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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02. 2020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가격리 3일 차_새로운 놀이를 찾아보자

“이 김에 푹 쉬고 온다고 생각해. 건강이 우선이니깐”
“자가격리가 정말 힘들다던데, 힘내세요”

몇몇 분들이 내 가정에 처한 상황을 듣고 위로의 말을 전해주셨다.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는 다양했는데, 코로나 확진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았다면 아마 ‘자가격리 =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지내는 상황’ 정도로 생각할 테니 그럴 만도 하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깐. 어떤 사람에게는 자가격리가 ‘휴가 또는 병가’라고 생각될 것이며, 대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단지 집 밖으로 2주간 나가지 못하는 상황 정도로 인식되는 정도. 딱 그 정도이지 않나 싶다. 물론 ‘격리기간 동안 나도 확진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하지만 아이를 동반한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아이가 자는 시간, 브런치에 글을 끼적이는 지금 이 시간만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또래의 자녀를 가진 몇몇 지인은 소식을 듣고 바로 치킨세트를 기프티콘으로 보냈다. 유사시에 뭐라도 보내줄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밥 한 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기 때문일 게다. 끼니와 놀이,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지금 내가 가진 두려움은 상당 부분 상쇄된다.

 

“오늘은 어떤 놀이를 해볼까?"

아침에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는 아이에게 물었다. 어떤 놀이를 하면 좋을지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제 처가 부모님께서 식재료를 사서 주실 때 담았던 종이박스에 눈길이 멈췄다.

“오랜만에 종이 상자로 뭘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좋아!! 그럼 내가 뭘 준비할까?” 

아이는 큰소리로 대답하며 어떤 도구를 준비하면 되는지 물어봤다. 같이 놀이하고,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아빠가 혼자서 만들어 주는 것보다는 아이가 주도적으로 해보게끔 하는 게 더 나으리라.

 

우선 뭘 만들 건지 생각해서 스케치북에 도면을 그려줘”

도면이 뭔데?”

응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그림을 그려 달라고”

 

새로운 놀이에 신난 아이는 필통에서 노란색 사인펜을 꺼내서 쓱쓱 그리고 있다. 기차를 만들고 싶으니 그림처럼 만들자고 당당히 제안한다. 기차의 특징은 앞에 조종석이 있고, 화차랑 연결부위가 있고, 바퀴가 연결되어있는 기차라며 설명해 주었다. 

아이가 그린 기차 그림

 

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하루 가지고 놀 장난감을 만드는 것 정도는 시도해 본다. 섬세함은 내려놓고 기차와 비슷하게 만드는 데 목적을 둔다면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사실 만들고 난 뒤 가지고 노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초점을 두었기에, 과정에서 아이가 좋아할 요소들을 가미해 봤다. 

 

박스를 펼치고 줄자를 대어 수치를 표시하고, 가위와 칼을 사용해서 자른다. 줄자를 가지고 여기저기 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안성맞춤이었다. 

30센티미터  정도 길이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바퀴를 그리기 위해 접시를 대고 원을 그렸다. 대고 그려도 삐뚤빼뚤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굴러갈 수 있겠다고 하며 바퀴를 만들어 보았다.

젓가락을 사용해 몸체와 바퀴에 구멍을 뚫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바퀴가 연결되어 굴러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바퀴와 바퀴를 실로 연결하여 고정했다. 바늘귀에 실을 넣는 것처럼 우리 둘은 한 사람이 넣고 다른 사람이 반대쪽에서 잡아서 빼는 식으로 연결했다.

자기가 해보겠다며  구멍 뚫는 중

마지막으로 칼집을 내어 사람들이 타고 내릴 문을 만들어 준 것으로 끝.

허접하긴 하나 뭐 어떠랴 하루 잘놀면 되는것을


간단해 보여도 함께 만드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났다. 무엇보다 기차 안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문이 있어서 좋아했던 아이였다. 적어도 오늘 하루 어떤 놀이를 하든 이 기차가 함께 했으며,  그걸로 오늘은 선방했구나 생각했다. 남은 격리기간을 위해 집에서 놀이할 수 있는 다양한 노하우들을 찾아보고 마련해 놓아야겠다.


아이 점심으로 미역국을 끓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1년간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이와 단둘이 있는 이 2주를 어떤 방법으로 헤쳐 나가고 있을까? 


아직 격리 초기라 어떤 어려움과 도전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난 1년간의 육아휴직을 통해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이 지금 이 난관을 헤쳐가는데 좋은 양분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러던 중 처가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이 추석인데 둘이 그러고 지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명절 음식을 집 앞에 두고 가시겠다고 하신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나, 코로나 확진에 대한 걱정을 떨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감사히 잘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더불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메뉴는 해결이 되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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