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엄마의 방학이 무서운 이유

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26

by 이루나

펭귄 엄마는

방학 공지받는 날이 제일 무섭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도 아니고,

빙하가 무너지는 날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날만 되면

가슴이 먼저 서늘해진다.


"방학! 방학! 방학이에요!"


아기 펭귄들이 소리를 지르며,

들뜬 나머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기대에 가득 찬 동그란 눈으로

펭귄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 방학이래요!"


펭귄 엄마는

"방학이라 좋겠네?"라며

웃으며 대답했지만,

어쩐지 미소 뒤엔 정적이 있었다.


방학은

아이들에게 놀이터처럼

신나고 재미있는 날이지만,

펭귄 엄마에겐

결코 기다려지는 날은 아니었다.


방학 첫날은 괜찮았다.


아기펭귄들은 늦잠을 잤고,

펭귄 엄마도 오랜만에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아침 해가 빙하 위로 올라올 때쯤,

매일 같이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마, 배고파요."

"엄마, 오늘 뭐 해요?"

"엄마, 나 얼음월드 놀러 가고 싶어요."

"엄마, 나 친구랑 피시룸 가서 놀아도 돼요?"

"엄마, 나 이거 해줘요."


이글루 집 안 곳곳에서는

얼음블록 조각이 발에 밟혔고,

어제 치웠던 자리엔

오늘 또 다른 조각이 있었다.


"놀고 나면 치워야지."

"이거 누가 가지고 놀았어?"


펭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하루에도 수십 번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물고기 저장고는

하루 이틀 버티기가 어려웠다.


"엄마,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아까 밥 먹었잖아."


아기 펭귄들의 배는 시계보다 빨랐다.

물고기 저장고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할 때마다

펭귄 엄마의 마음도 닳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심심해서 싸우는 것 같았다.

"엄마, 형이 먼저 했어!"

"아니야, 네가 먼저 했잖아!"


펭귄 엄마는 두 아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지만

미끄러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아야 했다.


빙하처럼 단단해지려고

늘 애썼지만,

마음속은 녹기 시작한 얼음 같았다.


해마다 돌아오는 방학이었지만,

펭귄 엄마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침을 챙기고,

간식도 챙기고,

젖은 깃털도 말려주고,

떼를 쓰는 아이들을 달래다 보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기 펭귄들 앞에서는

힘들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그 말은

아이들을 원망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방학이 무서운 이유는

아이들이 변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곁에 붙어 있어서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늘 그랬다.

놀고 싶은 나이고,

같이 있고 싶은 나이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 뿐.


무섭다는 건,

그 모든 순간에

항상 '엄마'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펭귄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펭귄이었고,

펭귄이기 이전에는

엄마 품에서 숨만 쉬어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존재였다.


펭귄 엄마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정리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도 엄마 보고 싶다.'


펭귄 엄마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 방학을 어떻게 버틸지.


어느 날 밤,

펭귄 엄마는 잠들지 못했다.

내일을 생각하느라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발등 위 품속에서 살포시 잠든

아기 펭귄들의 체온이 느껴졌다.


펭귄 엄마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그래, 이 방학은 영원하지 않아"

"그리고, 이 무서움도 영원하지 않아."


다음날도,

여전히 아이들은 웃고,

집안은 시끄러웠고,

펭귄 엄마는 쉴 틈 없이

계속 움직였다.


다만, 펭귄 엄마는

어린 시절 자신의 방학처럼,

아기 펭귄들에게도

그런 방학을 만들어주고자 했다.


그게 엄마니까.




눈이 내리는 날이면,

강아지들은 좋아서 뛰어다니고,

아이들은 행복한 세상을 마음껏 누린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드는 어른들은,

추위가 걱정이고,

미끄러질까 걱정이고,

옷이 더러워질까 걱정이다.


어른들에게는,

부모에게는,

엄마에게는,

방학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일까?


그래서, 우리는

내리는 눈을 보며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방학'이란 말만 들어도

셀레던 시기는

누구나에게 한 번쯤은 있었다.


그래서,

그런 방학을 마주한 아이들에게

아주 잠깐이라도

한숨이 아니라,

그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 한 번이

부모로서 매일을 버티게 해 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