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12
'깜빡—
—깜빡
깜빡—'
천장의 전구가 꺼질 듯 말 듯, 깜빡거렸다.
혼자 사는 나무늘보는
며칠 전부터 깜빡거리는 전구가 신경 쓰였다.
'전구.. 갈아야 하는데..'
자취새내기 나무늘보는
모든 것이 자유로웠지만,
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다.
나무늘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구를 갈아야 한다는 것을.
나무늘보는 겁이 났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했다.
"의자를 가져오고,
전구를 돌려서 빼고,
새 전구를 조심히 끼운다,
승리의 뿌듯한 포즈'
"그래, 이제 실패할 확률은 0%"
나무늘보는
누가 봐도 느리고, 게으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머릿속에서 엄청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드디어, D-DAY.
나무늘보의 전구 갈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1단계: 새 전구 정찰 임무]
DAY1,
나무늘보는 새 전구를 사러 갔다.
'이런, 어떤 전구를 사야 하지?
종류가 많네..'
머릿속으로 여러 번 돌렸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저 전구가 둥근 건가..?'
'소켓 사이즈가 뭐지..?'
'다 쓴 전구를 빼봐야 하나..?'
나무늘보는 집에 돌아와서
깜빡이는 전구를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질문이 끝이 없었다.
[2단계: 두꺼비집(누전차단기) 탐색]
DAY2,
나무늘보는 검색을 통해
다 쓴 전구를 빼기 전,
전기를 차단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두꺼비집이 어디에 있지..?'
느릿느릿,
나무늘보는 한참을 헤매다
겨우, 두꺼비집을 찾았다.
'전체 다 내려야 되나..?'
'해당 스위치만 내려도 되나..?'
작전을 진행할수록,
질문은 더 늘어만 갔다.
나무늘보는 안전을 위해
집 전체 전기를 차단했다.
[3단계: 사다리 작전 개시]
DAY3,
전구 가까이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갔다.
손을 뻗어 보았지만
전구가 닿지 않았다.
"으으으읏흣... 조금만 더..."
"아, 한 뼘이 모자라네."
나무늘보는 바닥으로 내려온 뒤,
한참을 고민하다
집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끌어와
최대한 높이 쌓아 올렸다.
혼자,
의자 위에 조심스레 올라섰다.
불안정했지만,
온몸의 균형감을 발휘하며
힘겹게 팔을 뻗어 전구를 돌렸다.
"끼익— 끼긱..."
"툭."
마침내 수명이 다한 전구를 빼냈다.
[4단계: 최종 보스전, 전구 장착]
DAY4,
전구종류를 확인한
나무늘보는 드디어, 새전구를 구매했다.
나무늘보는 포장지를 벗긴
새 전구를 한 손에 쥐고,
다시 의자 탑을 천천히 올랐다.
'어제보다 균형 잡기가 쉽네..'
팔을 뻗어 전구를 끼우려고 했지만,
근육량이 적은 나무늘보의 팔이 덜덜 떨렸다.
"휴.. 잠깐 쉬었다 해야겠다"
잠시 뒤,
나무늘보는 다시 움직였다.
"끼익— 끼익—"
"탁."
드디어 전구를 교체했다.
나무늘보는 조심스레
내려와
두꺼비집 스위치를 다시 올렸다.
"파바박— 팅!"
눈부시게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나무늘보는
더 이상 깜빡거리지 않는 집안을 보며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했다.
'나, 좀 멋있는데.'
모든 것이 처음이라, 험난했던
'전구 갈기 대작전'을 축하하기로 했다.
"시원한 맥주로 식은땀을 식혀야지."
나무늘보는 냉장고를 열자마자,
이내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며칠 동안이나 전기를 차단했었던 터에,
냉장고의 맥주는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나무늘보는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뭐..., 다음엔 중간에 껐다 켜면 되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듯,
나무늘보의 자취생활은 성장하고 있었다.
혼자 살아가는
1인가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혼자 산다는 건,
작은 전구하나 교체하는 것도
대작전이 된다.
나무늘보처럼
두렵지만 새로움을 마주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하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답을 찾을 것이다.
누구나
머릿속에선 늘 완벽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느리지만 자신의 페이스대로
작고 큰 작전들을 수행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을 조금씩 배운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결국은 해내는 과정.
때로는 시원하고,
때로는 미지근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응원을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신,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