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그야카르타
예술은 때로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가 외면해 온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불편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예술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고, 정책적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침묵하는 때에 목소리 내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자원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른바 '급진적 예술'은 도시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급진적 예술'은 비판적이고 실험적이고 비순응적이고 비시장적인 예술을 통칭한다. 사실 이 표현이 정확한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여기, 제도에 맞춰 순화되거나 시장에 맞춰 가공된 것이 아닌, 그렇다고 소수의 이해관계 속에서만 이해되는 것도 아닌, 비판적이고 혁신적인 예술 그 자체로 지속되고 있는 도시 '요그야카르타'가 있다.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요한 거점으로 언급되는 이 도시의 사례를 통해 급진성과 공공성, 실험성과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예술이 도시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전히 술탄이 상징적 권위를 지니는 특별자치지역이면서, 동시에 대학 도시의 성격을 띠는 요그야카르타는 대규모 재생 프로젝트나 상징적 랜드마크가 아닌, 실천적 예술이 자라난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되며 인도네시아는 급격한 민주화의 국면에 들어선다. 거리와 광장은 정치적 표현의 장이 되었고, 노동·토지·군부·권력 같은 문제가 공공의 의제가 되었다. 이 시기의 사회적 긴장과 에너지는 예술가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의 예술은 더 이상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고,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름을 드러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보다 토론과 협업의 과정을 중요한 형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이 도시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를 뒷받침 해준 공간과 제도가 있었다. 그 역할을 해온 대표적인 곳, Institut Seni Indonesia Yogyakarta와 Cemeti Art House에 대해 알아보겠다.
요그야카르타의 예술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Institut Seni Indonesia Yogyakarta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는 예술 교육 기관 중 하나로, 수십 년간 수많은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공연 예술가들을 배출해 왔다. 그리고 젊은 창작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입시키는 통로이기도 했다. Institut Seni Indonesia Yogyakarta를 통해 유입된 학생들은 서로의 작업을 보며 토론하고 협업했다. 그리고 졸업 이후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요그야카르타에 남았다. 수도 자카르타보다 낮은 생활비와 비교적 느슨한 도시 분위기는 막 작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시간을 허락했다. 당장 판매가 되지 않는 작업도, 제도에 외면받을 수 있는 실험도 일정 기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도 한몫한다. 작업실은 자연스럽게 공동 작업실이 되고, 수업은 토론의 장이 되며, 캠퍼스 밖 카페와 거리까지도 때에 따라 비평 공간이 된다. 이러한 밀도 높은 관계망은 집단적 실천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그러나 창작자가 많다고 해서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단적 에너지와 그 실험들이 도시 안에만 머문다면 쉽게 소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설립된 Cemeti Art House는 이러한 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공간은 독립적인 현대미술 공간으로 출발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국제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다. 전시뿐 아니라 워크숍, 연구 프로그램, 레지던시 운영 등은 단순한 발표의 장을 넘어 학습과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지역에서 형성된 실험적 작업들은 국제적 담론과 만날 수 있었고, 예술가들이 전적으로 시장 판매에만 의존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등장한 집단 중 하나가 Taring Padi이다. 이들은 1998년 민주화의 격변기 속에서 결성된 예술 집단으로, 예술을 정치적 표현이자 교육의 도구로 다뤄왔다. 이들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cukil(목판화) 기반의 포스터·판화·대형 배너 작업이다. 손으로 찍어낸 이미지는 빠르게 복제되고, 쉽게 배포되며, 가시성도 좋았고 직관적이었다. 그야말로 '거리'에 적합했던 것이다. Taring Padi의 작업은 대체로 다수가 함께 모여 토론하고 제작하고 배포하는 과정을 포함했다. 즉, 이들이 만든 것은 예술품이라기보다 집단적 실천의 결과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천적 예술이 언제나 긍정적 효과만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작업으로 언급되는 People's Justice(2002)는 원래 인도네시아 군부 독재와 권력을 풍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독일에서는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작품 속 일부 인물 표현이 반유대주의적 이미지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단체는 사과했고 작품은 철거되었다.
우리 사회의 여러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다각도의 시각과 비판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한다고 생각하고, 서로 다른 해석과 문제 제기가 공존할 때 우리 사회가 한 방향으로만 굳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구호나 진영 논리를 넘어, 요그야카르타와 같은 방식으로 담론이 형성되고 지역의 현안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시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더 큰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하나의 생태계로 자리 잡는 경우는 듣지 못했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작은 실천적 예술이 고립되지 않고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구조, 당장 시장에서 환영받지 않더라도 시도하고 지속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실패와 논쟁까지 감당할 수 있는 네트워크. 이런 요그야카르타를 보며 한국의 어느 도시에도 그러한 토양이 마련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지역의 작은 실천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연결되며, 정치적 진영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사회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예술은 사회를 더 다채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