 철저히 학습하고 그간의 짬밥을 통해 만들어내야 했다. 물론, 전문 인사컨설팅 전문가를 모시고 말이다.
그 열심히 학습한 내용 중에 ‘이런 류의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의 미션이 기존의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합병 조직의 비전’에 맞는 ’ 혁신적 실행이 가능한 조직문화‘를 세팅하고자 함이었기 때문에 유니콘 스타트업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엔 ‘일이 무엇이냐가 중요한가, 일하는 방식이 중요하지!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딨 어 ‘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안 되는 일은 없는데 내가 되게 하려면 힘든 일은 분명히 있다.
조직문화와 인사제도에 관련해 꽤 많은 종류와 분량의 책들을 읽고 학습한 후
첫 번째는 외부인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쓴 책은 결과론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글쓴이가 관련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거나 관련된 사례를 연구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관련 학과 교수 등 전문가인 경우가 다수이니 그 내용은 알찰 것이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이 분명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외부인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현재의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알기 어렵다. 결국 제시한 성공방정식은 결과론적이라는 것이다. 성공하고 돌아봤더니 이것 때문이더라 또는 유니콘이 된 현재의 아름다운 상태를 정리해 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타트업의 성장기는 잦은 전쟁의 상흔을 딛고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에 가까울 것인데 외부인이 현재의 멋진 건물을 어떤 양식이다, 어떤 용도의 건물이다 식으로 써놓았으니 어떻게 무너짐과 올림을 해왔는지 그 문제해결 과정에서의 힌트를 얻을 수도 공감을 하기도 어렵다.
두 번째는 그때 그들에게는 맞고 지금 나에게는 틀리기 때문이다.
모범답안처럼 제시하는 그것이 당시에, 그들에게만 통했던 방법이 아닐까?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공감하는 것이 있다. 한 번 성공한 창업가가 다시 같은 방법론으로 창업을 한다고 해서 성공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실패한 창업가가 다시 창업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다. 사업, 특히 스타트업 창업에서 실패하지 않는 것이 곧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성공은 해당 업의 시장상황과 타이밍, 팀 구성과 그에 맞는 문화, 자본 조달 등 많은 요소들의 합이 잘 맞았을 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 기업의 결과론적인 성공방정식을 학습하는 것은 남의 연애사를 듣고 내 연애에 대입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사업에서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없다.
사업의 성공은 다른 말로 하면 지속가능성 실현이다. 현재도 그 지속가능성을 위해 매일 싸우고 있는 스타트업이 아름다운 디즈니 동화의 마지막장처럼 ‘우리는 성공했어!’라는 종착지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콜린스는 후속작으로 위대한 기업의 몰락과정을 분석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를 출간했다. 저자가 전작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언급한 기업을 포함,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살아남은 위대한 기업과 몰락한 위대한 기업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글을 썼다. 위대한 기업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미리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니 그 이후로 쭉 행복했을지 ‘잔혹동화’가 펼쳐질지는 가봐야 아는 것.
이런 이유들로 아름다운 성공스토리보다는 기본 충실한 교과서를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2-3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이렇게 회의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련 서적을 짧은 기간 너무 많이 읽어서 성공 스토리에 대한 감흥이 떨어진 탓도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류의 책’으로 보이는 토스의 ‘유난한 도전’을 읽게 된 건 지인의 추천도 있었고,
지난 1년 3개월 동안 적응이라고 부르며 조금씩 전투력을 상실하고 보스의 평가에 일희일비했던 대기업생활을 청산하고 스타트업 DNA를 깨우고 싶은 바람이 아니었을까.
어느 스타트업이 스펙터클 대환장 고생 스토리가 없겠냐만, 이 책은 그 전달 방식이 다르다.
이 책은 아름다운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군분투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2020년에 토스에 입사한 토스팀의 콘텐츠매니저가 지나온 그들의 궤적을 듣고 쓴 책이다. 전현직 토스팀 멤버들 35명을 인터뷰했고, 큰 이벤트와 사건들, 토스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슬랙의 채팅 내용까지 꺼내어 최대한 가공 없이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내용들은 첨예한 내부 갈등과 이승건 대표의 문제 접근 방식에 대한 묘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떠올리기 싫은, 낯부끄러운 실수와 실패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극복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 이야기다.
도전과 실패와 성공의 반복이 켜켜이 쌓인 나이테 같은 이야기다.
외부로 알려진 오해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애플이 없었을 것처럼 이승건이 없었다면 토스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스타트업의 성장, 특히 초기 성장은 대표 성향과 리더십이 중요하다.
하지만 토스의 간편 송금 탄생기가 어느 날 똑똑한 대표가 세상에 나타나 금융을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뚝딱뚝딱 손으로 빚어 세상에 태어났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8전 9기의 결과물이었고, 토스 간편 송금 서비스는 당시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아이디어였으며, 문제해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금융혁신의 출발점이 된 여느 스타트업들과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지금의 토스가 되기까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실패, 몰라서 겁 없이 도전했던 실수,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의 해결, 시장의 판을 바꿔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승건 대표는 그 과정에서 조직 구성, 의사결정 방식, 회사 운영 방식을 빠르게 실행하고 실패하고 수정했다. 토스팀은 애자일(Agile) 그 자체였고, 2000명이 된 현재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네임밸류가 없던 시기부터 원칙에 가까운 조직문화를 지키기 위해(조직문화에 맞는 인재를 찾기 위해) 외부로 알려진 것처럼 잔인해 보이는 스트라이크제도를 통한 인재채용 역시 그 일환이었다고 보인다.
(이미 유명해진 지금은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하에 이 제도는 현재는 사라졌다고 한다)
이승건 대표의 고심도 컸지만 팀원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승건 대표는 그 어렵다는 책임과 권한의 위임을 실천하고 팀원들도 그것을 제대로 행사하고자 노력한다.
이 책은 토스팀이 겪은 큰 사건들을 설명하고, 그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처음부터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회사의 원칙에 대해 따로 정리해두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두 번의 창업을 실패한 나에게 토스팀의 이야기는 위로이자 좌절이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매일 스스로의 부족함을 경험한다. ‘그때 내가 이랬다면…’이라는 가정과 상황의 복기는 늘 나의 부족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스스로 가장 무능하고 대표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그러다 인생을 걸고 뛰어들었던 일을 스스로 접고 나면 한동안 그 늪과 같은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승건 대표도 치과의사를 쿨하게 때려치우고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금수저(?)가 아니라 안정된 길과 도전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진정한 창업가가 된 성장형 인재였다.
이승건 대표도, 유니콘 스타트업의 대표님도 나와 비슷한 감정의 흐름을 경험하며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버텨왔구나 싶은 생각에 위로와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왜 저만큼의 용기와 결단, 집념과 노력이 없었나에 대한 좌절, 자책이 따라왔다.
분명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을 테고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에 생각하게 되었고 ‘만약에’라는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오랜만에 자책이라는 감정을 맛보았다.
그 기회를 기회로 보고 성공신화를 썼느냐, 포기하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갔느냐가 이승건 대표와 나의 차이겠지.
토스팀의 ‘유난한 도전’은 나에겐 ‘이런 류의 책’들과는 다른 살아있는 이야기였고, 그들의 일에 대한 애정과 몰입을 보여주었고, 지속되고 있는 이야기다.
일중독자 대표와 투자금으로 성과급 쏘는 연봉 높은 회사가 아닌, 매일 성장하는 대표와 팀원, 그 구성원이 되려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원래도 토스 유저였던 나는 조금은 팬심으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영혼 빼고 다니면 이만한 직장이 없다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고, 이게 절대로 안 되는 나에겐 그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이기에, 대기업에서 초기 스타트업의 사업전략총괄로 자리를 옮긴다.
정말 초기 스타트업이고 창업멤버에 가깝기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이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이 사실은 나를 설레게 하면서 동시에 두렵게 만든다.
나는 과거에 했던 시행착오를 하지 않을 것인지, 과거처럼 또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 이번엔 내가 그토록 바랬던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 무엇도 확신이 없다.
다만 그때보다는 좀 더 단단해진 문제해결자로 한 발씩 지치지 않고 나아가길, 우당탕탕, 우다다다 하는 나를 스스로 격려하고 자책하지 않으면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토스팀 #toss #유난한 도전 #리뷰 #스타트업 #창업생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