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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18. 2020

하영과 연우 남매의 해맑은 웃음에서 받은 위로

코로나가 문제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올 한 해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우울에 갱년기 증상까지 겹치는 바람에 정신건강이 매우 위태로웠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애꿎은 가족들에게 가시 돋친 말만 쏘아대는 것으로 하루를 채운 날이 많았다. 공부 중압감에 시달리는 딸에게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 딸을 더 서럽게 만들고, 남편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격한 과민반응을 보였다. 연말이 되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마음이 진창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 한 해였다. 


특히 불면의 밤이 가장 힘들었다. 설핏 잠들었다가 두, 세 시간 만에 깨는 때가 많았고, 깨 보면 끈적한 식은땀이 어찌나 찝찝한 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정신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져서 다시 잠들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 깨어난 아침엔, 당연히 몸은 천근만근이고, 눈은 안구에 모래라도 깔린 양 까끌거려 시리기만 하지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아침 해가 떴건 말았건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가족들의 아침식사를 위해 일어나야 하는 게 어찌나 버겁고 짜증스럽던지... 이불 위에 마치 커다란 바위라도 놓여있는 것처럼, 그 무거움에 짓눌릴 뿐 도저히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보려고, 머리맡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맥없이 세상의 이런저런 소식들한테로 애써 관심을 돌렸다. 어수선한 소식들 가운데서도 일순간이나마 짜증과 버거움을 잊게 만드는 반가운 소식들이 종종 있었다. 언제 봐도 멋진 퍼포먼스의 BTS와 잉글랜드 북런던의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활약상 소식이다.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데도 세계적 팬덤이 형성되고, 그에 힘입어 빌보드 뮤직 어워드 등 각종 상을 휩쓰는 BTS가 참 자랑스러웠다. 잠깐의 부상과 코로나 감염위험을 잘 넘기고, 최근에도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멋진 원더골을 터트린 손흥민 선수의 소식도 언제나 반가웠다. 코로나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열정적으로 빛나는 그들은 한 줄기 쏟아지는 햇살처럼 고마운 소식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축 처져있던 나를 정작 침대 밖으로 나가도록 도와준 사람은 바로 도경완, 장윤정님댁 하영이와 연우 남매였다. 하영이와 연우를 눈길로 쫓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며 일어날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매는 지상파 방송에서 매주 일요일 밤 방송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이다. 우리 집엔 TV가 없어 인터넷으로 화제가 되는 짧은 영상들을 간혹 접할 뿐인데, 어느 날엔가 우연히 '얜 누구지?'하고 호기심에 클릭했다가 남매의 사랑스러움에 단박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후로 월요일 아침마다 '이번 주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남매 영상을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랜선 이모가 되어버렸다.


한 영상에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연우가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하영에게 벽에 붙은 한글과 그림을 가리키며 읽어준다. 볼살이 오동통한 하영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귀엽다. 동생의 표정과 짧은 옹알이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대번 알아듣는 연우는 어쩜 그리 의젓하고 대견한지 모른다. 연우가 호랑이를 가리키고 어떻게 우냐고 묻고, 기린을 가리키고 어떻게 우냐고 물어도 하영이는 연신 "냐~옹~"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래도 연우는 "아유, 우리 하영이 잘하네."라며 동생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해주는 상냥한 오빠다. 그런 둘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엄마 미소가 배시시 지어지고 피곤함과 짜증으로 꽉 차 있던 마음에 살며시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의 해맑았던 시절도 덩달아 소환된다. 우리 집 남매도 어릴 적 사이가 좋았는데, 큰 애가 5살 무렵 2살 되는 동생을 제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장난스럽게 읽어주곤 했다. 마치 엄마가 자신에게 읽어준 것처럼 자기도 동생에게 내리사랑을 전해주는 듯 보여서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는지... '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녀석들이 자라서 지금 마냥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구나. 에고, 일어나야지.' 하며 불면의 피곤함을 떨치고 몸을 일으켰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순전히 연우와 하영이가 보여준 해맑은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매의 해맑은 순수함에 더해 귀여운 앙증맞음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무거나 잘 먹는 일은 아주 고마운 일인데, 하영이는 정말 잘 먹는다. 특히 무엇을 먹든, 먹고 나서 반응이 환상적이다. 요즘엔 말문이 틔여 표현도 다양해졌다. 자장면 가닥을 끊지 않고 주욱 빨아들이고는 방글방글 웃으며 "요놈들 맛있다!" 하질 않나, 탕수육을 처음으로 소스에 찍어먹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놀란 표정으로 "헤에, 대박 맛있다. 이거!" 하며 감탄을 한다. 엉겁결에 꼭 꼭 씹어먹은 양파는 아린 매운맛이 올라오자 뱉어내고는 "하아, 쫌 매웠다"며 계면쩍은 듯 하하 웃는다. 자연스레 나도 하영이를 따라 소리 내어 웃게 된다. 그렇게 웃고 나면 신기하게도 무거운 바위에 짓눌리는 것 같던 기분이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춰 버리곤 했다. 


하영이의 이런 다양한 감정톤과 어휘들은 아나운서 아빠한테 보고 배운 것일까? 하긴, 도경완 님이 유달리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재치 넘치는 사랑꾼 아빠이긴 하다. 기회만 있으면 부인에게 대놓고 낯간지런 애정 멘트를 날리니 말이다. 불에 탄 떡갈비를 보고 부인에게 자기 마음도 타고 있다는 뜬금 고백을 하고, 부인과 살면서 하루도 여유로운 적이 없었다는 이유가 '늘 사랑하기 바빠서'라며 헛웃음 터지는 멘트를 태연하게 날린다. 장윤정 님도 지지 않는다. 생일선물로 뭘 가지고 싶냐는 남편의 물음에 "난 다 가졌어. 널 가진 이후로"라며 눈 찡긋하는 큰 윙크와 손 화살을 날린다. 가히 부창부수다.


이 가족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최고조로 표현하는 방식은 네 명이 모두 부둥켜안고 볼을 맞대며 동시에 서로의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붓는 때이다. 둘이 하면 뽀뽀, 셋이 하면 세뽀, 넷이 하면 네뽀라고 부른다. 어쩜 말도 이리 귀엽게 척척 잘 만들어내는지! 우리 가족도 세뽀까지는 자주 했더랬는데... 다 큰 녀석들을 보니 아휴, 그런 날들이 언제 있었나 싶다. 


이 가족을 보고 있자면, 들어주기 오글거리는 사랑 멘트와 매번 한도 초과하는 화기애애함에 나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게 당연했다. 하영이, 연우 영상으로 시작한 아침은 확실히 다른 날보다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힘들고, 짜증은 불시에 또 날 테지만, 나도 내 가족들과 알콩달콩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먹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어느 시간이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을 상기하며 말이다.


아이들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세월이 지나도 좀체 잊히지 않는 사랑스러운 기억들이지 싶다. 그런 기억들은 스냅사진처럼 장면, 장면 찍혀 가슴에 오래도록 간직된다. 그런 선물을 품고 살면서도 때론 몸과 마음이 힘들어 가족들의 소중함을 자주 놓치는 게 다반사다. 여러모로 힘들었던 올해, 월요일마다 하영이와 연우의 보배 같은 사랑스러움을 만난 덕분에 많이 웃고 가족의 소중함도 되살릴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하영이랑 연우랑 새해 복 많이 받고, 내년에도 건강하고 많이 많이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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