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의 대출 낀 집

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15

by 이루나

바다는 언제나 시끄럽다.


파도는 쉴 틈 없이 몰아치고,

모래사장 위,

소라게들은 늘 집 걱정에 한숨을 쉬었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소라게의 몸집이 커질수록

껍데기 집은 점점 비좁아졌다.


며칠 전부터

소라게는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하지만,

파도가 잔잔해 먹이가 풍부한 도심지의 집값은

이미 하늘을 찔렀다.


'소라시티', '해안밸리', '파도역 소라비치힐'.

반짝이고 큰 껍데기들이 늘어선 도심지였다.


그러나, 그 어떤 곳도

소라게는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바닷가 '외곽마을'에 사는 소라게는

매일 먼 거리로 먹이사냥을 하러 다닌다.

'도심에 사는 소라게들은 먹이를 새벽배송처럼 받아먹고,

번쩍이는 껍데기를 서로 뽐내는데 시간을 더 쓰는 것 같아.

난 먹이 있는 장소까지 도착하면 이미 반쯤 지치는데..'


도심 소라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 배, 세 배, 몸집도 더 커진다.


반면,

몸집보다 작은 집은 성장을 방해한다.

완전히 몸을 가릴 수 없어,

누구보다 취약한 상태로,

한 번의 파도에 금세 휩쓸려 버릴 듯한 삶이었다.

안전을 위해 숨을 장소도 마땅치 않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소라게는 고민 끝에 은행소라에 방문했다.

"대출을 하고 싶은데요."

은행소라로부터 대출한도와 금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조류가 바뀔 때마다 이자도 출렁인다고 한다.

"먹이 이자를 연체하시면,

따개비 벌금이 껍데기에 달라붙어요."


소라게는 집의 무게가 무거워질까 겁났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오른 높은 집값에

'빚'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소라게는 은행소라와 약정했다.


높은 먹이 이자가 걱정되었지만

'대출 낀 집'으로 이사했다.


비싼 번화가 도심지는 아니었지만,

도심과 가까운

'뉴소라타운'에 위치한 좀 더 넓은 집이었다.


좁게 웅크릴 필요도 없었고,

숨 쉬기도 훨씬 편했다.

기존 외곽마을보다는

숨을 수 있는 바위 틈새도 많았고,

습한 나뭇잎도 많았다.

해조류 먹이도 좀 더 가까이 있어

쾌적한 집만큼 삶에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큰 집을 즐길 여유도 없이

이자날은 곧바로 다가왔다.


은행소라는 어김없이 약정된 먹이를 가져갔다.


소라게는 먹이를 입에 물었지만,

씹기도 전에 절반은 사라진 듯했다.

'휴, 내 먹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네.'


껍데기 집은 커졌지만,

배는 점점 더 고픈 듯했고,

한숨 거품은 더 많아졌다.


커진 집 무게만큼이나 대출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편안한 쉼을 가질 수 있게 해 줘 고마웠지만,

자유를 빼앗는 족쇄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쳤다.


파도는 거대한 악당처럼 소라게를 집어삼키려 했고,

거친 모래알은 얼굴을 때리며 숨을 막으려 들었다.


소라게는 모래사장을 정신없이 달렸지만,

무겁게 짊어진 큰 집이 오히려 내 발을 붙잡았다.

'이 집이 날 지켜줄까, 아니면 나를 삼켜버릴까?'


간신히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았을 때,

소라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이 집을 지키려다, 정작 나를 잃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소라게는 몸집이 커질수록

여전히 대출 낀 집을 이사 다니며,

전전긍긍 먹이를 모으러 나섰다.


소라게는

달빛에 반짝이는 '역세권 소라시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은 어디 있을까?'

그곳은 여전히

소라게와는 먼 꿈처럼 빛나고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시끄럽고,

대출 낀 집은 무거웠지만,

소라게는 움추러들지 않았다.


쉴세 없는 파도에 휘청이고,

휘향 찬란한 달빛에 지쳐도,

묵묵히 먹이를 사냥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래,

이렇게 발걸음 하나하나

걸어 나갈 수 있다면,

빚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해.'


몸집이 커진 만큼 지탱의 무게도 달라졌다.

소라게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언젠가 무이자 껍데기가 나올까?"




더 큰 집과

걱정과 불안에 떨지 않는

안전한 내 집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대출과 빚을 짊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건,

크기나 무게보다

걸어가고자 하는 '발걸음'이 아닐까.


발걸음이 곧 내 삶이 된다.


집의 크기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가

나를 지켜준다.


비록,

무겁고 버거운 짐을 지고 있더라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한

우리는 잘 걷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