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25
늑대 아빠는 새벽이 가장 무섭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시각,
하울링을 하며 늑대의 시간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같은 시각,
늑대 굴 안에서 작은 늑대발소리가
바스락—하고, 스치는 소리만 나도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아빠 아아—!"
첫째 늑대가 그의 배 위로 뛰어올랐다.
이어 둘째가 꼬리를 물어 잡아당겼고,
셋째는 귀를 장난감처럼 발로 쳤다.
늑대 아빠의 하루는
깊은 울림이 있는 하울링이 아니라,
육아의 비명으로 시작되는 하울링이었다.
늑대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늑대는 밤이 되면,
사냥하는 본능이 깨어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잠들 기미가 안보였다.
아기 늑대들은 늑대 아빠 등 위로
뛰어넘어 다녔고,
갑자기 멈춰 서서 아빠 얼굴을 핥기도 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아오오~!"하고 울부짖었다.
늑대의 하울링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이런 아기 늑대들의 울음이
초원에서 들려오는 진짜 포효보다
더 무서웠다.
한 번은 고기 조각을 작게 잘라 주었는데,
아기 늑대가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다.
"이건 싫어! 안 먹을래!"
"어제는 먹었잖아.."
한 입 겨우겨우 잘게 씹어 먹여 넣어주면,
반대편에서 다시 뱉어냈다.
평소엔 들소까지 단번에 제압하던
늑대 아빠가 아기 늑대 한 마리한테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뒹굴었는지
새까매져서 씻기려고 물가로 데려가면,
아기 늑대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서,
늑대 아빠도 물을 다 뒤집어쓰곤 했다.
늑대 아빠는 연신 말했다.
"가만히 좀 있어... 으르르..."
하지만, 아기 늑대는
더 빠르게 도망쳐 놀기 바빴다.
얼마나 빠른지,
사냥보다 더 힘들었다.
'차라리 사냥 가고 싶다.. 이건'
늑대 아빠는 잠깐이라도 휴식을 원했다.
한 번은, 애정한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았는데,
"아빠! 나 이거 봐!"
"아빠! 이거 뭐야?"
"아빠! 배고파!"
"아빠! 저기 이상한 소리 나!"
5분의 고요를 얻으려면
적어도 10번의 "아빠!"를 감내해야 헸다.
고요를 얻기 힘든 날이 더 많기도 했다.
늑대 아빠는
하루 종일 48km 이상을 뛰어도 끄떡없는,
뛰어난 지구력과 추격능력을 갖췄음에도
육아 피로도는 언제나 최상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기 늑대가 매달리고, 울고, 어지르고, 넘어졌기에
한시도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기 늑대가 한 번씩 웃으면 피로가 다 씻겨 내려갔다.
"아빠 냄새 좋아!"
"아빠랑 있는 게 제일 좋아!"
이 따뜻한 말 한디와 아이들의 웃음에
늑대 아빠는 그렇게 매일 버텼다.
늑대는 본래 무리의 리더이자,
냉철한 사냥꾼이지만
그래도,
아빠 늑대는 가정 안에서 만큼은
한없이 연약하고, 부드러웠다.
아기 늑대들의
살아있는 장난감이 되는 걸 자처했다.
굴 안이 여느 때와 같이 아수라장이 된 순간이었다.
그때, 굴 입구에서 낮은 으르렁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아빠 귀에서 당장 떨어져!"
엄마 늑대의 단호한 불호령에
아기 늑대들은 즉시 자세를 낮추고,
꼬리를 몸 안으로 감췄다.
늑대 아빠는 이런 엄마 늑대한테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부러웠다.
자기는 아무리 으르렁거려도
"아빠는 약해~"라며 달려드는 아이들이
엄마의 한마디엔 멈춰 섰다.
"당신 너무 무르게 대하니까 그렇지."
엄마 늑대가 말했다.
늑대 아빠는 억울했지만,
특별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무리에서는 포효도 필요 없었고,
늑대 눈빛 한 번이면 조용해졌다.
그런데,
집에서는 포효보다
육아 스킬이 더 중요했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육아 전쟁.
야생에서 사냥전략이 필요한 것처럼
가정에서의 육아기술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고급 전쟁전략이 필요했다.
늑대 아빠는 굴 밖 산책 중,
이웃 동물들을 만나 육아 고충을 토로했다.
곰 아빠가 당연히 힘든 거라며 말했다.
"아지트 하나 있어야 해.
그래야 숨도 쉬고 그래."
조상 대대로 비법서를 내려받은
며느리 고슴도치가 말했다.
"현명하게 요령껏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지친다니까요."
따라 말하기 좋아하는 앵무새는
옆에서 듣더니 끼어들었다.
"AI한테 물어봐, 노하우 알려줘."
"AI한테 물어봐, 노하우 알려줘."
늑대아빠는 앵무새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 도움이 별로 안 되네"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한편으론,
기댈 곳이 필요하긴 했다.
어느 밤,
그날은 유난히 몸이 무거웠다.
사냥터에서도 실수하고, 먹이실적이 저조했다.
굴에서도 계속 사고가 나자,
늑대 아빠는 점점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아기 늑대들이 또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첫째는 굴 바닥에 흙탕물을 튀기고,
둘째는 사냥감을 숨기느라 곳곳을 파놓았고,
셋째는 아빠의 꼬리에 매달려 잘근잘근 물었다.
그 순간,
늑대 아빠는 사냥터에서도
내지 않았던 목소리로 외쳤다.
"아.. 제발!"
"잠깐만! 1분만, 아빠 좀 쉬자!"
순간, 굴 안은
정적의 공기로 가득 찼다.
아기 늑대들은 깜짝 놀라 멈췄고,
엄마 늑대는 살짝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제야 늑대 아빠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친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저, 다정다감하게
한평생 가족만 위하는 것이
최고라 여겼었다.
잠시 후,
셋째 늑대가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아빠, 힘들었어?"
늑대 아빠는 순간 울컥했다.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며칠간의 무거운 피로를
툭—하고 건드린 것 같았다.
아기 늑대는 아빠의 가슴 옆에
몸을 말아 누웠다.
"그럼, 내가 오늘은 아빠 옆에서 잘게."
늑대 아빠가 아이들이 무서워할 때마다,
옆에서 잘 잘 수 있게 해 주던 행동이었다.
곧이어, 둘째도, 첫째도
슬며시 아빠 늑대 옆에 다가와 기댔다.
늑대 아빠는 자신의 목소리때문에
순간 싸늘해졌던 동굴 안이,
이내 작은 체온들로 포근해짐을 느꼈다.
그날 밤, 늑대 아빠는 깨달았다.
육아는 전쟁이다.
매일 지는 게 일상이고,
지쳐 쓰러질 때도 있지만,
울고, 웃고,
다시 힘을 내도록 해주는 전쟁이라는 것을.
늑대를 늑대답게 만드는 건,
사냥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늑대 아빠는 조용히
아이들의 등을 핥아주며 생각했다.
"나는 강한 사자도, 영리한 여우도 아니지만,
우리 굴을 지키는 데, 이 정도면 충분해."
"오늘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아빠늑대'일지도 몰라."
매일이 전쟁 같은 하루지만,
전쟁이 지나가야
얻어지는 평화와 안정감도 있었다.
육아는 누구에게나 전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장 강하고, 누구보다 순애보인
늑대조차 지치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가장 강해지는 순간 역시,
누군가의 옆에서 사랑하고,
온전히 지킬 때 찾아온다.
육아는 어렵지만,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