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24
개미는 요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는 후들거렸고,
씨앗을 옮기다 멈춰 서서
한숨을 쉬는 날도 많아졌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등에 짊어진 씨앗먹이가 아니라
가슴에 든 걱정이었다.
'올해도.. 못 사나?'
'역시, 어렵겠지?'
개미는 잘 부서지는 작은 흙집 대신
단단한 땅개미집 굴 하나를 갖고 싶었다.
사실, 개미가 집을 마련하려고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해 전,
개미는 열심히 모은 씨앗을 털어
작은 땅을 계약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늘이 비웃기라도 하듯,
한참 집값이 좋을 때가 지나
개미가 사려고 할 때,
마침 쏟아 내린 비로
물웅덩이가 넘쳐나며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단단하고 좋은 땅들은
다른 개미 집단이 먼저 사들이기 바빴다.
'개미센트럴파크'는
일반 개미는 접근조차 어려웠고,
'터널역 풀잎지구'도 물량이 나오자마자
젊은 골드개미들이 사들였다.
올해 들어 '밀림시티존'이 급등하며
개미 마을 전체 시세가 요동치는데 한몫했다.
개미는 결국,
한 푼 두 푼 모으느라,
남들 다 사는 시기를 놓쳐버리자
집값은 연일 최고점을 갱신했다.
"이미 때 놓쳤어, 내일은 더 오른다니까."
땅투자 시기를 점치는 무당벌레의 말에
개미는 눈앞이 핑 돌았다.
그다음 해엔,
다른 개미 집단이 지배하면서
금리가 씨앗 3배로 뛰어올랐다.
개미는 눈물을 머금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집값이 조금 안정되자
개미는 다시 용기를 냈다.
나비은행을 찾아 대출을 요청했지만,
애벌레점장의 말을 듣고 좌절했다.
"대출 기준이 작년하고 다르게
변동이 생겨서 자격 기준이 안되세요."
세 번째 실패였다.
개미의 마음속은 점차 멍들어갔다.
어느 날 나간 모임에서
개미는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조용히 패배감이 쌓여갔다.
해안가에 거주하는 소라게가 말했다.
"난 대출 껴서 집 샀지!"
"그때라도 샀으니 다행이야"
어느 쪽 땅굴을 파야할지
결정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던 두더지도
어느샌가 단단한 땅굴을 지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코인과 주식이 폭망해서
개미집에 잠깐 얹혀살았던
베짱이 형님도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코인하고 주식이 떡상해서 전세 들어갔다니까"
"역시 한 우물 계속 파야해"
심지어 달팽이도
등껍질 확장 공사에 성공했다.
개미는 집에 돌아오는 길,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나만... 제자리인 걸까?"
개미는 다시 은행으로 갔다.
꼼꼼하게 계산하고,
발품도 팔고,
심지어 씨앗머니도 넉넉하게 모아놨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번에는 정말 잘 될 거라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애벌레점장이 말했다.
"죄송해요.
이번 분기 예산이 이미 소진됐어요"
시간 차이였다.
개미는 문득, 달력 앞에 멈춰 섰다.
"벌써 올해가 한 달도 안 남았네?"
개미의 어깨가 툭하고 떨어졌다.
"아, 일만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왜.. 나는 항상 늦을까."
"아님, 그들이 빠른 걸까?"
개미는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시냇물 소리,
평소엔 붉게 물드는 노을빛 아래
아름다운 연주회 같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차갑게 들렸다.
"그냥.. 포기할까?"
이 말이 멍든 가슴속에서 불쑥 올라왔다.
그런데 그 순간,
저만치에서 무언가 쓰윽 스쳤다.
개미들의 긴 행렬이었다.
다들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씨앗을 나르고 있었다.
그 긴 행렬에는
앞서가는 개미도 있었고,
개미군집 속에 떠밀려가는 개미도 있었고,
행렬에 뒤처지지 않으려
열심히 뒤따라가는 개미도 있었다.
하나의 큰 개미집단 행렬로
멀리서 바라보니,
어느 누구 하나
더 빠르지도 않았고,
더 튀지도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개미집단 속에서 일할 땐
보이지 않았는데,
멀리서 크게 보니
그냥, 모두 같은 개미였다.
개미는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래... 나도 계속 가야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개미는 깨달았다.
자신이 아직 집을 못 산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도,
운이 나빠서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랐고,
개미는 흐름을 따라잡느라
너무 성실하게 달려온 것뿐이었다.
어쩔 땐, 여우처럼
지치지 않기 위해 영리함이 필요했고,
어쩔 땐, 나무늘보처럼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태도도 필요했고,
또 어쩔 땐, 신입닭처럼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했다.
개미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세상의 리듬과 어긋났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밤하늘 아래,
개미는 작은 씨앗 하나를 들어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이 씨앗은
내일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올해 마지막 실패가 될 수도 있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몰랐지만,
개미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못 샀으면, 다음에 사면되지"
"나는 멈추지 않는 개미니까."
그리고 조용히
씨앗을 등에 짊어졌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언급된 글의 우화 링크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달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더 성실하게 걷는다.
아니, 뛰기도 한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시기를 잘 만났고,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를 관통하는 진실은
씨앗의 양이나 크기가 결정하지 않는다.
결코, '나의 부족함' 하나로 설명되지도 않는다.
소득도, 재테크도, 경제상황도,
타이밍도 결코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놓치기도 하고,
때로는 뒤돌아볼 틈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못 이룬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
그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개미가 그랬든,
우리도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더 현명하게,
내 삶의 리듬을 살려,
앞으로 계속 나아가냐는 것이다.
언젠가
내 집이든,
내 자리든,
내 속도에 맞는 곳에
반듯하게 도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